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들을 간직하는 방법
부산으로 이사하면서 집 근처의 해변으로 산책을 자주 간다. 갈 때마다 새로워서 걷는 거라면 질색하는데도 한두 시간씩 산책하다 오곤 한다.
예전부터 바다라면 환장하는 터라 자칭 타칭 별명이 “바다라면 그저 좋은 육지촌년”이었다.
바다 산책을 갈 때마다 경치에 감탄하고 사진에 영상에 한창 찍다가 배터리 방전되면 파도 보며 멍 때리다가 오는 게 루틴이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다를 느끼다 오기를 몇 번, 이렇게 예쁜 바다를 추억하고 간직할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 그러다 집에 있는 조개 장식들이 생각났다.
우리집 앞바다에서 내가 직접 재료들을 채집해서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래서 다음 바다 산책 때 신랑과 함께 파도에 밀려온 바다친구들을 주워 모았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자연이 만든 모자이크도 눈에 들어왔다.
바다 경치를 즐기다 간 작은 새의 발자국도 보았다.
신난 우리 집 강아지 낑깡이의 발자국도,
노을이나 모래사장,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외에도 바다는 예쁘고 귀엽고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어릴 때 밖에서 돌아다니다 들어올 때마다 자질구레한 것들을 주워 들고 와서 엄마에게 혼나곤 했었다.
비둘기 깃털, 둥글고 매끈한 돌멩이, 주인 잃은 액세서리, 알록달록한 포장끈 등 내 나름의 기준으로 맘에 들고 이쁜 것들이었다.
나이를 먹으며 위생관념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바닥에 떨어진 것에 관심을 잃게 되었다. 대신 소품샵이나 구제샵에서 자질구레한 예쁜 것들을 사 모으는 취미가 생겼는데 친한 친구들은 '예쁜 쓰레기'를 모은다며 놀리기도 했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이면 친구들이 받고 싶은 선물을 고르라고 하는데 그때도 나는 소위 '예쁜 쓰레기'인 것들을 골라 친구들에게 한소리 듣곤 했다. 이제는 내 취향을 알기에 더 좋은 것을 고르라고 종용하던 친구들도 알아서 내가 좋아할 만한 '예쁜 쓰레기'들을 사주곤 한다.
신랑과 함께 서로 채집한 것들을 보여주며 ‘이거 어때? 이거 이쁘지?’ 자랑하듯 얘기하다가 웃음이 났다. 왜 웃냐는 신랑의 물음에 ‘어릴 때 이런 거 주워오면 엄마한테 등짝 맞았었는데, 다 커서 신랑이랑 이러고 있으니까 웃겨서’라고 말했다. 신랑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따라 웃었다.
동심을 되찾은 기분이지?
정답☺️
이런 순간, 이런 기분을 신랑과 함께 누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역시 내 평생 단짝이야.
우리만의 에피소드를 하나 더 채운 날이었다.
밥때도 놓쳐가며 바다를 헤집다가 집에 돌아왔다. 집에서 채집한 것들을 1차 세척하고 쟁반에 담고서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뿌듯함에 배가 불렀다.
채집한 것들을 한 번 더 세척하고 건조하기 위해 쟁반에 수건을 깔고 하나하나 겹치지 않게 펼쳐 놓았다.
바다에서 본 모자이크에서 영감을 받아 나름 감각적이게 놔봤다. 각각의 매력을 가진 개체들이 합을 이루며 하나의 작품이 된 모습을 보니 뿌듯함이 한 번 더 파도처럼 밀려왔다.
며칠 뒤에는 유목을 채집하고 왔다.
낑깡이가 자기 장난감인 줄 알고 자꾸 물려고 해서 고생 좀 했다.
유목 채집의 가장 큰 수확인 매끈하고 굴곡이 매력적인 아이!
이것 외에도 작은 가지, 넓적한 나무뿌리(?) 등등 수확이 괜찮았다.
이제 재료는 어느 정도 구해졌으니,
이걸로 만들어볼 것들을 이것저것 열심히 구상 중이다.
어떤 완성품이 나올지 모르지만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즐거워서 만족스러운 완성품이 나오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을 것 같다.
취미란 그런 것이니까. 잘하지 않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 취미니까.
해나가는 과정들을 행복하고 소중하게 추억한다면 그것으로 완벽한 취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