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적 사고와 행동에서 자유해지기.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몸이 피곤하거나 아프더라도 해야만 마음에 안심이 돼요.”
“몸무게를 하루에 10번도 넘게 쟤는 것 같아요. 쟤고 또 쟤고. 이런 제가 너무 미워요.”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음식을 씹고 뱉고 씹고 뱉어요. 이런 제 자신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어요.”
혹시 여러분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문장이 있었는가.
섭식장애(식이장애, eating disorder)를 가진 이들에게는 위와 같은 강박적인 행동, 그 이면에 숨겨진 사고와 관념들이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대개 아래와 같은 문장의 모습을 띄고 있다.
"~를 해야만 한다."
"반드시 ~되어 있어야 한다."
"절대 ~하면 안 된다."
강박적인 사고와 관념들의 틀을 발견하는 것은 식이장애를 회복하는 길에 중요한 요소다. 나는 강박적인 사고가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정하며 수용해 나가기까지 꽤 오랜 시간들이 걸렸으며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강박과의 인연을 지속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강박에서 자유로워 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관념들과 정반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반대의 사고를 하면서 살아가도 나에게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그리고 온전히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과연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바뀔 수 있을까? 억지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 하며 허벅지 살을 꼬집어가면서 해보면 달라질까?
절대 그렇지 않다.
자책의 대가인 나는 오히려 정반대로 살아가는 것 자체를 하나의 '강박'으로 가져와 결국 자책의 수레바퀴에 들어가고 말았다. 경험하며 알게 된, 그리고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방법들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1단계 : 강박 사고 나열하기
종이든 핸드폰 메모장이든 어디든 좋다. 생각나는 대로 나에게 '~해야만 한다.', '~하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쭉 적어본다. 이 과정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첫출발의 단계로서 우리의 내면을 만나는 중요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예들이 강박적인 사고들이 될 수 있다.
'얼굴은 절대 부어있으면 안 된다.'
'저녁 6시 이후로는 절대 금지.'
'하루 900kcal가 넘으면 안 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루에 운동 최소 1시간 이상 해야만 한다.'
'다리는 부어 있으면 안 된다.'
'구토를 하지 않으면 몸무게는 원래보다 더 불을 것이다.'
2단계. 강박과 대화하기
강박사고, 행동들과 대화하는 단계이다. 모든 생각과 행동에는 원인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 사고와 행동을 하고 있는 나에게 질문을 던져 근본적인 것을 발견한다. 왜 가지고 있는지, 그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될 것 같은지에 대해서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함으로써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관념을 만나게 되는 접점에 이르게 된다.
예를 들어 ‘얼굴 특히 턱에 살이 찌면 절대 안 된다.’라는 강박사고를 가지고 있어 매 순간을 거울로 턱살을 체크하고 살이 찌지 않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운동하고 마사지하며 칼로리를 최대로 줄이며 지내는 강박적 행동을 보이고 있다면 그런 나에게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과 대화를 해보는 것이다.
"턱에 살이 쪄있으면 왜 안돼?"
"예뻐 보이지 않잖아."
"예뻐 보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거 같은데. 설명 해 줄래?"
"사람들이 그러면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
"사랑을 받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는데?"
"내 존재가 사라져 버릴 거 같아."
타인에게 예뻐 보이고 사랑을 반드시 받는 것으로 존재를 채워가려고 했던 지난날을 만날 수 있게 된다.
3단계. 순간의 강박을 만나기, 알아차림.
이제 본격적으로 강박과 마주할 때가 되었다. 마주한다는 것은 의식적으로 강박적인 사고와 관념이 스쳐 지나가는 그 찰나를 알아차려주는 것이다. 다른 것은 할 것이 없다. 알아차려주고 난 후 뭔가 다독여 주거나 위로해 줄 필요가 없다.
그저 알아차려주는 것.
그것으로 끝이다.
"아. 지금 게워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구나."
"아, 씹고 뱉는 것을 하고 싶구나."
"운동을 하지 못해서 불안한 마음이 드는구나."
"칼로리가 자동적으로 계산이 되고 있구나."
강박을 만나 '너 거기 있구나.' 하는 이 과정.
강박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려주고 거울로 비춰주는 것이다. 알아차리는 과정만 하여도 거의 모든 것을 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정을 하다 보면 하루에 수십 번씩 스스로를 얼마나 괴롭히고 모질게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이 오는데, 그때부터 자신에 대한 연민과 불쌍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아. 오죽했으면 이런 생각(행동)이 들까."
4단계. 중화하기
그래. 어떤 강박적인 사고와 행동을 품고 있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도 알았고 이제 강박이 올라오는 발견하고 알아차릴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강박적인 사고가 침투해 오늘도 구토하고 씹고 뱉고 싶고, 설사약을 먹고 싶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 이윽고 눈 떠보니 나도 모르게 이 많은 양의 음식을 다 먹어 버렸다니! 그리고 바로 화장실로 가서 게워내는 형국이 또 벌어지고 있다니. 어떻게 해야 한다 말인가.
3단계까지 과정을 거쳤어도 여전히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괴로운 마음이 드는가? 당연하다. 진정으로 강박에서 자유로워 지기 위해서는 벗어나려고 하는 시도 자체를 멈추고 마음을 내려놓으면서부터 시작된다. 강박이 우리를 장악하고 있는 힘은 생각보다 거대하여 우리를 집어삼켜서 지배하고 있다. 그런 강박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나 스스로가 강박과 친구가 되면서 강렬하게 올라온 강박을 조금씩 달래면서 누그러뜨리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또 게워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다.
"그래. 게워내고 싶고, 게워 낼 수밖에 없는 너의 마음을. 그 아픔을 내가 잘 알아. 하고 싶지 않아도 잘 되지 않는 너의 마음도 내가 잘 알아. 벗어 날 수 없어도 괜찮아. 게워내도 괜찮아. 어떤 걸 해도 다 괜찮아. 게워 내고 있어도 어쩌면 너의 존재는 소중한 존재일지도 몰라."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 내 안에서는 온갖 화와 분노가 올라왔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뭘 소중한 존재는 무슨! 네가 날 알아주기나 했어? 알면서도 또 행동한 네가 진짜 한심하고 추잡하다. 너 같은 건 살 가치가 없는데 무슨 소중한 존재라는 거야? 그냥 넌 이대로 살아. 평생 살찔까 봐 두려워하면서 사람들 눈치나 보면서 그렇게 살라고."
하지만 나는 지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중화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래. 너의 그 마음 내가 잘 알아. 믿어지지 않지. 소중한 존재라는 게 믿어지지 않지. 근데 나도 사실은 믿어지지 않는다? 근데 괜찮아. 믿어지지 않아도. 넌 믿어지지 않아도 돼.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뭔지 알아? 너를 지켜내는 사람은 나뿐이야. 그러니 나는 이제 더 이상 널 못 본 척하지 않을 거고 소중하게 다뤄줘야 할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어. 그대로 널 내버려 두지 않을 거거든. 그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고 나도 미숙하고 두렵게만 다가와.
나조차도 믿을 수 없고 너도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얘기해줄 거야.
그래서 널 지킬 거야. 넌 믿을 수 없어도 돼. 난 그래도 널 사랑하고 보호하려고 노력할 테니까."
5단계. 버텨보기
실제로 강박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시도해보는 단계이다. 예를 들어 구토하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한다면 하루에 예를 들어 5번 구토한 것을 1번 정도 줄여보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구토하려고 하는 충동이 올라오면 그 대신할 수 있는 ‘나만의’ 대체하는 행동을 정해서 이를 실천해보는 것도 좋다.
구토하고 싶은 충동이 올라올 때 바로 옆에 있는 부드러운 인형을 만지작 거리며 자신을 돌본다거나, 노래를 부른다거나, 심호흡을 한다거나 시간이 된다면 위의 2-4단계를 거치며 나와 대화해본다.
*과정을 거치기 전 유의사항
한 번에, 1/10씩!
이 모든 과정을 실패해도 괜찮다. 오히려 실천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전보다 더 나빠지는 순간도 자연스레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나빠지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분명히 달라져 있다.
그래도, 다 괜찮다.
단지 우리는 회복의 과정 그 중간에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뿐이다.
목표를 크게 잡아서 다 한꺼번에 이 5단계를 하려고 하지 않고 한 번에 1/10 씩 시도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앞서 설명했듯 강박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 과정 자체를 '또 다른 강박'으로 가져와 시도하지 못하거나 시도했음에도 실패를 거듭한 자신에 대하여 자책하고 절망하게 될 수 있다.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지 않기를 바란다.
수십 년 그렇게 살아온 연약한 아픔들이 하루, 일주일, 일 년 동안 한다고 해서 바로 달라지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이상적 기대이다. 물론 긍정적인 결과를 가지고 왔다면 진심으로 자신을 향해 기뻐해 주고 칭찬해줘야 할 일이지만 오늘은 잘 지켜질지도 모르지만 내일은 실패하고 오히려 더 나락을 빠져들 수도 있으니 그런 자신과 맞닿뜨렸을때 놀라지 말고 혼란스러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니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기를 바란다. 오늘도 식이장애라는 힘든 여정을 거치려고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내딛어보려 하는 자신을 향해 따뜻한 자비와 연민의 마음을 갖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