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듦의 계절, 인디언 서머(2)
40대 중반이 되면 대부분 노후 대비나 은퇴 준비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지만, 실제로는 50대 중후반에 이르러 명예퇴직이나 정년퇴직을 앞두고서야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내 주변 중장년층이 게으르거나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할 뿐이다.
‘노후 대비’와 ‘은퇴 준비’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가 ‘노후 자금’이다. 안전한 노후를 위해 얼마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많지만, 금융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목표액을 맞추려면 내가 다시 20년 전 과장 시절로 돌아가야 할 판이다.
대학생 딸과 재수생 아들을 뒷바라지하고, 부모님을 부양하는 내게는 금융기관이 강조(혹은 강요)하는 방식대로 노후 준비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내 은퇴와 노후가 암울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이미 은퇴와 노후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가고 있다. 현재 나는 2040년에 온 나다.
현대 사회에서 중장년층은 노후 자금 마련에 대한 압박을 강하게 느낀다. 이는 안정된 노후를 위한 준비처럼 보이지만, 지나치게 재정적 준비에 몰두할 경우 삶의 다른 중요한 측면을 간과하게 되는 ‘터널 비전(tunnel vision)’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터널 비전은 특정 목표나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주변의 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회사의 마케팅 전략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금융회사들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노후 대비 상품을 홍보하며, 재정적 안정이 행복한 노후의 필수 조건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회사들은 고객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자신들의 상품에 의존하게 만드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현실 감각과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심리적 조작 행위를 뜻한다.)
100세 시대에 60세에 은퇴한다면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일자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노후 자금’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50대의 많은 이들은 인생의 ‘인디언 서머’를 맞이하면서도 주저하다 그대로 겨울을 맞이한다. 해결하기 어려운 ‘노후 자금’ 문제에 얽매여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천적이나 포식자를 만나면 몸을 굳히고 입을 벌린 채 죽은 척하는 주머니쥐(오포섬)처럼, 중장년층은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얼어 버린다. 노후 자금 걱정에 사로잡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다소 극단적인 비유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마치 독거미가 송곳니로 거미줄에 걸린 곤충의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꼼짝 못 하게 감싸는 것과도 같다. 금융 회사들이 미래 불안을 자극하는 마케팅으로 소비자들을 옭아매는 방식과 비슷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후 자금을 준비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노후 자금에만 집중하다가 앞으로 40년 넘게 이어질 자신의 삶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처럼, 자금 계획을 세우고 관리하다 보면 마음이 자연스레 그곳에 붙들리게 된다. 돈의 이자율, 수익률, 성장률에만 집중하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쉽다. 돈에 의존하는 삶은 마치 중환자실에서 산소 공급 튜브, 기관 내 삽관 튜브, 요도 카테터, 위장관 튜브, 체액 배액관 등 각종 장치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과 같다. 만약 이런 삶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나는 기본적인 정기 예금과 IRP 통장만을 통해 노후와 은퇴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가난한 아빠’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죽을 때까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내 인생의 ‘인디언 서머’를 보내고 있다.
출처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이런 말이 전해진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완성을 생각해야 한다.” 돈이 인생의 완성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이 들어감을 단순한 ‘aging’이 아닌 나의 정체성을 완성해 가는 ‘branding’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노후 자금’이라는 신경독에서 벗어나, 비로소 일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내 주변에는 노후 자금에 매몰되어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이상 성장하거나 모험하지 않고, 금융기관의 틀 속에 갇혀 자신을 생매장해 버린다. 특히 여유 있는 노후 자금을 가진 60대 선배들에게 이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골프, 취미, 여행, 와인 파티 등으로 은퇴 생활을 즐기는 것에 대해 반대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이들에게 ‘앞으로의 5년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최소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심장은 뛰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재정적 안락에 기대어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풍족한 노후 자금 속에서 스스로에게 안락사를 감행한 것이다.
나의 은퇴와 노후 준비는 50세에 시작되었다. 혼자서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unitasbrand2se396)을 개설하고, 파이널 컷 프로를 배워 그림을 그리고 자막을 넣으며 영상을 제작했다. 웹진(https://www.theunitas.net)도 만들었다. 참고로, 이 과정에서 돈은 거의 들지 않았다. 은퇴 후 국민연금으로만 생활하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렇게 은퇴 준비를 시작하여 책도 쓰고, 자기다움 클래스도 준비했다. 나는 2040년에 하고 싶은 일을 지금부터 하며, 나이 들어감과 죽음을 완성의 과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은퇴준비와 노후 준비를 한다면 돈이 아니라 이 질문에 대답해 보자.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의 답은 당장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미련한 나의 경우, 답을 찾기까지 무려 3년이 걸렸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하려 애쓸 때, 인디언 서머가 찾아온다. 겨울이 아닌, 따뜻한 인디언 서머가—어쩌면 다시 여름이 찾아올 수도 있다.
아래 교육 과정은 [더 이상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와 [두 번째 나]책을 모두 읽으신 사람을 위해 2025년에 시작될 [두 번째 나를 위한 자기다움 워크숍]입니다.
1주 차. 발견과 인정 (Uncover & Accept)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할 때 비로소 나답게 살 수 있듯이, 중장년의 전환기를 인정해야 비로소 성장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이 듦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나답게 사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이 듦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여정을 시작하자.
2주 차: 발견과 개발 (Discover & Develop)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직업명으로 그려진 목표였다. 중장년이 되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일하지 않을 때,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직업이 아닌 진짜 나의 정체성으로 답할 때가 되었다.
3주 차: 정의와 습관 (Define & Habit)
삶의 중요한 부분은 습관으로 이루어진다. 직업과 역할을 넘어선 정체성을 정의하고, 작은 습관을 통해 진정한 자기다움을 구축하자. 정체성은 반복된 선택과 습관에서 피어난다. 내가 되는 습관을 통해 자기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4주 차: 변화와 일상 (Change & Routine)
하루의 작은 변화가 인생의 혁신을 만든다. 하루를 설계하고 기록할 수 있는 종이와 연필만 있다면 충분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면 단순히 나이 들어갈 뿐이지만, 변화를 통해 내가 될 수 있다.
5주 차: 리셋과 설치 (Reset & Install)
나이 들어가는 것은 단순한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평가하며 진정으로 나다운 삶을 시작할 준비가 필요하다. 내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실천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자.
6주 차: 탄생과 명명 (Birth & Naming)
새로운 시작은 자신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 때 완성된다. 이제 새로운 정체성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가자. 그것이 바로 자기다운 삶이다.
7주 차: 회상과 성찰 (Recollection & Reflection)
과거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준비다. 실수와 성공을 회상하며 얻는 교훈은, 현재 나를 성장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8주 차: 기억과 창조 (Memory & Creation)
미래의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도구다. 상상을 통해 떠올린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자.
9주 차: 목적과 유산 (Purpose & Legacy)
나의 유산을 정의할 때,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가 분명해진다. 지금까지 나답게 살아온 삶을 정리하며 나의 인생 황금기를 준비하자.
10주 차: 연결과 공동체 (Connection & Community)
진정한 공동체는 혈연이나 학연이 아닌 같은 목적과 소명을 공유하는 사람들 속에서 찾아진다. 중장년의 삶은 직장인의 정체성을 넘어, 나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부족의 일원이 되어가는 여정이다.
관련 사이트
https://www.goodbrandgoodecosyste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