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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선 Jun 15. 2024

시성비

순서: 1-2-3

1.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며 100달러짜리 지폐에 얼굴이 새겨져 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Time is money' 즉,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말은 너무 유명해서 속담이라고 해도 믿을 사람들이 여럿일 것이다. 실제 인지도만 따지면 우리의 유명 속담인 '빈 수레가 요란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정도의 수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암튼 벤자민 프랭클린이 1706년에 태어났으니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간의 소중함은 여전하며,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왕이든 백성이든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 바로 시간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로초 등으로 생명 연장 꿈을 꾸었던 것도 그 시간이라는 것을 더 벌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도 결국은 이 유한한 시간을 얼마나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경쟁처럼 보인다.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는 것도 자유를 빼앗는 동시간 한 사람의 시간을 죽이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전용기로 외국을 떠나거나, 돈을 주고 오픈런 줄을 대신 서게 하는 것들 모두 시간을 돈을 대신하고 있는 행동들로 볼 수 있다. 부자가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그 사람의 시간을 누리는 것이다. 예전에 신분 높은 사람들이 유모를 쓰는 것도 비슷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서 소위 보헤미안들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를 시전하며 돈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있는 경제적 여건 속에 현재의 시간을 최대한 누리려고 한다.


2.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보헤미안의 낭만을 따라 할 수 없으며 부자가 되어 시간을 돈으로 살 수는 더더욱 없다.(굳이 선택하자면 부자보다는 보헤미안이 되는 편이 더 쉬운 길임은 확실하다.ㅎㅎㅎ) 파이어족이라는 용어도, 건물주가 갓물주로 불리는 것도 결국 일상생활 속에 시간적 여유를 누리고 싶다는 열망을 보여주는 일례이며 시간이 많은 사람이 제일 부러운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파이어족? 갓물주? 결국 우리 수준에서는 시간을 늘릴 방법이 없으니 가지고 있는 시간이라도 아끼는 것에 너도 나도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에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가 인기였다면 이제는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 비율)에 관심을 더 보이는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1배속은 없다. 최소 1.2배속이며 어떨 때는 2배속으로도 달린다. 그것도 길다고 느껴지기에 숏츠로 정보를 습득하고 웹툰을 볼 때는 엄지손가락을 불이 나게 위로 올리며 속독을 하게 된다. 건조기의 사용이 계속 늘어나고 쿠팡의 로켓배송이 자리 잡은 것도, 우리가 지불할 능력 범위라면 무조건 최저가를 고집하기보다는, 조금 더 돈을 주고서라도 시간을 아끼고 싶다는 사회적 현상으로 보인다.


3.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매년 경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소비를 엄청나게 줄이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해외여행도 여전하고 커피 소비량도 여전하다.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은 유지하려는 게 지금의 사회 현상이다. 워라밸이라는 용어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이유도 결국은 돈을 아끼며 궁상처럼(?) 보이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게 아니라 나에게 시간을 달라는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돈을 쓰든 명상을 하든 그건 내 알아서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보니 지금의 '시성비' 추구는 예전부터 내려왔던 인간의 본성 발현이 아닌가 싶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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