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

어둠에서 빛으로

by 김재훈

"안 가요."


병수 형의 수련회 참석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짧은 두 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형의 실망한 눈빛이 마음 한구석을 찔렀지만,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당시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신앙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일요일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정도였고, 그것은 신앙이라기 보단 의무에 가까웠다.


거절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군 제대 후 방황하던 삶을 청산하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전문대라도 졸업해야겠다는 절박함으로 원서를 넣었고, 무언가라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한 영어 공부였다. 수련회에 가려면 학원을 빠져야 했고, 그건 내 계획에 없었다.


"이번만 같이 가자. 너한테 꼭 필요한 시간일 거야."


병수 형은 포기하지 않고 거듭 설득했다. 몇 번이나 거절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느닷없이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서 있었다.


"재훈아, 잠깐 얘기 좀 할까?"


집 앞 작은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또다시 시작된 수련회 권유. 나는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했다. 영어 학원을 빠질 수 없다는, 단순하고도 고집스러운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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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이 흐르던 중, 형이 미소를 지었다.


"너 알지? 내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2년 있었던 거."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고개를 끄덕이자 형이 말했다.


"내가 영어 가르쳐줄게. 대신 수련회 가자."


허무맹랑한 제안이었다. 형의 경험이 아무리 풍부해도 전문 강사의 수업을 대신할 순 없었다. 설득력 없는 조건이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마도 그동안의 끈질긴 설득에 감동했거나, 더 이상 거절하는 것이 미안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수련회에 가기로 했다.




시골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낡은 수양관. 도착하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조 배정을 받고 처음 보는 조원들과 형식적인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나를 불편해하는 듯했고, 대화는 금방 끊겼다. 모두가 아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사이, 나는 홀로 구석에 서 있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공간. 답답함이 밀려왔다.


"저기, 좀 나갔다 올게요."


아무도 내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프로그램 중간중간 슬그머니 빠져나가 외부를 서성이는 것이 나만의 위안이었다.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데, 나만 동떨어진 것 같은 기분. 마치 투명인간이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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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저녁, 가장 두려웠던 시간이 찾아왔다. '기도회' 시간. 모든 수련회의 하이라이트이자 나에게는 가장 불편한 시간이었다.


찬양팀의 음악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고, 사람들의 기도가 시작됐다. 처음 보는 광경에 당혹스러웠다. 소리 내어 기도하는 사람, 흐느끼는 사람,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는 사람들.


'왜 기도하면서 울지? 뭐가 그렇게 슬픈 거야?'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극단적인 종교집단처럼 보였다. 시간은 왜 그리도 천천히 흘렀는지... 체감상 한 시간은 족히 넘어가는 것 같았다.


견디다 못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시골 학교의 어두운 운동장을 홀로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 멀리 예배당의 불빛만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그렇게 첫날은 아무런 감동 없이 지나갔다.




둘째 날.


단합을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졌다. 레크리에이션, 팀 게임, 성경 공부... 나는 최소한의 참여만 했다. 누구도 내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게 오히려 편했다.


점심 식사 후 산책로를 걷던 중, 병수 형이 내 옆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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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아, 어때? 많이 불편해?"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네가 이 자리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이 수련회가 나중에 너에게 큰 의미로 다가올 거야."


그의 눈빛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뭐가 의미 있다는 거야? 자기들끼리 신나게 놀면서 왜 나까지 끌어들인 거지? 시간 낭비만 하고 있잖아.'


푸념과 후회 속에 둘째 날의 해가 저물었다.




저녁 어둠이 내리고, 다시 찾아온 기도회 시간.


'오늘은 뭘 하면서 시간을 때울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처럼 빠져나가려다 문득, 어린 시절 들었던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게 있을 때, 진심을 다해 기도하면 응답하신다."


군 전역 후 방황하는 내 모습,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로 살아온 날들, 어떻게든 바로 서고 싶은 간절함... 그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왕이면 내 노력에 하나님의 도움이라도 받으면 더 좋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다시 의자에 앉았다. 눈을 감고 어색하게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있으시면 대답해 주세요. 뒤늦은 후회이긴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마음 잡고 살려고 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제가 사람 되는 데 도움을 주십시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내 의식이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갔다. 칠흑 같은 어둠이 눈앞을 뒤덮었다. 너무도 깊고 짙은 어둠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완전한 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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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눈을 뜨려 했지만, 내 눈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굳게 닫혀 있었다. 공포가 밀려왔다. 입 밖으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씨발, 뭐야! 왜 눈이 안 떠져?"


숨이 막혔다. 통제권을 잃은 느낌에 더 큰 공포가 엄습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눈앞에 필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또렷해지는 영상 속에서 나는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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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질렀던 모든 죄악의 기록들이었다.


방탕했던 십 대 시절의 모습들, 폭행, 협박, 갈취... 심지어 내가 잊고 있던, 혹은 의도적으로 묻어두었던 기억들까지. 모든 장면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가장 끔찍했던 건 눈앞에서 죽어간 친구들의 모습, 내가 상처 준 사람들의 얼굴들이 나를 둘러싸고 지켜보는 장면이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원망과 슬픔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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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치며 절규했다.


"하나님, 무서워 죽겠습니다. 제발... 제발 여기서 꺼내주세요."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코와 입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애원했다. 영혼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내 삶의 모든 죄악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하나님... 제가 했던 모든 일들이 죄악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상처 준 일, 부모님 마음 아프게 했던 일, 약한 사람들을 괴롭혔던 모든 순간들...”


목이 메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가 누구를 때렸던 일, 돈을 갈취했던 일, 모든 거짓말들... 이제야 깨닫습니다. 제가 얼마나 추악한 사람이었는지...”


가슴을 치며 흐느꼈다.


“더 이상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그런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새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살려주세요...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제발...”


나도 모르게 진심 어린 회개가 터져 나왔다. 두려움과 후회, 절망이 뒤섞인 눈물이었지만, 동시에 그 속에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었다. 언제까지 이 고통이 계속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갑자기 눈앞의 장면이 바뀌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순백의 공간이 펼쳐졌다. 어둠으로부터의 탈출. 안도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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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하얀 공간 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와 늘 함께 있을 테니 두려워 마라."


그 따스함에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 누구세요? 저 정말 무서웠어요. 앞으로 나쁜 짓 안 할게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눈부신 광채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떨리는 몸으로 웅크리고 있는 내게 그가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에 뚫린 구멍을 본 순간,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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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떠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앞에 놓인 책상은 눈물과 콧물로 흥건했다. 성경책은 물에 젖어 눅눅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몸이 가벼워졌다. 가슴속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해방감.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기도 시간이 끝나고 예배당에 불이 켜졌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조장 누나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재훈아, 너... 왜 얼굴이 바뀌었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주변 조원들도 하나둘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오빠, 정말 얼굴이 바뀌었어요."

"형,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재훈아, 괜찮아? 얼굴이 완전히 달라 보여."


다들 내 얼굴이 바뀌었다며 놀라워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거울을 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이 사라지고 빛이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새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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