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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호영 Dec 08. 2022

원의 비밀을 찾아라 4

4  동그란 굴렁쇠

차창 밖으로 훌쩍 큰 나무들이 휙휙 지나간다. 수담이네 식구들은 시골 큰아버지 댁에 가는 중이다. 여름방학마다 빼먹지 않는 연중행사라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수담이는 벌써 마음이 바빴다. 

‘시내와 무얼 하며 놀까?’

익숙한 풍경의 읍내에 들어서자 해는 뉘엿뉘엿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수박 한 덩이를 사 들고 산길로 접어드는데 멀리서 여자아이 하나가 언덕배기를 구르듯 달려 내려왔다. 수담이는 시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수담이가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어른들은 일하러 나갈 채비를 하셨다. 모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호미와 양동이를 들었다. 


“숙제 다 해 놓고 나가 놀아야 해. 알았지?”

“네.”


수담이는 놀고 싶은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야속했다. 그래도 엄마한테 꾸중 듣는 모습을 시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얼른 대답했다. 수담이는 수학 공책과 문제집을 꺼내 들고 상 앞에 앉았다.

‘오늘은 수학 숙제도 하고 문제집도 풀어야 하는데, 이걸 언제 다하나.’ 

수담이가 문제집을 넘기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때 시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뭐 해? 여기까지 와서도 공부하는 거야?”

“응. 오늘 해야 할 게 있어서 말이야. 근데 언제 다하지? 어휴.”


수담이는 몸을 뒤틀며 말했다.


“수학 문제네? 수학 싫어하니?”

“아니 뭐, 그냥 좀 빨리 나가서 놀고 싶어 그러지.”

“얼른 하고 나가자.”


시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며 『원의 비밀을 찾아라』를 들고왔다. 마주 앉은 시내에게서 풀꽃 향기 같은 것이 났다. 수담이는 시내와 이것저것 묻고 대답하며 문제를 풀었다. 어느새 재미가 느껴졌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원이 뭐가 있을까?”


수담이가 물었다.


“그것도 숙제야?”

“응.”


시내는 수담이의 말을 듣자마자 마구 쏟아내었다. 


“동전, 바퀴, 시계, 태양, 달, 별, …….”

“그런 건 다 썼어. 물레방아, 선풍기, 맨홀 뚜껑, 피자도 썼어. 아, 냄비 뚜껑과 접시도 있다! 더 생각나는 거 없어?”

“둥근 네 얼굴, 하품할 때 벌린 입, 놀랐을 때 커진 눈, 또 …… 아! 수담아, 나랑 밖에 나가자. 밖에 재미있는 동그라미가 있어.”


시내는 수담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나섰다. 한창 숙제가 재미있던 참이었지만 수담이도 벌떡 일어나 시내를 따라나섰다. 시내는 헛간으로 가서 쇠로 만든 커다란 고리 두 개를 가지고 나왔다.


“그게 뭐야?”

“굴렁쇠야. 이것도 동그랗지?”


시내는 굴렁쇠에 쌓인 먼지를 입으로 후후 불며 말했다.


“아, 이게 굴렁쇠구나. 사진으로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야.”


수담이가 굴렁쇠를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수담이는 신기한 듯 굴렁쇠를 굴려 보았다. 굴렁쇠는 토담까지 또르르 굴러갔다. 쓰러질 듯 데굴데굴 구르는 게 재미있었다. 수담이는 굴렁쇠를 손으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온 마당을 휩쓸고 돌아다녔다.


“아유, 손이 시커멓게 됐네. 시내야, 너 언제부터 굴렁쇠 굴렸어?”


수담이가 굴렁쇠를 굴리던 손을 툭툭 비벼 털며 시내에게 물었다.


“팽나무집 지오가 이사 간 뒤부터니까…… 두 달쯤?”


시내가 닭장 앞에 걸려 있던 굴렁대 두 개를 가지고 왔다. 시내와 수담이는 굴렁쇠를 굴리며 마을 길을 달렸다. 두 개의 굴렁쇠가 굴러가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 섞인 발소리, 빈집을 지키던 개들이 인기척에 놀라 컹컹 짖는 소리로 조용하기만 했던 한여름의 마을이 모처럼 떠들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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