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나는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공부에 갈리는 삶을 살았다. 공부를 한다고 아등바등하고, 시험을 잘 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했다. 이해가 안 되면 글자 그대로 외워서 답지에 적어서 시험을 봤다. 이해가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게 훨씬 많았다. 그런 경우 그냥 통으로 암기했다.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한 마냥 난 외워서 답지를 썼다. 그야말로 공부라는 맷돌에 갈리는 삶을 살았다.
30대 중반에 시험에 합격했다. 그때부터는 갈리는 삶에 저항감이 있었다. 회사에서 수습시절에는 갈리는 삶이 너무 싫었다. 어떻게든 갈리지 않으려고 회사생활을 했다.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잘하는 척을 많이 했다. 갈리지 않는 삶을 택했지만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갈리는 삶을 살았고, 어느덧 경력이 쌓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기꺼이 갈리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갈리는 삶은 많은 에너지와 시간, 체력 소모를 낳는다. 심리적으로도 고통스럽다. 삶은 팍팍하고 힘들어진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보다 삶은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방법이 있을까 싶다.
시드머니를 모은다면 갈려서 만든 월급은 정말 단단한 시드머니를 만들어줄 것이다. 노력하고 힘들게 번 돈은 쉽게 빠져나가지 않고, 자신의 지지를 단단히 만들어 줄 것이다.
최근 3년 정도는 갈리는 삶은 아니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여서 일이 손에 붙어서 나름의 여유를 가지고 살았다. 투자도 잘 되는 편이라서 경제적으로도 좋아졌다.
올해는 이직을 하는 데 다시 조금은 갈리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나의 삶을 단단히 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단단히 기반을 만드는 것, 탄탄한 기반을 만드는 것은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투입하는 것만 한 것은 없다.
아파트를 짓는 것을 보면 기반 공사는 오래 걸리지만 층을 올리는 것은 금방이다. 사회 초년 생들에게 결국은 자신이 갈리는 것이 일을 하면 삶의 기반이 탄탄해질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나도 조금은 늦었지만 다시 한번 갈리는 삶을 선택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무언가를 이루려면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냐의 문제는 결국 개인의 영적 성장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제 조금은 갈리는 환경에서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 까라고 기대해 본다. 그리고 정말 부술 수 없는 기반을 만든 후에 투자나 다른 방법으로 삶을 성장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