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 이후, 가장 먼저 찾은 사람들
회심 이후 세상은 완전히 달라 보였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마치 나를 위한 찬송가처럼 들렸고, 바람 한 점도 하나님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나무의 푸른 잎사귀가 생명력으로 반짝였고, 폐 속 깊이 들어오는 공기마저 영혼을 정화시키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신선했다.
하지만 이 기쁜 소식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친구들이었다. 나와 같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친구들의 일상은 언제나 술과 함께였다.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호철이의 가게가 우리의 아지트였고, 매일 저녁이면 그곳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회심했다고 해서 그들과의 관계를 단칼에 끊을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더욱 간절해졌다.
"씨발, 이렇게 개처럼 사는 게 사는 거냐? 언제까지 이 짓거리 할 거야?"
"밤마다 뒤통수 맞을까 봐 벌벌 떨면서 사는 게 인생이냐? 하루만이라도 좆같은 걱정 없이 푹 잠들어보고 싶다, 진짜로."
"형님들 눈치 보고, 새끼들한테 등 찔릴까 조마조마하고... 이게 뭔 개같은 인생이야."
"술 안 마시면 잠도 안 와. 꿈에서도 칼부림하고 있어, 미친 거 아니야?"
"어차피 감방이나 병원에서 죽을 텐데, 그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밥상에 앉아서 밥 먹어보고 싶다. 뒤 안 돌아보면서 말이야."
친구들이 술에 취해 중얼거리던 말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얼마나 공허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이 필요했다.
마침 호철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딜 짱박혀 지냈길래 이렇게 연락이 안 되냐?"
신경질적인 목소리였지만, 나는 부드럽게 답했다.
"미안해. 잠깐 어디 좀 다녀온다고 미처 연락 못 했어."
"이번 주 토요일에 우리 가게에서 애들 모이기로 했다. 얼굴 까먹는다고 너보고 꼭 오래."
"알았어. 안 그래도 너희들이 보고 싶었어."
다정한 내 말투에 호철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약 잘못 먹었어? 이상한데... 암튼 토요일에 보자."
토요일 저녁, 나는 캐주얼한 복장에 성경책을 들고 호철이의 가게로 향했다. 문을 여는 순간 자욱한 담배연기가 목을 찔렀다. 테이블 위에 뒹굴고 있는 빈 술병들이 이미 술판이 한창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노래방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친구들의 고함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나타나자 소란이 일순간 멈췄다. 친구들과 여종업원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야! 북한 갔다 왔냐?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씨발놈아, 얼굴 까먹겠다."
"노는 거 제일 좋아하는 새끼가 왜 계속 안 보였대?"
비난이 쏟아졌지만 마음은 요동치지 않았다. 호철이의 안내를 받아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양옆으로 다가오는 여자들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상호랑 준식이랑 자리를 바꿔주시겠어요?"
상호와 준식이 사이에 앉아 그동안의 근황을 나누었다. 교회 수련회에서 경험한 기적 같은 일들(이전글 - https://brunch.co.kr/@uniofpenn/9)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준식이는 말을 끊고 화를 냈다.
"씹새야, 술맛 떨어지게 뭔 예수 타령이야! 계속 예수 타령하려면 꺼져!"
술에 취한 준식이는 말이 꼬이면서도 계속 화를 냈다. 하지만 상호는 달랐다.
"예수, 예수가 뭔데? 믿으면 밥 주냐?"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 상호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밥은 왜 먹어? 살려고 먹는 거잖아. 예수님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더 자세히 얘기해 봐."
나는 성경책을 펼쳐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너, 나,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거야. 말이 돼? 우리 같은 인간들이 누군가에게 아무 조건 없이 사랑받는다는 게?"
상호가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당연히 말이 안 되지!"
그렇게 상호와 긴 시간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수준은 중요하지 않았다. 부재한다고 여겨왔던 신의 존재에 대한 갈망이 우리 둘 모두에게 있었다.
자정 무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상호가 급하게 뒤따라왔다.
상호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순수하지만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근데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가나? 오늘은 내가 술을 많이 먹어서 양심에 찔리는 게 있어서 예수님 믿는다고 못 하겠다. 내일부터 믿으면 안 되나?"
나는 진지하게 답했다.
"내일 아침에 눈뜬다는 보장 있나? 있으면 내일부터 믿어라. 근데 복음을 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네가 믿었으면 좋겠네."
상호의 몸은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겠다는 의지는 매우 강해 보였다. 나는 가져갔던 성경책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돌아서려는 순간, 상호가 뒤에서 외쳤다.
"재훈아, 근데... 천국 가면 우리 엄마 볼 수 있나?"
그 순간 나는 걸음을 멈췄다. 상호의 목소리에는 술 취한 사람의 어눌함이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돌아서서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확신했다. 하나님은 이미 상호의 마음에 씨앗을 심으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씨앗은 분명 자라날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