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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Nov 14. 2020

냄새에 이성을 잃다

소셜믹스가 어려운 이유

우리는 가끔 냄새에 취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기억해 내는 일이 있지만 냄새는, 맡는 순간 이유를 알기도 전에 강한 감정에 사로 잡히게 한다. 그 느낌이 즐겁지 않은 것일수록 감정 밑바닥까지 강하게 휘젓는 경우가 있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마르셀이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설의 내용을 빌어, 특정한 냄새를 맡으면 과거에 경험한 일을 연상하게 되는 현상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을 뒷받침하는 연구도 있었는데 미국 모넬 화학감각 연구센터의 레이철 헤르츠 박사는 향기가 뇌의 감정 영역에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코의 냄새 신경세포가 연결된 곳이 뇌의 변연계에 있는 편도체와 해마인데 이들은 각각 감정과 연상학습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냄새를 맡는 순간 감정의 영향을 받고  과거의 기억을 연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냄새가 우리에게 강력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땀과 담배에 찌든 일용직 아저씨의 냄새. 공사장 시멘트의 마른 흙냄새, 밤새 영업을 뛰고 새벽녘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 안 홀아비 냄새. 노량진 수산시장의 비릿하고 짭짜름한 물 냄새. 


그 땀냄새와 흙냄새, 홀아비 냄새와 비린내는 우리 아버지의 냄새이고 나와 우리 노동자들의 냄새인데 내 본능은 그 냄새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노동과 땀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의 삶에서 그 상징성이 갖는 아름다움의 1%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과 땀의 가치를 생각하는 우리의 이성은 원초적 본능이 감지하는 냄새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리라.


급진적인 글쓰기를 했던 조지 오웰'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구 계급 차별 문제의 진짜 비밀과 맞닥뜨린다. 그것이 부르주아로 자란 유럽인은 자칭 공산주의자일지라도 몹시 애쓰지 않는 한 노동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여길 수 없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요즘에는 차마 발설하진 못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꽤 자유롭게 쓰곤 하던 섬뜩한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우리는 외모가 부족하거나, 종교가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도 '가끔은' 사랑에 빠질 수 있다. 심지어 살인자나 납치범에게도 호감을 느끼는 일도 있다. 그러나 냄새는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생존본능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는 것마저도 막을 수 있다.  냄새가 나는 사람에게서는 사랑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우리의 편견에 의해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서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믿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인종, 다른 나라, 다른 성별, 다른 소득 수준의 사람들에게 말이다.


문제의 본질은 중산층 사람들이 노동 계급은 더럽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아울러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이유 불문하고 노동자는 '본래부터' 더러운 존재라고 믿는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건설 인부가 입을 댄 병의 물을 마시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예전 우리 아이의 초등학교는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길 건너 빌라촌이었는데 같은 반 학부모들이 '횡단보도 건너편에 사는 애들하고 놀지 말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 우리 아이는 '횡단보도 건너는 아이'였다.


이성적으로는 본인들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정당화했을 것이다. 그들의 선입견에서 보자면, 빌라에 사니 형편이 어려워 맞벌이를 할 것이고, 애 교육에 신경을 덜 쓸 것이며, 아이는 잘 씻지 않고 옷도 잘 안 갈아 입어 '냄새'가 날 것이니까. 그 냄새는 타고난 것이라 한 두 번 씻어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 아이와 놀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괜찮다. 이해한다. 


우리는 함께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면서도, 막상 어울려 살기는 힘든 동물인가 보다. 차라리 우리에게 후각을 없애면 조금이나마 함께 살기 편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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