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시작하다

작은 몸으로 맞선 두려움과 생존의 몸부림

by 김재훈

초등학교 4학년, 처음으로 육상부에 발을 들였던 날이 아직도 선명하다. 작고 여린 체구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 무기가 되었다. 몸이 가벼울수록 더 멀리, 더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장거리 주자로서 내 폐는 점점 단단해졌고, 다리는 강철이 되어갔다.


하지만 학교는 달리기 트랙처럼 공평한 곳이 아니었다.


"야, 쥐새끼."


복도를 걸을 때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작은 체구가 트랙에서는 장점이었지만, 교실 밖에서는 표적이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주머니 속 용돈은 그들의 손에 들어갔고, 이유 없는 폭행은 일상이 되었다. 거울 속 얼굴에는 항상 푸른 멍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잡히지만 않으면 돼.’


육상부에서 단련된 발목은 위기의 순간 내게 유일한 탈출구를 제공했다. 복도 끝에서 그들이 보이면, 나는 바람이 되어 달렸다. 하지만 학교는 결국 한정된 공간. 아무리 빨리 달려도 언젠가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고, 결국 주먹은 내 몸에 낙인처럼 찍혔다.


그래도 잠시나마 달아날 수 있다는 것, 그 짧은 자유의 순간들이 내게는 작은 승리였다.




그러나 더는 참을 수 없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학교 뒤편 폐건물에서 동생과 함께 집단 폭행을 당했던 그날. (이전 글 - https://brunch.co.kr/@uniofpenn/2) 그들의 주먹과 발길질이 무차별적으로 이어지는 동안, 동생의 억눌린 흐느낌이 내 가슴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피에 젖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를 때, 나를 짓눌렀던 두려움이 완전히 부서졌다. 단지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았다.


그날 밤, 거울 속 상처투성이 얼굴을 바라보며 맹세했다.


‘더 이상 당하지 않겠어!’


다음 날, 학교 게시판에 붙은 축구부 모집 공고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축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우리'가 있었다. 학교에서 가장 거친 형들이 모인 축구부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었다.


축구공을 차는 것에 대한 열정? 그런 건 없었다. 내가 원한 것은 보호였다. 방패였다. 나와 동생을 지켜줄 든든한 성벽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지원서를 작성하며 결심했다. 작고 왜소한 내 몸으로 싸울 수 없다면, 내 주변에 바다처럼 넓은 '우리'를 만들어야 했다. 홀로 설 수 없다면, 함께 서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것이 내가 축구를 시작한 진짜 이유다. 열정이 아닌 생존의 몸부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믿음의 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