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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주 Jul 05. 2024

공황장애, 너를 오해했다 (1)

2년 전쯤, 어느 날 불쑥 공황장애 초기 증상이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절대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담배 냄새가 나며 숨쉬기가 힘들어지곤 하면서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에도 출근길에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야 했다. 공황장애 초기 증상일 수 있다는 말에, 당시 나의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명상을 하고 호흡법을 배웠다. 가끔 스트레스로 머리 뚜껑이 푱!하고 날아가버릴 것 같은 날들은 여지없이 담배냄새가 나를 따라다니긴 했지만 증상이 가벼웠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는 아니어서 따로 병원을 찾진 않았다.


'이 정도 스트레스는 스스로 관리할 수 있어, 난 멘탈이 강한 편이니까. 지금까지도 힘든 일들 잘 이겨왔고, 상처 준다고 다 받지도 않을 거고, 당신들이 아무리 괴롭히고 나에 대해 험담한다고 해서 내 가치가 변하는 건 아니니까'

교과서처럼 나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의 몸이 하는 이야기를 무시한 채 주어지는 하루들을 그저 살아갔다.




그렇게 가끔 오는 두통처럼 띄엄띄엄 찾아오던 공황장애 증상은 2주 전, '내가 여기 있었노라' 라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 모습을 드러냈다. 발단은 대표에게 하는 업무보고 회의였다. 회사의 매출이 떨어진 것이 모두 직원 탓이라고 생각하는 대표는 사원부터 임원들까지 모두 개인별로 업무보고를 하라고 했고(참 체력 좋은 분이시다..) 내가 속해 있는 부서도 여지없이 순서가 다가왔다.


업무보고 당일, 나는 지난 1년 6개월간 잘해왔고 여전히 하고 있는 업무를, 심지어 작년 12월 작성하여 대표의 승인까지 받은 받은  2024년 업무의 핵심성과지표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그 업무를,  '왜 네가 하고 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해 온갖 막말들의 현란한 퍼레이드에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쁜 것도 잠시, 뒤이어 업무보고를 하는 직원들에게 쏟아붓는 대표의 막말과 쌍욕을 직접 듣고 나자 나는 놀라움과 황당함을 넘어 멍해졌다. 마치 꿈을 꾸듯, 이게 무슨 일이지?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멍했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치 영혼이 나간 듯한 모습으로 회의실을 나와 자리에 앉자 그제야 온갖 감정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분노, 당황, 황당, 놀라움 등 일차적인 감정들이 지나가자 여러 직원들이 있는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는 수치심과 모멸감과 자괴감 등 이차적인 감정들과 생각들이 따라왔다.



인간적으로, 지금껏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이런 막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일을 못한다, 그 일을 왜 했냐, 월급 아깝다' 등등. 무엇을 근거로 나에게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물음표를 백만 개는 달아 따져보고 싶었다. 게다가 지난 18년 동안 참으로 파란만장한 회사 생활들을 해 오고 별 일들을 다 겪었노라 나름 자부(?)했지만 직원들에게 쌍욕을 하는 것을 그 자리에서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업무적으로, 대표가 아무리 본인이 하는 얘기조차 기억 못 하고 회의 때마다 말이 바뀐다는 말을 듣긴 했어도, 특정 부서 직원에게 왜 그 특정 업무를 하냐고 하면 난 뭘 해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에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코딩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네가 왜 코딩 업무를 하고 있냐!라고 하는 상황이었다. 회의 시작과 동시에, 회사가 어려우니 제대로 못하는 직원들은 '다른 부서로 보내던가, 나가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나가게 하기 위해' 정해놓고 괴롭힌 건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팀장의 전화가 왔다. 그냥 무시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된다는 팀장의 지시를 따라 눈은 모니터에 손은 키보드에 있으면서도 온갖 감정들과 생각들이 밀려와 업무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담배 냄새는 다시 코끝에 머무르기 시작했고 심장이 빨리 뛰며 호흡이 어려워졌다. 평소에 연습했던 호흡법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코로 들이마시고 내시고는 아예 불가능했고 일반적인 숨쉬기도 어려워 모았다 쉬고 모았다 쉬며 한숨 쉬듯 겨우 호흡을 이어나갔다. 두통과 어지러움이 이어졌다.

'뭐야.. 이러다 정신을 잃겠는데..'


문득, 무서웠다. 부랴부랴 회사 근처 정신의학과를 알아보고 전화를 하고 퇴근 후 병원으로 갔다. 작은 병원인데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진료가 꽤 걸렸고 초진이라 예약도 없이 간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내 이름이 불려지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고, 지금 저의 증상은 이렇습니다."

나의 이야기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의사 선생님은 눈을 크게 뜨고 안경을 올리며 물었다.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네.. 요즘에도 그런 사람이 있고, 제가 그런 회사를 다니고 있네요.."

상담을 하고 약을 받아 터덜터덜 주차장으로 걸어가 복잡한 마음으로 병원 건물을 빠져나왔다. 언제나 그랬듯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에~!" 씩씩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엄마~ 나 이제 퇴근해~"

기분이 좀 다운되긴 했지만 최대한 평소와 똑같이 엄마에게 대답을 했다.

"오늘 좀 늦었네?"

"응, 일이 좀 많았어."

그리고 엄마의 대답,

"왜 목소리에 힘이 없네?"

정말이지 엄마들은 귀신이다. 어찌 아시는 걸까..

"좀 바빴어서 피곤하네~"

대충 둘러대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멍하니 운전을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우리 엄마 아빠, 내가 회사에서 그런 소리 들은 거 알면 얼마나 속상하시려나...'




코끝이 또 찡해지고 눈물이 핑 돈다. 음악을 틀었다가 다시 끈다. 마음공부를 하려고 들었던 유튜브들을 뒤져 재생했다가 또다시 끈다. 감정들에게 압도당한 나의 귀에 그 언어들이 들어올 자리는 이미 없다. 이번에도 '긍정적 생각, 판단하지 말고 받아들이기, 반응하지 말고 대응하라, 일체유심조.. "등등 힘들게 머리에 담아 둔 생각들은 쓰나미처럼 밀려온 감정들에게 떠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흙에 심어둔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채 뿌리를 단단히 내리지 못한 식물들이 몇 시간의 비에 순식간에 휩쓸려 가 버리듯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막대기까지 동원하여 나름 깊게 글씨를 새겼으나 파도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허망했다.


이후로도 의도적으로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나의 머릿속은 다시 그 회의의 현장에 가 있었다. 또다시 대표의 막말과 욕설과 고성이 쏟아졌다. 감정들이 몰려서 심장이 마구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식후 30분'이라는 약봉지의 표시 덕분에 꺼칠하고 쓰기만 한 입맛에도 꾸역꾸역 끼니를 때웠다. 또다시 생존만을 위한 시간들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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