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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의 존재 이유

브랜드의 탄생

by 권민

브랜드의 존재 이유: 단순한 구별을 넘어선 의미 있는 구축


외부의 변화가 내부의 변화를 추월할 때,

기업은 브랜드를 '구별'의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구축'의 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어느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 담당자가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경영자에게 마케팅 진행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회의실에 들어섰다. 먼저 이번 달 잡지에 게재된 브랜드 광고를 펼쳐 보여주었다. 경영자는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페이지들을 차분히 넘겨보았다. 이어서 브랜드 담당자는 드라마 속 PPL 장면을 캡처한 사진과 함께 홍보 기사를 스크랩한 자료를 내밀었다.


경영자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기사 반응이 좋네. 우리 딸도 이 내용을 찍어서 보내주더라고!"

"네, 앞으로 노출을 더욱 공격적으로 확대하겠습니다. 광고 효과가 탁월해서 비보조 인지도와 최초 상기도가 20% 상승했습니다."

브랜드 담당자는 광고 집행 결재서를 건넸고, 경영자는 이를 훑어보며 지시했다.

"이 로고를 좀 더 크게 노출시키게. 국내 최초라는 문구는 빨간색으로 크게 강조하고, 우리가 경쟁사보다 34% 더 우수하다는 점도 확실히 부각하도록."

"네... 다만 이보다 크면 조금..."

"유튜브나 페이스북에도 더 많이 노출할 수 있나?"

"네, 오늘부터 광고 대행사를 2곳 더 추가하겠습니다."

"좋아요, 수고했어. 우리도 '허니...과자' 같은 스토리 마케팅을 해보자고."

이 대화는 브랜드 위기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만약 이것이 실제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 브랜드는 이미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브랜드 위기의 징후

이 사례에서 드러나는 브랜드 위기의 명확한 징후들을 살펴보자.


표면적인 마케팅 접근법
경영자는 잡지 광고를 확인했지만, 어떤 매체인지, 경쟁사는 어떤 전략을 전개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광고의 본질적 가치와 메시지보다는 단순히 노출 빈도와 시각적 크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효과보다 실행에 치중하는 방식
PPL과 기사를 검토했으나, 그것이 브랜드의 정체성과 소비자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분석하지 않았다.
'비보조 인지도'와 '최초 상기도'라는 수치는 언급되었지만, 이러한 지표가 실제 브랜드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심층적 고민이 부재하다.


브랜드를 단순한 '노출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태도
브랜드를 단지 인지도를 높이는 수단으로만 바라보고 있다.
브랜드의 정체성, 철학, 차별화된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경쟁사와의 단순 비교 우위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이 지속된다면, 브랜드는 결국 '광고의 덩어리'로 전락하여 소비자들의 진정한 신뢰와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브랜드의 본질, '구별'인가, '구축'인가?

많은 기업들은 여전히 브랜드를 '상품과 서비스를 구별하는 상징적 요소'로만 간주한다. 실제로 국가가 공표한 상표법 제2조 1항에서는 브랜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상표란 상품을 생산, 가공, 증명 또는 판매하는 사람이 자신의 상품을 타인의 상품과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호, 문자, 도형 또는 이들의 결합을 말한다."


미국 연방 상표법(Trademark Act) 역시 브랜드를

"제조업자 또는 상인이 자기 상품을 경쟁자의 상품과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 명칭, 상징, 기호 또는 이들의 결합체"

라고 규정한다.


이처럼 법적 정의에서 브랜드는 '식별과 차별화'를 위한 도구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것이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와 본질을 모두 담아낼 수 있을까?


브랜드는 단순한 '식별'이 아니라 '구축'의 대상이다

경영 사상가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마케팅이란 궁극적으로 브랜드를 구축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브랜드는 단순한 로고나 이름을 넘어선다. 브랜드는 기업의 철학과 가치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나의 '총체적 경험'이다. 즉, 진정한 브랜드 구축은 인지도, 개성, 충성도, 선호도, 가치, 연상 이미지 등이 일관되게 연결된 복합적 결과물인 것이다.

단순히 노출 빈도를 늘리고 로고를 크게 하는 전략만으로는 진정한 브랜드를 구축할 수 없다. 광고를 집행하고, PPL을 활용하고, 브랜드 로고를 키우는 것은 브랜드의 '외형'을 일시적으로 강화할 수는 있지만, 브랜드의 '본질'을 구축하는 과정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미래의 브랜드 전략. 브랜드는 존재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브랜드 전략 전문가 장 노엘 캐퍼러(Jean-Noel Kapferer)는 "오늘날 많은 브랜드들이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시장에서 무엇이 결여되었을까?'라는 근본적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브랜드를 단지 '구별'의 수단으로만 활용한다면, 그 브랜드는 결국 대체 가능한 소비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반면, 브랜드를 '구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업은 소비자가 그 브랜드를 통해 어떤 고유한 가치와 의미를 경험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이제 브랜드 전략은 단순한 차별화를 넘어,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아야 한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선택할 때 단순히 가격이나 품질만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브랜드가 전하는 철학과 가치,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함께 바라본다.

브랜드를 '구별'의 도구로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구축'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인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기업의 선택이, 앞으로 그 브랜드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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