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내게 남겨준 것들 - ①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수업 내용이나 교수 방식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마다 문득문득 마음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생각의 근원을 당시에는 알아내지 못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학교라는 공간을 완전히 벗어난 후에야 그 불만의 근원을 차분하게 추적해볼 수 있었다. 학교의 운영 방식이나 제도, 수업의 수준 등에서 느끼는 불만 요소들은 부정적 감정 표출을 위한 하나의 창구에 불과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실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공책을 마주하는 시간이 자꾸만 낭비라는 생각이 들고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애초에 대학에 가야하는 이유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 채 입학했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적을 가진 채로 입학하는 고3 수험생들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있을까, 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현 교육제도에는 학생들의 적성과 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부여하지 못한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분명 내재되어 있다. 중요한 건 나도 그 한계점을 보유한 제도에 고스란히 순응해버렸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업 경쟁에 매몰되어 좋은 대학을 가야만 이 사회에서 생존하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분위기에 그저 휩쓸린 것이 아니라 그 프레임을 나의 생각으로 굳혀 내재화했고 스스로 치열하게 노력까지 했다.
하지만 대학 입학 직후 수강한 강의들은 고등학교 수업의 연장선이었다. 영화 ‘21’에 나오는 장면처럼 7~1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작은 강의실에 둘러앉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방식의 수업만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런 모습도 물론 실제로 기대했다. 하지만 칠판에 빼곡한 글씨를 열심히 받아 적고 토론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주입식 학습은 고등학교 수업과 전혀 차별화된 점이 없었다. 오히려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 경쟁은 보다 지엽적인 방향으로 치열해졌다. 비록 전교 등수를 헤아리지는 않지만 학점이 안 좋으면 생존과 직결되는 취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무거운 긴장감을 갖게 했다.
사실 애초에 목표라는 것이 있지도 않았던 듯하다. 매일 또는 주 단위 공부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우고 실천하는 것엔 도가 텄지만 인생 전반에 걸친 비전이나 꿈에 대해 막연하게라도 그려보는 일에는 서툴렀다. 험한 산을 오를 때 그저 땅만 보고 걸어가듯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던 날들은 세상을 멀리 내다보는 법을 익히기엔 오히려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진짜 목표는 대학에 와서야 비로소 찾기 시작했다. 전공 공부에 대한 집착과 부담은 과감히 내려놓았다. 다양한 경험이 누적되어야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멋진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사회가 합당하게 부여한 자유의 시간을 ‘딴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공대생은 도서관에서 전공만을 집중적으로 파기에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그것은 전공을 따라 미래를 착실하게 그려나갈 경우의 이야기일 뿐이다.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며 얻은 유일한 결론은 이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자신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학교 밖으로 나가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극도의 불안감과 기대를 동시에 안고 가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지도 앱을 켜서 손가락으로 확대하듯이 그 때의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불안했고 두려움으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