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업무 파트너인 J가 전화로 인신공격을 하며 나를 괴롭힐 때, 그 순간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아 그냥 가만히 당하고 있었다. 하나도 여과되지 않은 채 내 뇌와 정신 깊숙이 꽂히는 말의 화살들.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전화를 끊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퇴근길에 버스도 타지 않고 한참을 걸었다.
나를 공격한 J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나에 대한 자책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한동안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의기소침해지기 십상이었고, 가끔씩 멍해지는 시간도 잦아졌다. 사십 대 후반의 나이에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느 늦은 오후, J는 한 달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하자마자 위압적인 말투로 내 업무 스타일이 어떻네, 메일이 마음에 안 드네 공격을 해왔다. 여차저차 상황을 설명했는데 '말만 논리적인 척 하면 다냐', '네가 일하는 방식이 싫다'라고 하면서 계속 몰아붙였다.
내가 '화 좀 내지 마세요.'라고 했더니 이제 제대로 폭발한 듯했다.
"뭐? 화 좀 내지 마세요?! 내가 진짜 한 번 화를 내봐? 내가 무슨 화를 냈다는 거야!"
그리곤, 계속 나를 깎아내리는 말들을 퍼부었다. J는 지능적이어서 절대 욕은 하지 않으면서도 질문 형태로 모욕을 주며 상대방에게 계속 답변을 강요한다. 나는 더 이상은 아니다 싶어 J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지금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에요? 이런 식이면 더 이상 통화 못 합니다. 전화 끊을게요!"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손이 후들거리고 어지러웠다. 미친놈의 수작에 제대로 난도질을 당하기 일보직전이었는데 다행히 그 순간 대화를 차단하고 빠져나왔다. 잠시 밖에 나와 숨을 돌리고 팀장과 면담을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더 이상은 이런 상태로 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껏 J와의 관계, 내 담당 임원의 입장과 나와 같이 일하는 후배 사원을 먼저 걱정하며 이 모욕을 모두 참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격장애자를 상대로 한 싸움은 이길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적어도 이런 환자가 내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정확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필요했었다.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경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다행이다.
아마 J는 자신에게 굴복하지 않은 것에 분노하며 조만간 다시 나를 공격해 오겠지만 이제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화를 차단할 것이다.
칼럼리스트인 정문정 씨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서 이런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나 자신은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생각들을 소개했다. 정문정 씨의 전략을 요약하자면,
무례한 사람들이 당신을 공격할 때 적절한 피드백을 주어 그것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려야 하며, 나 자신은 그런 무례한 말에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드백이란 것이 대단한 논쟁이나 말싸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처 받았음을 표현하고 그 자리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피드백이 된다.
물론 아무 대응도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에는 나 스스로를 보호하고 상처 받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데, 저자는 법륜 스님의 강연에서 힘을 얻었던 사례를 소개했다. 이 책에 소개된 원문 그대로를 인용해본다.
그가 한 말들이 자꾸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 시작하던 중, 평소 좋아하던 법륜스님의 강연을 접하게 됐다. 한 여학생이 스님에게 고민을 상담했다.
"스님, 어떤 사람이 저에게 상처를 준 게 자꾸 생각나요. 고등학교 때 학교 폭력을 당했거든요. 저는 아무 이유 없이 욕을 들었는데 남자라서 때릴까 봐 욕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1년이 지났는데도 자꾸 생각나서 괴로워요."
"길을 가는데 갑자기 누가 자기에게 뭘 주고 갔어요. 선물인 줄 알고 열었는데 안을 보니 쓰레기예요. 그럼 질문자는 어떻게 하겠어요? (중략)
나쁜 말은 말의 쓰레기입니다. (중략) 그런데 질문자가 가만히 있었는데 그 사람이 쓰레기를 던졌어요. 그러면 쓰레기인 걸 깨달았을 때 그 자리에서 쓰레기통에 탁 던져버리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 쓰레기를 주워서 1년 동안 계속 가지고 다니며 그 쓰레기봉투를 자꾸 열어보는 거예요. '네가 어떻게 나한테 쓰레기를 줄 수 있어'하면서 그걸 움켜쥐고 있는 거죠. 그 사람은 그 쓰레기를 버리고 이미 가버렸잖아요. 질문자도 이제 그냥 버려버리세요."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와는 절대 싸워서 이길 수 없다. You Just Walk A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