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출근하고 싶어요
내가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9호선은 문을 여닫을 때마다 가끔 기관사가 안내를 직접 해주는 경우가 있다. 사실 1~8호선에서는 “출입문 닫습니다” 안내를 주로 녹음된 멘트로 들었던 기억인데, 유독 9호선 이용 시에 직접 마이크에 대고 말하는 걸 자주 듣는다. 9호선이 출퇴근 시간에 혼잡도가 유독 높아서인지, 홀로 민자라서 시스템이 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녹음된 멘트가 아닌 라이브 멘트가 튀어나오면 갑자기 현실감이 나고, 더불어 의례히 타고 내리던 행위에 대해 경각심 있게 주변을 살피게 되는 건 사실이다.
오늘 9호선 기관사는 젊은 남자분이었는데 급행열차의 출입문을 여닫을 때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이제 출입문 닫으니 다음 열차 이용해 달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자 처음에는 녹음된 멘트처럼 “출입문 닫습니다”를 두어 번 사무적으로 반복하다가, 그럼에도 꾸역꾸역 밀고 타는지 조금 있다가는 한옥타브 올라간 톤으로 다급하게 “출입문 닫습니다”를 연발, 문이 몇 차례 더 열리고 닫힌 다음에는 두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로 출입문 멘트에 이어 “다음 열차 이용해주세요(제발!!!) “ 을 외치고, 급기야는 “그만 타세요”라고 소리쳤다.
누가 들어도 화가 났고, 신경질이 잔뜩 묻은 목소리였다.
그저 어서 문이 닫히고 열차가 출발하여 옆에선 승객의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이 비좁은 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기관사의 외침을 들으며, 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개미떼처럼 무식하게 밀고 들어오는 걸 멈추고 인간답게 좀 가자고, 바쁜 것은 너만이 아니고 일찍 일찍 좀 다니면 안 되냐고 속으로 생각한 것도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침의 사태는 정원이 한참 넘었는데도 미식축구 선수처럼 어깨부터 들이미는 승객이 잘못했지, 기관사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미 열차에 타고 있던, 갑자기 강제로 관전자가 되어버린 그 승객들은? 기관사가 누군지도 모르는 다이빙 승객과 싸우는 소리를 출근길 9호선 승객들은 모두 온몸이 옴쌀달싹 끼인 채로 하릴없이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여의도에서 시작된 이 싸움은 이어진 노량진 역에서도 동작역에서도 계속되었다. 6량 급행열차의 1량에 탄 인원은 많으면 200명 될까? 그럼 대략 잡아도 12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저 반복되는 신경질적인 멘트를 듣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이들에게 생긴 소음으로 인한 총 마이너스 양은 과연 얼마나 될까?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반복해 들으면 불편해지는 것인데 아침부터 몇십 번씩 날이 선 멘트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만큼의 짜증이 돋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만약 그 기관사를 데려다가 그 지옥철 한가운데 세워놓고 출근길 내내 계속되는 멘트를 듣고 있어보라고 한다면 분명 그는 얼굴이 붉어져 당장 멘트의 횟수를 줄이고,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몰입하여 반복한 본인의 멘트가 이런 환경에서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적 변화를 일으키는지 알게 된다면 말하기 전에 좀 더 고민해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비행기의 아기 울음소리는 밀폐된 공간의 의사표시 못하는 아기의 불가항력적인 소음이라고 하고, 야구장의 응원단 앰프는 자발적으로 직관을 선택한 자의 감내하는 소음이라고 한다면, 출퇴근길 대중교통편에서 기관사 멘트는 시민들에게는 대체 불가한 이동수단 내의 불편함이지만, 어쩌면 기관사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쉬이 개선 가능한 부분이 아닌가.
“저희 9호선 직원일동은 승객 여러분의 쾌적한 환경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라는 매일 듣는 안내 멘트가 실감이 나도록, 승객에게 적절한 온도 뿐 아니라 적절한 고요감도 제공받을 수 있도록 고민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