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성실

by 런던브릭

어제 축구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 준이를 픽업하러 갔는데 코치님이 수업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훈련과 관련된 얘기는 들어도 그런가 보다 싶어서 한 귀로 흘려들었는데 마지막에 한 얘기는 내 맘에 콕 박혀서 계속 곱씹어보게 된다.

축구 훈련에 성실하게 참여해야 한다.
공부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 한다.
밥도 잘 먹어야 한다.
밤에 일찍 자야 한다.
너희는 모든 생활에서 반듯해야 한다.


뭐 대단한 얘기는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하루하루 성실함을 쌓아가라는 조언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 한마디에서 국가대표와 프로선수로 살아온 코치님의 성실하고 절제된 인생이 보였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예전에 머리에 먹물만 잔뜩 찼던 시절에는 몸으로 승부를 거는 인생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워낙 내 인생과는 동떨어진 부류라고 생각해서 사실 오해랄 것도 없고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그들의 노력과 성과가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가 추구하고 앙망하는 인생은 아니었기 때문에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1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유교식의 사농공상 마인드가 내 피에도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


건축과 1학년 때였을까, 내 기억엔 35동 5층 강의실 전 00 교수님이었는데…

"너희는 머리에 먹물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게 빠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먹물을 빼야 한다."

며 수업 중에 훈계 비슷한 말씀을 하셨는데 난 딱 20년 걸렸나 보다.

(근데 교수님은 먹물이 빠지셨을까.. 급 궁금. 가장 빼기 힘든 직업일 거 같은데 ㅋ)


암튼 하나님은 그렇게 나의 지난 20년 간 내가 붙들고 의지하던 것들의 힘을 서서히 빼신 것 같다.

그래서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 것 같다.

항상 느끼지만 하나님은 내게 참 제너러스 하시다.

누군가에겐 폭풍과 같이 휘몰아치시며 가르치고 훈련하시던데 나에겐 엄청 오래 기다려주시고 서서히 알게 하시는 것 같다. 뭐가 더 좋은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그게 내게 가장 맞는 방법이니 그렇게 하셨으려니... 싶다.


가끔 주변에서 준이나 건이가 진짜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하곤 한다.

나도 고민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 분야가 부로 따지면 The winner takes it all 시장이고, 명예로도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게 느껴지는 분야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리고 아이들 수준이 아주 타고난 실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에 본인이 간절히 원하지 않으면 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만약 아이들이 정말 이 길이 자신의 인생을 걸어봄직 하다고 판단하고 전혀 말도 안 되게 가능성이 없는 게 아니라면 나는 적극 지원해줄 생각이다.


인간의 생각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정도로 자유롭지만 육체는 이 땅에 발 붙이고 있기에 내가 노력하는 만큼만 발전하고 노력하지 않는 만큼 퇴보한다. 때로는 연약하여 다치기도 하고 병들기도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절제하고 관리하며 노력하는 성실함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몸으로 자기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가는 그 하루하루의 성실함을 더 높이 산다.

작가의 이전글어버이날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