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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Jan 16. 2021

평균은 폭력이다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직장인의 평균 연봉, 대한민국 남성과 여성의 평균 키, 평균 결혼 연령, OECD 평균 자살률.


신문 기사 헤드라인에 이런 말들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것이 어떤 영역에 관한 것이든지 나 자신만큼은 사람들의 평균보다는 낫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 속에서 내 위치를 비교하고 가늠해 보고 싶은 마음에 기사를 클릭한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가도 직장인 평균 연봉 기사를 보고 나서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하고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물론 더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사실에, 과도한 경쟁으로 살기 힘든 대한민국을 원망하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나만 힘든 건 아닌가 보다 생각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평균이라는 말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만큼 이질감이 없는 단어이면서도 한편으로 참 이상한 말이기도 하다.


'평균'이라고 이야기할 때, 보통은 수학적으로 산술평균을 의미하며 그 정의는 "주어진 수의 합을 수의 개수로 나눈 값"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평균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상황에 가치판단이 포함된 사회적 용어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있다.


우선, 남들과 비교해서 내가 뒤처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을 때 평균 수치를 살펴본다. 위에서 말한 평균 연봉, 평균 키, 평균 결혼 연령. 신문기사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조직 내 평균보다 더 잘하고 있는지 혹은 못하고 있는지 비교하게 된다. 


"그냥 평균 정도는 돼."


다시 말하자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주 나쁜 건 아니야."


여기서의 평균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을 말한다. 최소한의 수준이라고 함은 평범함 또는 뛰어나지 않다는 의미로, 어느 정도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가치판단이 내포되어 있다. 


이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평균을 어떤 집단을 대표하는 값, 즉 이상적인 값으로 생각하는 경우다.


미국 클리브랜드 건강 박물관에는 '노르마'라고 하는 여성상이 있다. 이 작품은 15,000명의 젊은 성인 여성들의 신체 치수 자료의 평균값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여성상이 그 당시의 여성의 체형을 대표할 수 있는 체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심지어 이 조각상과 신체 치수가 근접한 '이상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을 뽑는 대회까지 열게 된다. 


사람들의 예상은 참가자들 다수의 신체 치수가 평균치에 근접해서 승부가 밀리미터 단위로 아슬아슬하게 갈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9개 전체 항목에서 평균에 가까운 여성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으며, 5개 항목만 한정하더라도 그 수는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노르마를 닮은 여성을 찾기 어려운 것은 신체 치수의 극도의 다양성 때문이었다. 키, 가슴둘레, 팔 길이, 다리 길이, 허리둘레 등 각각의 항목은 서로 상호 연관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평균은 집단을 대표하는 이상적인 값이 아니었다.


토드 로즈의 책 <평균의 종말>에는 이 노르마의 사례를 통해 사람들이 평균이라고 하는 개념을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개인을 평가할 때는 변변치 않은 사람, 그저 그런 사람의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집단을 평가할 때는 평균값이 그 집단의 특성을 설명하는 전형적 표본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변호사, 노숙자, 멕시코인이라는 집단을 떠올려보자.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이미지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선입견을 바탕으로 그려진 모습이 있다. 변호사라고 하면 깔끔한 비즈니스 정장을 입은 지적인 남자를 생각하고, 노숙자를 떠올리면 초점 없는 눈에 말이 없고, 지저분한 옷과 머리, 지린내, 그리고 언제 폭력적으로 변할지 모를 위험성이 생각난다. 멕시코인의 경우는 마약 갱단이나, 외국계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노동자, 목숨을 걸고 미국 국경을 넘어가는 사람들만 보다 보니 우리 인식 속에 그들은 가난하고 무식하고 거칠다.


만약, 미국에서 사업이 망해 맨해튼의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멕시코 출신 변호사 하비에르를 만난다면?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으로 취업해 온 아흐마드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면? 일본 극우 정치세력들의 제국주의적 야심을 욕하며 소주를 마시다가 옆 테이블에 앉은 일본 사람 타카시와 우연히 인사를 하게 되었다면? 


과연 그들은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해당 국가의 이미지에 걸맞는 성향이나 행동패턴을 보여주게 될까?


우리가 가진 특정 집단에 대한 이미지는 (그것이 맞든 틀리든) 그 집단의 경향성일 뿐이지 한 개인의 성향이나 행동 패턴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 중 한 명의 개인을 만나게 되는 경우,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의 전형적인 이미지나 공통의 행동 양식에 따라 그 사람도 행동할 것이라고 예측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어느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점심 식사에서 한 어머님이 불쑥 이렇게 말을 꺼냈다.


"(맞벌이로) 할머니 손에 자란 애들은 어떻게든 티가 나지 않나요? 그런 애들만 따로 반 만들어주면 안 되나?"


직장 때문에 학부모 모임에 자주 나갈 수 없었던 내 지인은 모처럼 휴가를 내고 모임에 참가했다가 상상하지도 못한 이런 막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이런 편견과 폭력적 태도가 아직 여전하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특히 자녀 교육의 문제와 닿아있는 지점에서는 오히려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 것 같다.


이전 글 <냄새에 이성을 잃다>에서 내 사례를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예전 우리 아이의 초등학교는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길 건너 빌라촌이었는데 같은 반 학부모들이 '횡단보도 건너편에 사는 애들하고 놀지 말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 우리 아이는 '횡단보도 건너는 아이'였다.

이성적으로는 본인들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정당화했을 것이다. 그들의 선입견에서 보자면, 빌라에 사니 형편이 어려워 맞벌이를 할 것이고, 애 교육에 신경을 덜 쓸 것이며, 아이는 잘 씻지 않고 옷도 잘 안 갈아 입어 '냄새'가 날 것이니까. 그 냄새는 타고난 것이라 한 두 번 씻어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 아이와 놀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참고로, 이 횡단보도 건너는 아이에 대한 담임 선생님 종합의견은 이랬다.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개인 준비물과 식사도구를 잘 챙기며 다양한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태도가 우수하고 배움노트를 꼼꼼히 정리함.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다양한 학습전략을 이용하려는 태도가 바람직함. 친구들과 친하게 잘 지내고 항상 고운 말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 인기가 좋음.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므로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음.


" 물론 괜찮은 애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그 애의 특수한 사례인 거예요. 확률과 경향성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아이를 혹시 모를 그런 위험에 노출시켜 입시를 망치게 할 순 없어요. 맹모삼천지교! 환경과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세요? 친구는 나중에 얼마든지 사귈 수 있다구요."


대학입시 준비의 관점에서는 그분들의 생각이 아마 맞을지도 모른다. 난 그런 방면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니까. 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생각이 없다. 하물며 사람의 만남과 그 관계는 말할 필요도 없다. 




평균을 기준으로 남과 자신을 비교하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평가하고 계층화하는 이 사회의 오래된 습관은 어쩌면 우리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오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평균과 표준화가 지배했던 대량생산의 산업사회를 지나 이제는 개개인의 다양성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관계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우선은 능력과 성향이 사회가 제시하는 평균과 다를지라도 그것은 열등하거나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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