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by 에포케

15년.

친구.


앞으로 있을 삶 속에서 새삼스레 축하받을 일이라곤 1년에 한 번 있는 내 생일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다. 흥미와 자극은 사라지고 반복되는 삶이 전부겠지. 글쎄. 모든 사람들의 삶이 나와 같진 않겠지만 크게 다르지도 않을 거라 생각하니 그토록 염원하던 어른의 세계는 허울만 있는 쭉정이 같았다. 꽃처럼 향기롭진 않아도 한 여름 상긋한 풀 내음처럼 싱그럽기라도 할 줄 알았다. 아. 그런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은은하게 지속되는 늘임표가 아니라 스타카토처럼 짧았다. 그렇게 삶을 불평하다 비관으로 넘어갈 뻔할 무렵. 8월의 끝자락에 선선한 밤공기를 타고 그 사람이 내게로 왔다.


그 사람과의 대화는 부담스럽지 않았고 편안하며 즐거웠다. 그날을 회상하려니 입가의 미소가 수채화처럼 번진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들에 들떠 바이킹을 탈 때처럼 발가락을 간질였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절친한 친구에게 내 소식을 알렸고 새로운 관계에 대한 불안한 감정들도 나눴다. 기대하지 않던 행복이 갑작스레 찾아오면 언젠가 잃을 거라는 불안감으로 찰나의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만든다. 막연한 불안이라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잠재울 수없을 땐 절친한 누군가의 목소리를 찾는다. 그는 당연하게도 내게 따듯함을 건넬 거라는 걸 알기에.


15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안정감은 견고했고 특별한 우정이라 여겼다. 그 시간 동안 모든 추억을 세세히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그 친구가 내게 어떤 존재인지는 굳이 헤아리지 않아도 늘 간직하는 감사함과 감탄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 친구가 생각하는 나와의 관계가 나와 같은 정도와 깊이는 아녔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계기가 있었고 그 이후로 친구에 대한 여러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쌓여가는 연차에 의미 부여를 크게 했던 걸까.


그래 나는 그 친구에게 많이 의지했지. 내가 그 친구에게 받은 것들에 비해 내가 준 것들은 참 별개 아녔을 거야.

그 친구는 비바람 속에 다람쥐가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투박하게 서있는 뿌리가 튼튼하고 나뭇잎이 무성한 고목나무 같다고 여겼다. 우직하게 한 곳에 서있는.

그런데.

'사람을 보고 싶은 대로만 본다는 말'에 세게 얻어맞았다.


나는 관계를 구걸하고 관심을 애원했다. 나의 간절함에 나 만큼의 절박함으로 답해준 이는 없었다. 그건 불가능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툰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결핍된 애정과 인정을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찾으니 채워질 리 없었다.

그 친구의 성품이 정말로 고목나무일지언정 나를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서야.

그 친구를 보고 싶은 대로 봤던 콩깍지를 거둬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그렇게 몇 년을 거슬러 기억들을 복기시켰다. 그 역시 불안정함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아이였다. 나의 결핍을 그 친구로부터 채우려 투정 부릴 때 느꼈을 부담이 얼마나 컸을지...


스스로를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시기에 그 친구를 떠올리며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애써 상기시킬 수 있었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중독적이다. 나른한 봄 햇살이 창문을 가득 채우는 방안의 침대에서 볕 냄새나는 폭신한 이불에 몸을 한껏 파묻은 일요일 늦은 아침 같다.

그렇게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해 친구의 어떤 면은 못 본 척하고 싶었나 보다. 멋지다고 여겨지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인정은 효력이 크니까.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길 바랐다.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까지도.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편견과 판단은 원래 생각에 있던 지박령 같아서 한 순간의 깨달음으로 달라질 게 아니라 계속해서 생각을 점검해야 겨우 달라질 기미가 보이는 정도니 어려움의 난이도는 평생 해야 하는 다이어트와 맘먹지 않을까.


함께 여러 해를 맞이하면서 가끔 손가락을 접어가며 햇수를 헤아렸다. 벌써 15년이 지났다는 말 이후로 20, 30년이라는 세월을 손가락으로 헤아리게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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