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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바 Nova Mar 10. 2022

나 아픈데 그래도 몰라줄거야?

섭식장애가 당신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


3년 전 어느 날 아침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소화를 미처 시키지 못하고 담아두었던 감정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 온 몸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호흡을 하며 감정을 느껴보려고 눈을 감았다. 숨이 불규칙하게 쉬어지면서 안절부절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호흡 속에서 내 인생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았다. 어찌해야 할지 매 순간 안절부절 못하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 그 모습을 그대로 호흡이 담아주고 있었다.  


마음에 울림을 듣고 싶었다. 

뭐라고 얘기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원하고 있는지. 


다만 눈물 뿐이었다.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남아 있는 것은 그냥 여태까지 타인을 위해 살아온 삶 속에 찢기고 찢겨진 누더기 옷을 입은 내 모습 뿐이었다.  


아침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팠다. 끊임없이 배가 고프고 또 고파왔다. 오랜 시간 거식을 이어가며 먹지 않은 결과였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먹은 것의 영양분과 사이즈가 얼마나 부실한지 다 알고 있었다. 차라리 인식을 못하는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상황이 잘못된 방향으로 점점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뻔히 보였지만 멈출 수 없었다.  


계속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꼬리뼈가 바닥에 눌리는 통증, 그리고 척추 옆쪽 등 부분에 찌릿찌릿한 아픔이 느껴졌다. 아프면서도 미친 사람 처럼 말도 안 되지만 좋았다. 


살이 그만큼 없다는 뜻이니까. 


비실대며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쫙 빠져버린 상태. 

그래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 


다시말해,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누가봐도 그 몸을 보고 뭔가를 빨리 하라고, 해내라고 닥달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앓고 있었던 거식증을, 어린 시절부터 매일 밤 숨죽이며 우는 그 고통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랬다.  

몸도 마음도 최악의 상태로 만들고 싶은 욕구가 물밀 듯이 일어났다. 평생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무기력감에 살았는데, 사람들의 평가와 비난을 받지 않고도 놓아버릴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상태가 바로 몸이 아픈 것이었다. 






말하는 대로, 생각한대로



'말하는대로 생각한대로' 라는 노래 가사가 있듯,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현실이 창조된다. 그리며 상상한 대로 미래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풍요속에서 느끼는 그 에너지가 현실에 실제로 투영되서 환경과 상황, 사람을 통해 보여진다.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끌어당김의 법칙을 적용하여 자신이 바라는 그 모습을 이뤄낸다. 


어느 날 부터 였을까. 


'아팠으면 좋겠다.', 

'하얀 병실에 침대에 누워 있고만 싶다.' 


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하면서 그런 내 모습을 시도때도 없이 상상했다.  


오래전 한 친구가 역류성식도염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음식을 먹으면 항상 목에 뭔가 걸린 것 같고 가슴과 명치가 답답해서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데, 이제는 어떻게 숨을 쉬는지 까먹을 정도라고 했다. 중간에 얘기를 하다말고 '잠깐만' 이라고 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거칠게 내뱉으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친구의 얘기를 들으니 나 또한 목에 뭔가 걸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안 쉬어 지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누군가가 내 고통을 알아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친구의 아픈 에너지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거식증이 심하게 오면서 실제로 친구가 겪은 그 증상이 나에게도 나타났다. 

점점 몸은 더욱 말라만 갔고 일부러 먹지 않기 위해 애를 쓴 것이 이제는 먹고싶어도 먹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스스로 집 안에서 조차 걸어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루에 병원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하고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닌 해가 되는 것을 생각하면서  반복적으로 상상하니 실제로 그 주파수와 동일한 에너지가 현실에서 창조된 것이다. 




아프다고, 

나 많이 아프다고. 

이래도 몰라줄거야? 


이 목소리의 실체는 처절한 거식의 울부짖음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사람들에게 알아달라고 외치는, 

목소리로만 생각해서 더 자신을 포기하고 망치기 위해 거식하고 또 거식했다. 그러나 정작 거식이 전달하고자 했던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었다. 

그 뼈아픈 진실을 몸이 으스러지게 망가지고 나서야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는 더 이상 못살겠어.' 


타인을 위한 삶으로 나를 잃어버린 것. 

그들이 바라는 외적인 모습이 되어 사랑받고 관심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나. 

거식이라는 것을 통해 연약하고 마르고 날씬한 모습으로, 신체의 연약해진 모습 그것을 통해서라도 사랑과 관심, 돌봄의 결핍을 채움 받고 싶었던 것. 

그 아픔을 거식은 알아주길, 바라봐주길 원했던 것이다. 



거식, 섭식장애가 오늘 당신에게 주는 메세지는 무엇인가. 

눈을 감고 호흡하며 들어보자.

그 메세지를 듣는 것 부터 진정한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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