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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버스 Mar 21. 2022

디즈니 라푼젤(Tangled)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독립의 서사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그 시작은 디즈니의 이야기와 함께 하고자 한다.

어려서부터 워낙 디즈니 이야기를 좋아했거니와 라푼젤은 특히나 내게 의미 있는 작품이라 가장 먼저 라푼젤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필두로 하여 라푼젤 이야기와 연장선 상에 있는 몇 개의 이야기를 조금 더 소개해 볼 작정이다.


노파심에 한 번 짚고 넘어간다. 이야기의 해석, 이야기를 이해하는 방식에 당연히 정답이 있을 리 없다.

다만, 한 번쯤 ‘이 사람은 이렇게 이 이야기를 이해하고 있구나, 이런 방식으로 새롭게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한다면 그만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대부분이 그렇듯이 라푼젤도 동명의 원전 민담이 있다.

원전 민담과 디즈니식으로 각색한 라푼젤을 비교해보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그 부분은 일종의 ‘여백의 미’로 남겨두고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디즈니 라푼젤?

많은 사람들이 디즈니 라푼젤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마 프라이팬을 들고 있는 공주의 모습일 것이다.

라푼젤이 나오기 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프린세스 라인은 수동적인 여성상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었고

프라이팬을 들고 거침없이 싸우는 주체적인 라푼젤의 모습을 셀링 포인트로 삼았기 때문이다.

(라푼젤 이전의 프린세스 라인 속 공주들이 정말 수동적인가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덕분에 라푼젤 개봉 당시 라푼젤의 재해석이라며 꽤나 주목을 받았더랬다. 하지만 디즈니가 한 일은 재해석보다 재조명에 가깝다.

시대 상을 반영하여 캐릭터에 변주를 주었으나,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이야기의 본질을 디즈니답게 보여줬을 뿐이다.


라푼젤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코로나 왕국의 왕비가 라푼젤을 임신했을 때 병에 걸렸고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은 마법의 금색 꽃뿐이었습니다.

마법의 금색 꽃은 고델이라는 마녀가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숨겨둔 채 홀로 쓰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꽃을 발견한 병사들 덕분에 왕비는 살아났고, 꽃과 같은 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라푼젤이 무사히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고델은 라푼젤의 머리가 꽃처럼 마법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라푼젤을 납치해 탑 안에서만 키우게 되죠.

수배자 신세로 쫓기고 있던 플린이 엉겁결에 탑에 오게 되었고 탑을 떠나 하늘을 나는 등을 보고 싶었던 라푼젤은 플린을 졸라서 함께 탑을 떠나기로 합니다.

떠난 후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결국 라푼젤은 플린에 의해 자신을 속박하는 마법의 금빛 머리를 자르고 공주 신분으로 돌아가 플린과 결혼하게 됩니다.


라푼젤 이야기 다시 보기

Point 1 고델은 마녀가 아니다.

신화, 전설, 민담 등의 설화에 등장하는 계모는 높은 확률로 친모일 수 있다.

대학교에 다닐 때 처음 설화를 공부하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이자 이야기를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준 접근 방식이다.

계모를 친모로 보았을 때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은 판이하게 바뀐다.

사실 고델이 라푼젤의 친모라면?

고델은 라푼젤의 금빛 머리를 빗어주며 Healing Incantation(직역하면 치유의 주문이다.)을 부르면서 자신의 젊음과 미모를 유지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18살이나 된 딸이 마치 어린아이인 것처럼 머리를 빗겨주며 아이가 어렸을 때, 곧 자신이 젊었을 때를 회상하는 엄마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닐까.

마녀가 라푼젤의 금빛 머리에 담긴 마법의 힘을 얻기 위해 부르는 치유의 주문의 가사를 들여다보자.

Flower gleam and glow
(꽃은 빛나고 빛나네)
Let your power shine
(너의 힘을 빛나게 하렴)
Make the clock reverse
(시계를 되돌려)
Bring back what once was mine
(한 때는 내 것이었던 것을 되돌려 주렴)
Heal what has been hurt
(상처받았던 것은 치료하고)
Change the fates design
(정해진 운명을 바꾸며)
Save what has been lost
(잃었던 것은 구하고)
Bring back what once was mine
(한 때는 내 것이었던 것을 되돌려 주렴)
What once was mine
(한 때는 내 것이었던 것을)

한 때는 내 것이었던 것은 표면적으로 마법의 금빛 꽃을 의미하지만, 결국 금빛 꽃은 라푼젤과 동일시되는 상징이다.

라푼젤을 낳은 엄마로서의 고델은 18살이 되어 한 사람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세상으로 나가려는 라푼젤을 자신의 소유물과 같이 대하며 세상의 위험함을 핑계로 높은 탑에 가둬두고 독립을 막는다.


이렇듯, 라푼젤과 고델의 갈등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부모-자녀의 갈등’으로 치환되며 라푼젤 서사의 시발점으로 작용한다.


Point 2 라푼젤의 마법의 금빛 머리는 결코 축복이 아니다.

속박의 금빛 머리

라푼젤은 늘 꿈꿔왔던 등을 보기 위해 플린과 함께 탑에서 탈출한 이후에도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엄마가 화내시면 어쩌지?” “괜찮아, 엄마가 모르시면 괜찮을 거야.”

“나 진짜 엄마한테 죽었다.” “난 정말 나쁜 딸이야, 엄마한테 돌아가야겠어”

“내가 다신 돌아가나 봐라.”와 같은 대사에서 라푼젤이 여전히 엄마 고델에게 속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집을 떠났지만, 언제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고 순간순간 엄마를 떠올리는 라푼젤의 모습은 사춘기~사회초년생에 이르기까지 아직 온전히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은 어른아이들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아직 금빛 머리를 가지고 있는 라푼젤은 등을 보는 자신의 소원을 이룬 이후 다시 고델에게 붙잡히고 만다.

하지만, 돌아온 라푼젤이 집을 떠나기 전의 라푼젤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등을 보러 떠난 여행의 과정에서 플린이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수직적인 부모-자녀 관계가 전부였던 라푼젤에게 수평적인 남성-여성의 관계가 생겨났고 비로소 누군가와 대등한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플린은 고델에게 잡혀간 라푼젤을 구하러 가는데 고델과의 몸싸움 과정에서 크게 다치게 된다.

라푼젤은 다친 플린을 치료하기 위해 고델에게 다시는 달아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플린은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곁에 온 라푼젤의 금빛 머리를 잘라 버린다.


이로써 라푼젤은 금빛 머리가 아닌 갈색 머리 라푼젤이 되어 속박에서 벗어난 대신 마법의 힘이 사라져 버리는데…


Point 3  더 이상 금빛 머리가 아닌 라푼젤이 플린을 어떻게 구했을까?

플린을 살린 라푼젤의 눈물

누군가는 보면서 ‘역시 디즈니스러운 동화 같은 엔딩이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라푼젤 이야기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플린이 다친 순간 라푼젤에게는 이미 돌아갈 수 있는 그 어떤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인 고델과의 관계는 이미 틀어졌고 플린은 다쳐서 라푼젤을 도와줄 수 없다. 오로지 라푼젤 스스로 자신의 몫을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플린을 살린 라푼젤의 눈물은 믿을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나의 꿈을 위해 현실과 마주하겠다는 강인한 의지의 상징이다.

자신의 새로운 꿈인 플린과의 미래를 위해 독립된 한 사람으로서 오롯이 세상과 마주했기에 플린과의 미래를 구할 수 있던 것이다.


이야기 처방전

아직은 독립에 자신 없는 어른아이들빈 둥지 증후군을 앓고 계실지 모를 부모님들께 이 이야기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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