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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Mar 20. 2018

검색은 권력이다

2007년의 검색은 지금의 AI 처럼 무서웠다

아래의 글은 2007년 고)정재윤님께서 유니타스브랜드에 특집에서 기고하셨던 글입니다. 



전 세계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 특정 검색업체. 

국내 검색 점유율이 70%에 육박하는 특정 검색업체가 등장할 정도로 정보 편중이 심화하고 있다.

이들에 의해서 정보가 공유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감시되는 것이 아마겟돈 Armageddon 후 우리가 누리게 

될 평화의 실상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손 


법은 약자 앞에 강하고 강자 앞에 약하다.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유력 정치인, 경제인들의 판결문을 보라. 상당수는 ‘죄는 용서할 수 없지만, 그간 사회에 기여한 바를 참작하여....’라는 식의 상투적 문구가 포함된다. 만인 앞에 평등은 이미 물 건너갔고, 편견은 소신이란 가면을 덮어쓴 채 저잣거리를 활보한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과 편견으로부터 독립되기란 쉽지 않다. 웃기는 얘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래서 공정성·신뢰성이란 말은 오히려 기술친화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를 실감시켜 주는 좋은 사례는 바로 ‘페이지랭크 PageRankTM’라는 구글 Google의 독자적 검색 기술이다. 


페이지랭크는 약 500가지 변수와 20억 개의 용어에서 세밀한 공식을 사용해 객관적 인웹페이지 노출순위를 매긴다. 예를 들어, A라는 웹페이지를 B, C, D등의 웹페이지에서 링크하고 있으면, 구글은 이러한 링크를 일종의 우호적 투표행위로 보고 노출 순위를 높여준다. 가령 ‘현영’이란 키워드에 가장 많이 링크된 웹페이지는 그녀에 대한 정보를 가장 충실히 담고 있을 것이라 간주하여 검색 시 최상위에 노출되는 것이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가만 생각해 보면, 기술은 멍청했던 것이 아니라 우직했던 것이다! 


우리가 검색의 공정성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검색이 세상의 관심사를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성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검색엔진이 보여주는 정보에 따라 세상에서 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배워야 할 것 그리고 사야 할 것 등에 대해 학습한다. 이때 검색 행위는 본인 의지였지만, 그 검색 결과는 기술에 의해 필터링된다. 매 순간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검색 제국을 향한 야망 

권력은 확장 지향적이다. 그것은 선천적이며 또한 맹목적이기까지 하다. 결국, 권력이 스스로 꿈꾸는 유토피아는 바로 ‘절대권력’인데, 제국화는 이러한 야망 달성을 위한 부단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럼에도 제국의 점령 통치 통제 방식에서 야수성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 이빨을 숨긴 포식자는 평화와 선이라는 가면을 쓴 채 미소 짓고 서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제국화는 정치 군사보다는 경제 기술적 담론에 더 가깝다. 특히, 기업들이 지향하는 제국적 야망(글로벌화, 인수합병, 사업다각화 등)은 끝이 없다. 예를 들어, 구글 웹사이트에는 매월 약 5억 명이 접속하며, 검색 웹페이지 80억 개, 검색 이미지 10억 개, 전 세계에 걸쳐 158개의 도메인을 가지고 36개의 다양한 언어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창립 10년(1998년 설립)이 채 안 돼 브랜드 가치 1위를 차지한 그 엄청난 영향력 때문에 “전 세계가 이제 글로벌라이제이션 Globalization이 아니라 구글라이제이션 Googlization으로 움직이고 있다.”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구글은 중국시장 내 사업허가를 얻고자 ‘방화 장성(防火長 成)’이란 인터넷 검열 시스템을 거친 뒤 검색 결과를 열람할 수 있는 중국 정부의 언론자유 제한 조치에 타협했다. 이에 따라 중국어판 구글에서 천안문 사태, 파룬궁, 티베트 독립, 민주, 자유 등 중국 정부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단어로는 검색이 이뤄지지 않거나 결과 페이지가 열리지 않는다. 이로 말미암아 국경 없는 기자회 등 많은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이 거세게 구글에 항의했다. 


이익을 위해 시장을 확대하고, 시장 확대를 위해 필요하다면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검색 업체가 스스로 검색 입구를 봉쇄’하는 수정주의적 조치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이 문제는 ‘구글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글 자신의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라는 모토가 스스로 발목을 붙잡는 양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제국의 야망에 일순간 암운이 드리워지면서, 구글이 당면한 절실한 문제는 어쩌면 성전을 치를만한 강력한 힘이 아닐까? 즉, 구글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것은 “약해지지 말자(Don’t be weak).”라는 새로운 모토일 것이다. 



끝과 끝은 다시 만난다 

현존하는 최고의 권력은 국가도, 기업도,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바로 종교(宗敎)다. 종교는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해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그야말로 절대권력에 가장 근접해 있는 존재다. 

기업들은 종교를 벤치마킹한다. 상품은 부족할 것이 별로 없고 기술경쟁은 점입가경이다. 상품이나 기술은 영속성을 지니기 어려워서 기업은 상품보다 가치 value에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간 서로 상반된 길을 걸어왔던 종교와 기업은 서로 닮아가는 양상을 띤다. 종교는 마케팅에, 기업은 영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한다(기업에게 사회공헌은 세속적 영리 추구에 대한 면죄부 역할을 한다). 


정보기술 기반의 기업들에 있어서도 영성 추구는 중요한 이슈다. 애플이 사랑받는 이유는 디자인 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보이는 것 이면에서 느껴지는 가치, 즉 창조적 도전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구글에 열광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검색 기술 때문만은 아니다. 구글이 내세운 “악해지지 말자.”라는 절대적 가치를 추종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에서, 기술은 유토피아에 도달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징표일 뿐이다. 하지만, 기술이 기대 수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있고, 그 기술을 영적 가치 덕택으로 돌릴 때 기업은 급격히 우상화된다. 구글처럼 말이다. 구글은 영리했다. 그들의 기술개발은 악해지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뛰어난 검색 결과는 공명정대함의 표상으로, 검색 엔진 마케터들의 인위적 조작은 가롯 유다의 배신행위 같은 응징의 대상으로 믿게 했다. 


하지만, 맹신은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현재 구글의 공격적인 인수합병도 모두 선을 추구하려는 노력으로 보이게끔 한다. 지난 몇 년간 구글은 피카사(Picasa, 블로그), 키홀(Keyhole, 위성지도), 라이틀리(Writely, 문서작성), 유튜브 (YouTube, 동영상 공유), 더블클릭(DoubleClick, 인터넷 광고), 피드버너(FeedBurn-er, 블로그 RSS), 그리고 젠터(Zenter, 슬라이드쇼) 등 싹수가 보일 만한 업체들을 돈 잔치를 벌여가며 공격적으로 인수해 오고 있다. 특히 2006년 10월 발표되었던 유튜브의 인수는 직원 67명에 수익이 채 나지 않는 회사를 16억 5천만 달러(약 1조 6,500억 원)에 인수하여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구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구글 광신도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인수합병조차 기업이 아닌 종교적 행위로 합리화될 태세다. 정의의 잣대는 사회적 통념이 아니라 구글의 행동에 의해 좌우된다. 


끝과 끝은 언젠가 다시 만난다. 전 세계 시장점유율이 50%가 넘는 특정 검색업체, 국내 검색 점유율이 70%에 육박하는 특정 검색업체가 등장할 정도로 정보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선의의 의지만 갖춘다면 사회 경제 민주화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 날 것이지만, 역으로 얘기하면 영향력이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정보평등’이 아니라 ‘정보 독점’으로 귀착될 위험성도 가지고 있다. 공유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감시되는 것이 아마 겟돈Armageddon 후 우리가 누리게 될 평화의 실상일지도 모른다 


                

권력은 알고리즘으로부터 나온다 

검색이 근본적으로 권력지향적인 이유는 바로 ‘알고리즘 Algorithm’ 때문이다. 알고리즘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컴퓨터 용어로 진공 포장해 놓은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검색 엔진마다 정보를 수집, 분류, 노출시키는 알고리즘은 각기 다르다. 따라서 똑같은 검색어를 입력해도 노출되는 결과가 상이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권한은 검색업체의 성역에 속하며, 알고리즘의 이러한 속성은 사용자들의 관심을 통제할 수 있게 만든다. 

              

검색엔진 마케터들은 역추적 방식을 통해 이런 알고리즘을 파헤치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검색업체들은 이를 비웃기나 하는 듯이 수시로 업데이트를 단행한다. 구글 댄스, 네이버 댄스란 말은 알고리즘 변경에 의해 검색엔진의 노출 순위가 상승됨으로써 사업자들이 기뻐 춤을 추는 것을 빗댄 것이다. 보통 이것은 검색 랭킹 조작을 시도하려는 스패머들을 걸러낸다는 명분으로 단행되는데, 이 때문에 뜻하지 않게 노출 순위가 밀려 사업에 타격을 입는 선의의 피해자도 발생한다. 업데이트가 잦아질수록 검색순위는 불안정해지고, 사업자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용을 들여 검색광고를 게재하는 것이 최상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결국 기뻐서 춤을 추는 자는 사업자가 아니라 광고수입이 증가하는 검색업체 자신이 아닌가!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제기된다. 기술이 사람보다 공정할 수 있다고 언급했었지만, 과연 기술은 이익이나 편견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기술의 이면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은 사람이며, 따라서 우리에게 노출되는 검색 결과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절 대로 공정할 수 없다는 자가당착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검색엔진의 알고리즘에는 자사의 철학이 투영되어 있다. 예를 들어보자. 구글이 만약 ‘악해지지 말자’라 는 모토에 충실하려면, 그 검색 알고리즘 작성에 있어서도 이러한 가치를 달성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선 과 악에 대한 기준은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한다. 따라서 구글은 자신의 신념을 기준으로 알고리즘을 ‘조정’ 하겠지만, 이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명백한 ‘조작’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영문도 모른 채 검색에서 배 제되거나, 노출 순위가 밀리거나, 혹은 부정적 성향의 문서가 무작위로 노출된다면 엄청난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확률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불운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 입장이 되면 과연 그럴까?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법이다. 


검색은 실상 공공재 public goods가 아니다. 기업이 개발의 주체이기 때문에, 실상 이것은 공공재로 윤색된 영리재이다. 따라서 자사의 이익에 부합하는 알고리즘을 지향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전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구글이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타협한 경우가 단 한 번으로 그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검색이 공정하다는 착각은 집단최면의 결과일 뿐이다. 



검색하면 다 나와 

업무상 미팅 준비를 위해, 혹은 개인적 호기심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굳이 언론사의 인물정보에 수록될 정도의 유명인이 아니어도 좋다. 이제는 일반인들까지도 블로그나 미니 홈피를 검색하면 그 사람에 대한 사적 정보까지 훔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가 아는 어떤 후배는 미니홈피에서 소개팅 상대의 이름과 생년만으로 상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게시판의 글과 몇 장의 사진은 기본일 뿐. 방명록을 뒤져보니 친구관계, 이성관계 등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다. 굳이 조사까지도 필요 없다. 


"검색하면 다 나와!" 


수많은 정보들이 검색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개인정보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를 통제하기란 쉽 지 않다. 관계를 맺은 타인들도 이에 가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의 블로그  미니홈피는 기본이고, 통합검색을 해보면 카페 활동 사진 동영상 등에서도 본인조차 몰랐던 개인정보들이 노출되기도 한다. 사람 들은 이러한 검색 결과를 통해 한 사람에 대한 인상, 활동, 인품까지 총체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는 검색 결과가 좌우한다. 당황스럽기 그지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색업체에게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가입약관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개인정보 보호는 기본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다. 따라서 검색은 책임은 없고 정보는 있는 치외법권적 존재다. 


누군가 나를 검색하고 있다는 것이 기분이 나쁜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더 기분이 나쁜 것은 오히려 검색에서 소외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존재는 기억記憶에 의존해 왔지만, 이제 기록記錄에 의존한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검색으로부터의 배제는 배신감마저 들게 한다. 역으로, 검색에서의 잦은 노출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편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정보공개는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개인 브랜딩의 일환이다. 우리는 이러한 연유로 스스로를 검색에 종속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개인은 미분화되어 가지만, 검색은 개인의 일거수일투족까지 파악하고 더 나아가 행동까지 제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화한다. 예를 들어 행동 타깃팅 behavior targeting이란 기법을 적용하면 한 개인의 이동경로 click stream를 지긋이 추적해 가면서 그에 적합한 광고를 노출시킬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당신의 관심은 스캔되고, 검색은 당신의 이메일을 헤집고 다니며 소비시킬 상품을 정확히 매칭 시킨다. 속내를 들키는 듯싶어 기분 나쁠지는 몰라도, 구글의 G메일은 2.8기가의 초대용량 메일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이를 상쇄한다. 분명, 검색을 향한 자발적인 예속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검색은 매체_시장의 융합로
 

부富는 선천적으로 탐욕스럽고 본능적으로 포식자적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나 가난한 선비는 그저 경제적 무능력자로 치부될 따름이다. 사치는 가진 자의 여유이며, 자존심은 돈 앞에 무릎 꿇는다. 별로 달갑지 않은 ‘현실’이긴 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것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엄연히 공존한다. 부는 그래서 권력과 속 궁합이 썩 좋은 편이다. 옛날에는 권력에서 부가 나왔지만, 지금은 부에서 권력이 나온다. 


부와 권력 간의 패권다툼에서 멀찌감치 비껴서 있던 정보 기술이 이제 이 둘을 아우르기 시작했다. ‘정보 경제 시대의 도래’는 정보야말로 부와 권력의 원천임을 가르쳐 주었다. 인터넷의 성장은 많은 정보를 공공 재로 변화시켰고, 정보의 양을 급팽창하게 만들었다. 양은 질을 개선시킨다. 언론 기사들이 무료로 제공돼고 전문가 칼럼들도 더 많이 양산된다. 게다가 해외정보들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정보의 인프라가 좋아지자, 시간낭비의 원흉이었던 검색기술도 진일보했다. 이에 따라 사용자의 검색 활용도가 높아지고, 이에 편승한 검색광고가 등장했다. 그간 애물단지로 여겨졌던 검색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돌변했다(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보는 공공재로 변화하지만 검색은 영리재로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검색은 ‘광장廣場에서 시장市場으로’ 변모했다. 검색 행위는 소비행위가 되었고, 검색 결과는 구매행동의 단 서가 된다. 이제 중소  자영업자들의 매출을 좌우하는 것은 전단지나 입간판이 아니라 60~90원부터 시작하는 검색광고다. 검색은 ‘경제의 경제(메타 경제)’로써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검색은 관심 의견  경험이 결집하는 ‘매체이자 시장 Media & Market’이다. 그간 이 둘은 분리되어 있었다. 상 식적으로 신문사와 백화점은 겸업이 힘들 것 아닌가? 하지만 검색은 이러한 경계를 붕괴시켰다. 인터넷 정보는 휘발성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 년 전에 등록된 지식검색 내의 질문  답변도 구매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검색 이정보와 상품을 융합시키고 있다.  




고)정재윤님과 검색의 시대가 어떻게 올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11년이 지났다.


[검색이 공정하다는 착각은 집단최면의 결과일 뿐이다. 존재는 기억記憶에 의존해 왔지만, 이제 기록記錄에 의존한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검색으로부터의 배제는 배신감마저 들게 한다. 역으로, 검색에서의 잦은 노출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편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정보공개는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개인 브랜딩의 일환이다. 우리는 이러한 연유로 스스로를 검색에 종속시키고 있다. ] 


정재윤님은 2007년에 우리가 살고 있는 미래를 보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AI(인공지능)의 검색과 매칭은 우리를 어떤 세상을 만들어 줄까?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극단적인 검색과 매칭의 그 날은 오게 될 것이다. 

2007년에 논의하면서 민감하고 불편하게 느꼈지면서 막연한 거부감으로 상상했던 [검색의 권력]은 2018년, 지금은 [일상의 검색]이 되었다.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과 질문에 대해서 더이상 사색하지 않고 검색을 통해서 찾게 되었다. 검색으로 우리가 스스로 사색과 탐구심을 포멧했고 이제는 우리의 머리속에 나의 두외가 아닌 인공지능으로 갈아치우게 될 시대가 된다.  이렇게 변하게 될 인간에게 인공지능은 어떤 편리를 제안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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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검색과 시장에 대해서 무덤덤한 사람이 있다면 이영학 본부장의 강좌를 추천한다. 마케팅으로 배우는 검색에서 우리의 삶터인 마켓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검색의 고수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색이 우리의 일상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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