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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표 쓴 이선생 Jun 16. 2024

고1 성적표를 처음 보게 될 학부모들에게

<썬데이 입시> 1화

학교에서는 7월 중순부터 고1 학생들의 첫 학기 말 성적표를 나눠주기 시작합니다. 이 글은 고1 성적표를 처음 보게 될 학부모들을 위해 씁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반드시 학교 시설을 안내해 줍니다. 익숙했던 중학교를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오는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함이죠. 안내를 자세히 해 주어도 교실을 못 찾아 헤매는 아이들이 꼭 있습니다. 3월의 1학년 교무실은 '과학실 어디예요', '체육관 어디예요', '이동수업 교실은 어디예요?'라는 질문으로 가득합니다. 야간자율학습을 하더라도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반 친구들도 모두 새롭게 만납니다. 중학교 3년 동안 익숙해진 친구들을 떠나 새로운 친구들과 교실을 공유해야 합니다. 어떤 친구는 쉽게 친해질 수 있지만, 어떤 친구와는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갈등도 발생하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웁니다.


가장 큰 변화는 급격히 늘어난 학습량과 학습 수준, 그리고 평가 방식입니다. 과목별로는 많지 않아 보이는 학습량도 8과목을 합치면 엄청난 양이 됩니다. 시험을 쉽게 내면 참 좋을 텐데, 교사 입장에서는 마냥 쉽게 낼 수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내 교과를 더 열심히 공부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적절하게 변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섞여 있습니다. 수준이 높아진 수행평가도 부담입니다. 학기별로 2회 정도의 수행평가를 실시하는데, 겹칠 때는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모든 걸 열심히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들은 수행평가 철에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ABCDE로 산출되던 절대평가에 익숙해져 있다가, 같은 A여도 석차와 등급이 나뉘는 상대평가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됩니다. 친구들과 성적을 비교하며 때로는 안도감을, 때로는 자존감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시험이 끝나자마자 펑펑 우는 여학생 주변에 친구들이 몰려들어 위로하는 장면도 흔히 보게 됩니다.


종합해 보면, 고1 학생들은 물리적 환경, 인적 환경, 학업의 양과 수준 및 평가 방식 등 세 가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누가 대신 경험해 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학생 혼자서 감당해야 할 부분입니다. 따라서 이 커다란 변화에 적응해야 할 책임을 나름으로 이행 중인 고1 학생들에게는 가정에서의 따뜻한 지지가 중요합니다. 이제 곧 아이들이 1학기 성적표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따뜻한 지지를 보내주실 수 있다면, 새로운 환경에서 고생한 아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아이들을 격려하는 방식은 교육 주체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학교는 학생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학습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교정해 줄 수 있는 인지적 성장의 조력자가 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겠지요. 가정은 아이가 가져온 결과를 평가하기 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다고 격려해 주는 심리적 지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를 충분히 쉬게 한 후에 좀 더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가정에서 따뜻한 지지를 받는 학생일수록 부족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더 고민하고, 학교에서 학업 상담을 받을 때도 더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얻은 부족한 결과 때문에 불편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상담했던 많은 학부모님은 아이들이 얻은 결과에 대해 수용적이고 따뜻한 지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거란걸 여러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간혹 성적에 실망감을 보이는 학부모도 있었습니다. 고3 진학 상담 중 아이와 부모가 대화를 나누는데, 아이의 말이 변명투성이입니다. 가족 간에 이런 대화를 듣고 싶지는 않았는데, 라고 속으로 생각할 정도로 불편했던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정말 심한 경우, 성적표를 위조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 아이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어른들의 책임입니다. 자녀를 위하는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된 결과인 것이죠.


기다림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제 성인이 되는 과정이니 독립심도 점점 커지는 나이입니다. 부모나 선생님이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걱정되고 불안할 수 있지만 기다리셔야 합니다. 단, 자녀에 관한 정보를 모른 채 기다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성적과 관심 진로 정도는 알고 계시다가, 아이가 스스로 의욕을 보일 때는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학업 목표와 계획에 대해 자연스럽게 대화하실 수 있을 겁니다. 첫 성적에 실망하지 않고 따뜻한 지지를 보내주는 부모님들 덕분에 우리 고1 학생들이 학업적 자존감을 잃지 않고 3년의 고교 생활을 주도적으로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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