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트롤리 딜레마로 본 예수님의 선택

직장에서 흔히 만나는 선택의 순간, 크리스천은 어떻게 다를까?

by 김재훈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 일던 시기.
당시 대한민국은 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강의를 보며
도덕·윤리 문제를 두고 토론을 즐기던 희귀한(?) 시기였다.


그의 강의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바로
트롤리 딜레마.




샌델이 던진 질문: “당신은 레버를 당길 것인가?”

샌델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폭주하는 트롤리의 기관사입니다.
앞쪽 선로에는 다섯 명이 서 있고, 브레이크는 듣지 않습니다.
이대로 가면 다섯 명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는 선로를 전환할 수 있는 레버가 있습니다.
레버를 당기면 열차는 다른 선로로 이동하지만
그 선로에는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당신은 레버를 당겨 한 사람을 희생시킬 것입니까?
아니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아 다섯 명을 죽게 둘 것입니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법한 질문이다.
그러나 막상 답을 내려보면 꽤 어렵다.

레버를 당기면 1명이 희생되고 5명이 산다

레버를 당기지 않으면 5명이 죽지만 1명은 산다

샌델은 이 질문을 통해
“효율이냐?”
“도덕적 원칙이냐?”
라는 문제를 꺼내놓는다.


그리고 이 질문은 사실
우리 직장에서도 매일 벌어지는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뭐라고 하실까?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만약 예수님이 그 트롤리 앞에 서 계셨다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성경을 찬찬히 읽어보면,
예수님의 선택 패턴은 샌델의 문제와 꽤 다르다.


① 예수님은 A냐 B냐, 둘 중 하나만 고르라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성경 속 예수님은 늘 프레임을 바꾸는 방식으로 답하셨다.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 →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안식일에 일하면 안 되는가?” →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것”

항상 제3의 길을 만드셨다.


② 예수님은 ‘누군가를 대신 희생시키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길은
“약한 사람 하나를 희생시키고 다수를 살리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본인이 희생을 감당해 모두를 살리는 방식.


③ 예수님에게는 ‘1명 vs 5명’이라는 계산이 없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은
가치 측정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마도
“누굴 죽일까?”가 아니라
“모두를 살릴 방법이 없을까?”를 먼저 고민하셨을 것이다.




직장은 사실 매일 작은 ‘트롤리 딜레마’를 만들어낸다

이제 트롤리 이야기를 직장으로 가져와 보자.


생각보다 많은 상황이 샌델의 딜레마와 비슷하다.


① 프로젝트를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상황

실수한 신입을 희생양 삼자

보고 누락된 건 인턴 탓으로 돌리자

팀의 성과를 위해 특정 직원을 내보내자

이건 직장판 트롤리 딜레마다.
“한 명 버리고 다섯 명 살리자” 논리.


② ‘둘 중 하나’라고 부추기는 조직 논리

“저 직원 자르든지, 아니면 팀 전체 망합니다”

“누군가 책임져야 합니다. 누구로 하죠?”

현실에서는 거의 항상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
다만 그걸 찾기 귀찮거나 용기가 부족할 뿐.


③ 숫자가 사람의 가치를 대신하는 순간

KPI

비용 대비 효율

성과 지표

생산성

다 필요하지만
이것이 사람의 가치 기준이 되는 순간
조직은 약자를 자동으로 희생시키는 구조가 된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직장에서 어떻게 달라야 할까?

예수님의 선택 원리와

샌델의 딜레마 구조를 합치면

크리스천 직장 윤리가 꽤 분명해진다.


‘둘 중 하나’라는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딜레마는 대부분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라고 전제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이렇게 물어야 한다.

진짜 둘 뿐인가?

다른 방법은 없나?

일정 재조정? 역할 변경? 업무 분담 재배치?

내가 조금 더 감당하면 해결되는 건 아닌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대부분의 ‘딜레마’는 그냥 미해결 문제로 바뀐다.


② 약자를 희생시키는 선택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약자를 비용이나 짐으로 보지 않으셨다.


따라서
“누군가를 버리고 조직을 살리자”

라는 방식은
크리스천이 따라가서는 안 되는 길이다.


③ 책임을 누구에게 떠넘길지 고민하기보다, 어떻게 함께 짊어질지 고민한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누가 대신 죽을 것인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감당할까?”였다.


직장에서는 이렇게 바꿀 수 있다.

누가 잘못했나? → 어떻게 함께 해결할까?

누구를 내보낼까? → 어떤 역할을 부여할까?

누굴 희생해야 하나? → 내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나?

이런 선택은 결국
팀의 신뢰를 가장 빠르게 회복시키는 길이다.


④ 사람은 숫자가 아니다

효율은 중요하다.
하지만 효율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크리스천 직장인은 이렇게 묻는다.

“효율적인가?”
→ 좋은 질문

“사람을 살리는가?”
→ 더 중요한 질문




결론: 크리스천은 ‘레버를 당기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바꾸는 사람’이다

세상은 늘 이렇게 묻는다.

“누굴 희생시킬래?”

“둘 중 하나만 골라.”

“조직을 위해 어쩔 수 없잖아.”

하지만 크리스천은 이렇게 질문을 바꾼다.

정말 둘 뿐인가?

어떻게 하면 아무도 희생되지 않을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약한 사람을 살리는 선택은 무엇일까?

이 질문이 바로
크리스천 직장 윤리를 세상과 구별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차이는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니라
조직을 살리는 리더십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죽음 앞에서 신은 왜 침묵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