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차 일본직장인 잠시 쉼표를 찍다
2020년 5월 30일은 조금 특별한 날이다. 시원섭섭한 날이다. 일본에서 일하던 4년 차 직장인이 일본에서의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귀국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익숙했지만 남 일 같았던 '번아웃'을 직접 경험하고 내 인생에는 없을 것만 같았던 '휴직'을 했고 보이지도 않는 저 밑까지 방황하다 겨우 정신을 차려 귀국을 결정했다. 결정에 도달하기까지 그렇게 머리 아프게 생각을 했었으나 막상 '퇴사'를 정하고 나니 속이 시원했다. 한 번 정하고 나니 퇴사 수속을 포함해 가구 처분까지 모든 것을 일사천리에 진행하고 있었다, 내가.
'이제 한국에 오면 뭐할 거니?' 엄마가 계속 묻는다. 이 질문에 가장 적절한 조미료는 한숨을 빼놓을 수가 없다. 코로나로 세계가 불안하고 취업시장은 말할 것도 없다는데 정말 무슨 자신감으로 이 시기에 퇴사를 선택했을까? 일단 지금 퇴사를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고 한 달 뒤에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있을 것 같았다. 걱정하고 잔소리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옆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잠깐은 평온한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휴직을 하면서도 오롯이 나 혼자 있는 시간을 지낼 수 있었지만 역시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가족의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에서는 대학교 3학년 겨울부터 취업활동을 시작한다. 취업활동용 정장을 입고 기업 설명회, 그룹 디스커션, 끊임없는 면접 등 '나를 채용시장에 팔기 위해' 열심히 움직인다. 그렇게 시작한 취업활동을 4학년 7월에 마무리 지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조금 늦은 마무리였지만 그때는 한동안 뿌듯함에 취해 살았다. 그렇게 일본 회사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3년 동안 세 번의 전근을 다니고 승진도 하며 나름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듯했다.
2년 차에 30명의 팀 멤버를 관리하는 자리로 승진했고 그 해 겨울부터 멘탈이 부서지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80명을 관리하는 곳으로 이동하며 꾸역꾸역 일을 소화했지만 내면의 나는 아주 잘게 부서지고 있었다. 아마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너를 봐, 이 소리를 들어봐'라고 꾸준히 신호를 내보냈는데 월 50시간 가깝게 잔업을 하며 살아가던 내게 그런 목소리가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그러다 올해 초 나는 터졌다. 괴로움마저 컨트롤할 수 없어 자발적으로 병원에 찾아갔고 선생님은 당장 일을 쉬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달에 나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고 조용히 말해주었다.
진단서를 상사에게 보내고 본격적인 휴직이 시작되었다. 3년 만에 처음 맞이하는 휴식이었다. 휴직 한 달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서 보냈고 눈을 뜨면 맞이해야 할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어서 잠만 잤다. 눈이 떠져도 다시 잠들 수 있도록 일부러 눈을 감고 지냈다. 아마 이때부터 퇴사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지 싶다. 앞으로 나는, 휴직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퇴사를 결정하기까지의 시간을 기록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또) 부단히 노력할 나의 움직임을 기록해두고 싶다.
2020년 올해 서른인 내가 '서른'이라는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글을 쓰면서 헝클어진 기분을 정리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뜨거웠던 예전의 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도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