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무엇이든, 지속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시선을 기반으로 서술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 또한 결코 일반화할 수 없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을 인터뷰 해보면 100명이면 100가지 공부 방법이 나온다고 한다. 대입 수능시험이나 수시논술 또한 마찬가지다. 소위 SKY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합격 비결을 갖고 있다. 각자가 성장해온 환경이 너무나 다르기에 그 특징들을 함부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성실하다는 것이다.
너무나 진부한 이 단어를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외부의 자극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잠시 중학교 한문 시간으로 돌아가보자.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3단원의 예습 한자를 미리 암기하고 5번씩 써오도록 숙제를 내주었다. 이렇게 기한을 주고 내준 숙제를 검사해보면 유독 충실히 이행하는 학생들이 존재한다. '모범생'이라 불리는 이들은 그 사소한 숙제 하나 안했다고 해서 인생에 큰 재앙이 닥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최선을 다한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혼나기 싫어서, 수행평가에 반영이 되어서, 친구들도 하니까,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등등. 어쨌든 그 숙제를 마치고 등교한다.
이런 친구들은 학교에서 정한 교칙을 잘 준수하는 편이고, 지각하지 않으며, 사소한 쪽지 시험을 보면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준비한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의 등쌀에 못 이기는 척 따라주기도 한다. 학구열이 강한 집안에서는 자녀들을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이런 자극에 순종적으로 반응하는 편이다.
가끔 모범생들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는 사실 엄청 날라리였어' 라고 허세를 부리는 경우가 있다. 무용담을 자세히 들어보면 그들의 삶 범주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이야기한다. 부모님 몰래 피씨방을 상습적으로 갔다거나, 담배 몇 모금을 빨아본 정도이다. 엄청난 일탈처럼 말하지만 오히려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지 않았다면 어떻게 버텼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주어진 과업에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때론 삶을 통제한다는 것이
어린 나이에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의 상징인 대학에 입학하면 이런 통제선들이 가끔 무너지기도 한다. 무언가를 지키지 않았을 때 바닥이 깊지 않다는 걸 이내 깨닫는 것이다. 시험지에 이름만 간신히 기입하고 쿨하게 재수강을 하거나 책상 대신 당구대 앞에 하염없이 서 있기도 한다. 내려놓는 법을 하나 둘씩 배워가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과 우선 순위에 따라 스스로 선택을 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특유의 성실한 기질은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제도권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을 성실히 이행해온 이들은 점점 안정되고 보장된 삶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짙어진다. 그래서 더 틀에 박힌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좋은 대학에 가야지' 라는 퀘스트를 완료한 후 방황도 해보고 삶을 실컷 즐기는 것 같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또 다른 미션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기 시작한다.
"새내기 때 연애도 좀 해야하지 않겠어? 남들 다 연애하는데 나만 없으면 이상하지 않아?"
"이제 2학년 정도 됐으면 슬슬 군대에 다녀와야지"
"제대하고 복학했으면 정신차리고 학점 관리 해야지"
"4학년 되기 전에 인턴 경험은 하나 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TOEIC은 따놨어? 요즘 대기업에서는 TOEIC SPEAKING을 본다더라..."
"원서 어디 어디 썼어? GSAT(삼성직무적성검사) 문제집은 어디꺼 풀어봤어?"
이 질문들은 헌법에서 명시함으로써 반드시 지키라고 누구도 강요한 적 없다. 그런데 성실한 학생들은 어디에선가 이런 이야기를 접하고는 이를 열심히 따라가기 시작한다. 한 발이라도 뒤처지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의 상태를 객관화한다.
명문대에 입학하는 많은 학생들은 이렇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특성이 있는 것 같았다. 때로는 조급함과 불안감에 휩싸이길 거부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하기 싫은 일' 을 잘 견디고 해낸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하기 싫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간혹 공부가 가장 재밌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극소수일 뿐이다. 결국 자의든 타의든 내키지 않는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것을 '성실함' 이라 표현하고 싶다. 언급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지루한 단어다. 하지만 이 어휘에 담긴 힘을 진정으로 발휘하는 사람들이 명문대생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 동기들을 둘러봤을 때 노력도 재능이라면 이들은 노력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나를 먹고 사는 걱정에서 해방시켜준 것도 특유의 조급함 덕분이었다.
"혹시 내가 주변 친구들에 비해 뒤처지진 않을까?"
걱정했던 불안감이나 조급함이 나를 성실하게 만들었다. 머리가 유별나게 좋지도 않았던 나는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경쟁력이 없었다. 당장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계속해야 했다. 묵묵히 하다보니 적절한 나이에 대기업에 입사해서 소위 말하는 전문직들에 비해 급여는 낮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어릴 적 많은 기대를 걸었던 부모님의 걱정은 조금 덜었으며 합리적인 수준의 소비생활도 건전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어려운 취업 현실 속에서 감사한 기회를 얻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9할이 운이다. 여기에 나의 공치사를 딱 한 스푼만 얹는다면 평범한 수준의 능력을 평범하지 않은 수준으로 지속해낸 덕분이 아닐까 믿고 싶다.
글의 제목을 질문으로 시작했으니 답으로 마치고 싶다.
대체로, 성실한 사람들이 SKY 대학에 간다고 생각한다. 물론 걔중에는 천재형 인재도 있고 그저 운이 좋았던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어느 수준 이상으로는 분명 지난한 노력의 과정을 잘 견뎌낸 사람들이다.
다만 이것은 입학까지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아쉽게도 성실함과 꾸준한 노력이 좋은 결과를 보장해주는 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거의 마지막이다. 그 이후로 맞닥뜨리는 인생의 각종 퀘스트는 높은 확률로 노력과 결과가 정비례하지 않는다.
사랑이 어디 노력한다고 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