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코로나19 기세는 점점 치솟았고 서울의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하며 강제 휴무를 받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한 지 꽤 됐을 때라 이참에 고향에 내려가 쉬다 오자는 생각으로 갔다. 그때 고향에서 중학교 동창이었던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가 지금의 신랑이다. 신랑과의 연애 시작과 결혼 과정이 참 신기하고 재밌는데 이건 나중에 따로 쓸 거라 생략!
어느 날부터 옥탑방에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단청소를 하러 집주인분이 거의 매일 옥상까지 올라오시는데 어느 날은 내게 전화로 혹시 어제 집에 누가 찾아왔었냐 물으셨다. 나는 어리둥절하며 어제 쭉 혼자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집주인분이 얘기를 이어갔다. 어제저녁 계단 청소를 하고 왔는데 오늘 아침 가보니 옥상 입구부터 옥탑방 현관까지 흙 발자국이 찍혀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며칠 전 새벽에 누군가 옥탑방 바깥문을 두드리던 것이 생각났다. 집 밖으로 나와 옥상 여기저기를 살펴보니 현관 앞쪽과 포치 창문 앞에 흙 발자국들이 찍혀있었다. 불안함이 엄습하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작은 소리에도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급히 옥탑방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고향으로 내려오기 전 다시 부모님과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혼자 살 집을 찾다가 공공임대 입주자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경쟁률이 센 곳이라 되겠나 싶은 마음으로 별 기대 없이 신청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서류통과가 되었다! 그때부터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최종 당첨 발표 전까지 매일 기도했다.
'제발 저 집을 저에게 주세요…. 저기서 남자 친구랑 같이 살고 싶어요…!'
남자 친구와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동창으로 알고 지낸 사이라 관계 진전이 빨랐다. 양가 가족들과도 인사를 다 한 상태여서 결혼식 날만 잡으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사실 결혼식보다는 남자 친구와 얼른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빨리 신혼집을 구해 결혼 날짜를 잡고 싶었다.
최종 발표날, 예비 순번 40번대로 뽑혔다. 내 순서가 오려면 얼마나 걸릴까 대강 계산해보며 남자 친구와 결혼 시기를 예상해보았다. 그런데 며칠 뒤, 계약 포기를 한 사람들이 빠져서 순번이 당겨졌단 연락을 받았다.
OH MY GOD! 계약 순번 마지막 번호로 당겨졌다!
그렇게 나는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온 지 한 달만에 신혼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계약 순번으로 당겨졌단 연락을 받고 흥분을 주체 못 해 계약 전까지 답사를 몇 번이나 왔는지 모른다. 주변 상가도 둘러보고 주차장, 편의시설, 산책로, 햇빛 방향 등등 일일이 체크하며 고심 끝에 동호수를 정했다. 입주 청소도 직접 땀 흘리며 창틀부터 문틈까지 꼼꼼히 쓸고 닦았다. 줄자로 여기저기 길이를 재고 채워 넣을 가구와 가전을 골랐다. 큰 가구부터 작은 소품들까지 소재, 색상 하나하나 비교하며 골랐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들에 내 시간과 정성이 묻어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해서 더욱 뜻깊었다.
옥탑방을 꾸미고 채우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행복함에 안정감이 추가됐다고 해야 할까. 안정감이라는 것은 또 처음 느껴보는 것이라 신기하고 좋았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잠시 일을 쉬는 동안 이 안정감이 일에 대한 내 열정을 식히는 것을 느꼈다. 지금 너무 행복하고 편안하고 좋은데 다시 아등바등 그 치열한 경쟁 속으로 뛰어들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사람이 참 간사하고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욕이 없던 나였는데 '집'으로 인해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또 다른 '집의 의미'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집'과의 밀당이 필요했다. 전업주부로 살 자신은 없었기에 일을 다시 시작하려면 '집'과 거리두기를 해야 했다.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니 '집'과 '나', '안정감'과 '열정'의 균형이 잡히기 시작했다. 신랑이 그 균형을 잡아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가진 신랑은 나보다 집안일에 더 열정적이다. 그래서 내가 '집'에 쏟을 에너지를 아끼고 '나'를 돌보는 데 보탤 수 있도록 해주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나도 신랑이 버거워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도와주고 신랑이 자신을 돌볼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신랑과 매일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생각하는 '집의 의미'를 공유하고 서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함께 노력했다. 그 덕에 '불안함'으로 변질될 수도 있었던 '안정감'은 내게 긍정적인 의미로만 자리 잡힐 수 있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함께하는 '집'이기에 이전보다 더욱 다양하고 큰 의미들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선다. 앞으로 어떤 집과 어떤 날들이 펼쳐질까.
나의 애정과 정성과 취향이 가득 담긴 이 집에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는 지금이 나는 정말 행복하다. 처음 집에 발을 들이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신랑과 부둥켜안고서 ‘여기가 진짜 우리 집이야?’ 신랑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아직도 이 집을 얻게 되고 입주를 하게 된 과정들이 생생하다. 지금도 이 집은 내게 정말 큰 행운이고 행복이다.
나 너무 행복해
집을 처음 보던 때부터 살고 있는 지금까지 매일같이 하는 말이다. ‘억압’이었던 ‘집’이라는 공간이 이렇게나 행복을 주는 곳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실제로 넓고 좋은 집이라 행복한 것도 있겠지만, 집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집’이란 곳을 어떤 것들로 채우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궐 같은 부모님 집에서 숨 막혀 허덕이던 나처럼.
허름하고 낡은 옥탑방에서 행복해하던 나처럼.
마음이 공허하고 여유가 없다면 주변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보길 바란다. 좋아하는 사진을 뽑아서 붙여도 좋고 예쁜 장식품이나 의자, 이불 같은 가구나 침구도 좋다. 내가 자주 바라보고 닿는 곳들에 내 취향과 내 색깔을 묻혀보자. 그러다 보면 나와 조금씩 친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함께 사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가 가진 '집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자. 함께 '집'의 균형을 맞춰나가는 과정을 통해 나뿐만 아니라 상대의 마음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집’은 내 마음을 대변하는 공간,
나에게 ‘집’은 그런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