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치악산!!!!!!'
창밖으로 눈 덮인 치악산이 보인다. 목적지는 분명 부산이었는데 왜 갑자기 내가 치악산을 지나고 있는지 어리둥절한 가운데 네비 경로를 다시 한번 살펴본다.
서울을 출발한 나는 수평으로 강릉 방향을 향해 달려 원주까지 왔다. 광주휴게소에서 출발할 때 다음 휴게소가 양평이었음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았다. 강릉 가는 고속도로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여전히 의심하지 않았고 사방의 풍경이 점점 설경으로 바뀌어갈 때조차도 의심 한 톨 꺼내 들지 않았다.
'하아, 나란 인간!'
그저 먹음직스럽게 큼직한 돈가스가 유독 맛있어 보이고, 맛깔나게 보이는 먹거리가 다양하게 있는 경기도광주휴게소가 그동안 들렀던 휴게소 중에서 제일 좋아 보인다며 보이는 대로만 습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귀가 먹먹해지는 산간구간을 달리는 그제야 내가 대단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울을 출발한 지 무려 2시간 30분이 지난 그때야 네비가 하란대로 따라가고 있던 바보는 생각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설연휴 차가 밀린다고 우회경로를 알려준 것인지 네비는 강원도 원주에 일러서야 부산을 향해 아래로 내려가는 경로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목적지 도착시간은 어느새 당초 저녁 5시를 훌쩍 넘어서 저녁 7시를 향해 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오전 11시에 출발한 나는 8시간을 운전하게 되는 셈이다. 아직 고속도로에 귀성 차량이 없어 극심한 정체구간이 없는 상황에서 서울-부산 왕복에 가까운 말도 안 되는 소요시간이 걸린 것이다. 실제로 뉴스를 보면 극심한 교통체증이 예상되는 피크 시간조차도 서울-부산은 7시간일 뿐이었다.
평소와 다른 경로를 달리고 있는데도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은 스스로가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그 와중에 긍정적이다. 눈 덮인 겨울 치악산 풍경이 예뻤고 원주 시장에서 먹었던 입에 살살 녹는 1등급 한우 살치살이 떠올라 군침이 돌았다. 나란 인간의 장점은 아마 금방 잊고 놀랍게 긍정적일 때가 있다는 것일 듯.
디지털로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지만 입맛대로 편리함을 골라 살 수 있는 세상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한때 TV가 바보상자라고 했다지. 하지만 요즘 알고리즘이 권하는 대로 혹은 알고리즘에 의해서 점점 더 강화되는 편향된 취향에 따라 살고 있다. 더 강력한 바보상자가 우리의 삶을 더 편리하게 해 준다는 이유로 생활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오늘 읽고 있던 '오십에 읽는 논어'라는 책 속의 '여지하(如知何)'란 문장이 눈에 확 띄는 이유이다. 어쩌다 지난 치악산 위에서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궁리에 궁리를 더하는 여지하 정신을 오래전에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나의 찐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열심히 학업을 마치고 치열하게 취업을 준비해서 성공적으로 회사에 입사한 이후 목표는 사라졌고 인생의 방향을 잃었던 것 같다. 여지하 정신을 놓고 불평불만만 하며 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내가 40대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바이다. 나는 지금 인생의 치악산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최종목적지로 가는 경로를 재설정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