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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known Apr 12. 2020

오늘은, 강제 종료.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오늘 뛰지 말고 걸어요. 

저는 저의 일과, 제 공부를 사랑합니다. 저는 좁게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분야에, 넓게는 개발이라고 하는 분야에 속해 있습니다. 명확하게 제 분야를 설명하지 않는 것은, 좁은 분야도 넓은 분야도 모두 사랑하기 때문이죠. 학부 시절에도 이 분야를 좋아했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대세가 아니었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느꼈고, 부끄럽게도 좋아하던 일을 계속 해낼 마음을 가지지 못했었습니다. 이후 조금은 다른 분야의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이후 갑자기 과거에 제가 좋아하던 분야가 대세가 되었고, 저는 다시 제가 제일 좋아하던 과거의 것을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을 먹고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았고, 다행히 그 분야에 나쁘지 않은 소질 또한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평생 이 길을 걸어갔으며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다만, 그 마음을 계속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도 결국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여전히 산재해 있고, 결국은 내 접근 방법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며칠' 가끔은 '몇 주'를 낭비한 다음에야 깨닫게 되곤 합니다. 네, 이미 많은 날들을 낭비했고, 그 기간의 노력이 '무'로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은 내가 오늘 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물론, 그러함에도 그 문제를 결국은 해결하여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그 기분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마약'같은 거예요. 그 지점을 한 번 딛고 나면, 계속 그 지점을 딛는 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 지점은, 내가 어제보다 성장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완연한 증거이니까요. 그리고, 다시 그 지점을 딛기 위해서는 그 참혹함 들을 견뎌야 하죠. 그리고, 점차 하루에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참혹한 날들을 견뎌야 하죠. 


요즘의 저에게는 그 어려움이 자주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하루의 에너지를 온전하게 쏟아부었지만, 완전히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여전히 산재해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의 완전한 문제를 풀지 못하고, 문제의 부분 문제들만을 풀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문제들도 하루 만에 끝내는 일이 적어집니다. 좋게 말하면, 이제 제가 그만큼 성장한 것이겠죠. 이제는 하루의 에너지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더 어려운 문제들을 풀고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문제를 완전히 풀어내지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면 잠에 들기가 어렵습니다.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와서 샤워를 하는 중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용해 보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어떤 날에는 새벽에 잠들기도 합니다. 가끔은 꿈속에서 그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풀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도 있어요. 유명한 과학자의 이야기처럼 꿈속에서 뛰어난 아이디어가 나타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냥 머리가 온전하게 비워지지 못한 채 잠에 들었던 것이고, 그런 날은 일어나도 몸이 매우 개운하지 못하죠. 


어떤 시절의 저는, 그렇게 머리를 온전하게 비워내지 못하는 저를 사랑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나는 집요하고, 끈질긴 사람이야, 이 일을 사랑하니까 늘 이럴 수 있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다만, 얼마 전 주말, 새벽까지 그날 풀지 못한 문제를 붙들고 나서 점심에서야 지친 몸으로 일어난 저는 문득 '지긋지긋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에 가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넘어서서, 다음 날 써야 하는 에너지를 끌어 오는 이 지난한 과정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그러면서, "다 때려치우고 어디로 숨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정신이 번뜩 들더군요. 이러다가는, 이 일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루에 가용할 수 있는 체력과 집중력은 늘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 풀지 못한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 오늘의 참혹함을 내일로 흘려보내지 않고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서, 오늘의 나를 가혹하게 밀어내는 일은 무수하게 많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분야의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칭송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세가 되어버린 이 분야에는 지금도, "저보다 더 어리고, 똑똑한 사람들"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 '쉰다'라는 것은 가끔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그러면 결국은 부러질지도 몰라요. 당신이 사랑하는 지금의 그 일이 지긋지긋해진다면, 그래서 앞으로 그 일을 등지고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면, 고작, 고작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다 무슨 의미인가요. 


아무, 의미 없습니다. 비록 오늘 당신이 목표로 한 것을 완전히 끝내지 못했더라도 그리고 내일 일어났을 때 이 찜찜함이 당신에게 남아 있을 지라도, 당신은 오늘 가용한 에너지를 모두 사용했습니다. 오늘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기어코 끝내려 애쓰다가는 당신은 이 일 자체가 지긋지긋해질 수 있습니다. 온전하지 못하게 보낸 하루를 그저, 받아들이고, 가끔은 내일의 나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떡볶이나 먹으러 가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혹시 "나는 오늘 할 일을 끝내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제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잠을 잘 자는 습관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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