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1980년 8월 27일
전두환 대통령 취임

『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 3』쉰 여덟 번째 장면

by 박재한
1980.08.27 전두환 대통령 취임 [위키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 1980.08.27-1988.02.24 레이건 대통령과.jpg

<전두환과 레이건, 퍼블릭 도메인>


12.12 사태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5.17 비상계엄 확대(내란)와 5.18 민주화 운동을 제압하며 민주화 운동을 완벽히 제압한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여 행정부 이양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사실상 박정희와 군부세력의 국가재건최고회의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으며 전권을 행사하였고,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그리고 치러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전두환은 단독 후보로 출마하였고, 2,524표(99.37%)를 득표하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전두환은 8차 개헌을 강행하였고, 8차 개헌을 통해 7년 단임제 대통령제를 통과시킨 전두환은 곧바로 치러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서 4,755(90.11%) 표를 받으며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2대 대선은 81년 2월 25일에 진행되었다.) 두 번의 대통령 당선이었지만 재임 기간은 무려 8년이나 되는 것이다.


+) 박정희와 지미 카터, 전두환과 로널드 레이건은 묘한 관계의 한미관계를 나타낸다. 박정희와 지미 카터는 인권 문제를 중추로 많은 논제들을 격렬하게 부딪치며 한미관계가 위태로워지는 모습을 야기했었다. 전두환이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인 1980년 11월 4일 미국에서는 지미 카터가 재선에 실패하고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되며 정권교체의 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전두환 측에서는 인권을 중시했던 민주당 출신 카터 대통령에서 국익을 중시했던 공화당 출신 레이건이 당선되었기에 김대중의 사형 집행과 더불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불안정한 자신의 정당성과 입지를 미국에 인정받고, 새로운 한미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었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감옥에서 레이건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은 일관되게 김대중 사형 반대였다. 전두환은 결국 김대중 미국 망명과 본인의 백악관 방문을 미국과 맞교환하였고 백악관에 방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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