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후한 목소리의 젠틀맨
왼쪽부터 [Even Now] (1978), [The Greatest Songs Of The Seventies] (2007), [Tryin' To Get The Feeling] (1975), [2:00 AM Paradice Cafe] (1984)이다.
연도순으로 한 앨범씩 짚어가며 들어본다. 1975년에 나온 [Tryin' To Get The Feeling]은 긴장감 넘치는 현악기 소리가 양념처럼 어우러진 웅장한 분위기의 'New York City Rhythm'으로 문을 연다. 이 곡을 듣노라면 저절로 번화한 뉴욕의 어느 거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간주에서 라틴 리듬으로 변주되는 테마도 멋들어진다.
하지만 이 앨범의 진짜 핵심적인 곡은 7번 트랙 'I Write The Songs'이다. 여기서 말하는 화자인 'I'는 음악이며, 음악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듣는 이를 감동하게 만들기 위해 '노래(songs)'를 썼다는 내용이다. 엄청나지 않은가? 목소리를 사용해 음악을 한다는 사람이라면 이 곡에 감동하지 않을 이는 없으리라.
다음 앨범은 1978년작, [Even Now]이다. 음악 분위기만 놓고 보면 코파카바나 해변가를 드라이브할 때 듣기 좋을 것 같은 1번 트랙 'Copacabana (at the Copa)'는 기실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가사이다. 쇼걸을 사랑한 남자 A가 있었다. 여자가 다른 남자 B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결국 A가 B를 총으로 쏴 죽인다는 내용이다. 이쯤되면 굳이 가사 내용을 알아야 했나 싶긴 하지만, 어차피 언어의 장벽은 굳건하다. 음악만 틀어놓고 여전히 신나게 즐기는 것도 영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 앨범은 사실 앨범 커버가 너무 아름다워서 즐겨 듣게 되었다. 원래부터 좋아했던 'Copacabana (at the Copa)'가 수록되어 있었던 건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이 앨범엔 그밖에도 눈물겹게 아름다운 발라드 'Somewhere In The Night', 휘파람 소리의 인트로와 산들바람 같은 노래가 잘 어우러진 'Can't Smile Without You' 등의 명곡이 잔뜩 수록되어 있다.
다음은 앨범 전곡에 완전히 반해버린, 내가 배리 매닐로우 앨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바로 1984년작, [2:00 AM Paradise Cafe]이다. 앨범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이 남자는 새벽 두 시까지 잠도 안 자고 왜 '파라다이스 카페'에 있는가. 보통 이런 사람들이 이러고 있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외로워서'. 이 앨범은 '재즈'라는 어법에 충실하여 현대 도시인의 고독을 무척이나 밀도 있게 표현해 냈다. 또한 이 앨범은 배리 매닐로우 혼자가 아닌, 재즈의 대선배 격인 사라 본(Sarah Vaughan)과 멜 토메(Mel Torme) 등이 참여하여 작품의 재지한 성격을 더욱 부각시켰다. 앨범 전곡이 훌륭하지만, 정말 시간이 없다면 첫 번째 트랙 'Paradise Cafe'와 대표곡인 'When October Goes' 정도는 꼭 들어야 한다. 코끝 시린 이 계절에 안성맞춤인 노래와 앨범이다.
조금 여담이지만, 이 앨범은 수록곡들이 트랙별로 나뉘어 있지 않고 마치 롱 테이크 연주 실황처럼 하나로 쭉 이어져 있다. 그래서 첫 트랙을 듣고 나면 어느새 다음 트랙으로 홀린 듯이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또 다음, 다음, 하다 보면 그냥 앨범 하나를 통째로 다 듣게 되는 것이다. 아는가? 눈 뜨고 코 베이는 기분을.
마지막으로 소개할 앨범은 스페셜 앨범이다. 배리 매닐로우는 시리즈로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하는데, 50년대-60년대-70년대-80년대의 명곡을 골라 리메이크하여 앨범으로 엮는 식이다. 그중에서 나는 70년대 명곡 모음집인 [The Greatest Songs of Seventies]를 최고로 꼽고 싶다. 배리 매닐로우가 7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가수였기에, 그 시절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 원곡의 'Bridge Over Troublued Water'는 오리지널의 정서를 거의 보존한 상태에서 드라마틱한 면을 약간 더 부각시킨 편곡으로 감동을 배가시킨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참 '카테고리화'를 좋아한다. 지금 이 배리 매닐로우도 그렇고, 노라 존스(Norah Jones),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 등을 두고 재즈 뮤지션이다 아니다를 두고 갑론을박한다. 나는 방송인 서장훈의 뉘앙스를 빌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본인들이 설정한 카테고리 안에 뮤지션을 묶어다 놓고 어항 속 물고기처럼 바라보는 것을 즐기는 악취미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런 짓은 그만두는 편이 음악의 미래, 더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서로에게 이로울 것이다. 대중님들이시여, 제발, 뮤지션에게 자유롭게 어긋날 자유를 허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