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스물다섯 번째 장면
<청산리대첩 상상화, 공공누리 1 유형>
홍범도 장군이 이끌었던 대한독립군을 필두로 여러 무장투쟁 독립운동단체들이 연합하여 승리한 전투인 보오동 전투 이후 일본 제국은 간도 지역에 있는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중국 마적단을 매수하여 간도에 있는 일본인을 공격한 이후 한국인이 일본인을 공격했다는 누명을 씌우는 훈춘 사건을 조작하여 간도 지역으로 일본군이 이동하는 명분을 샀다. 이후 강을 건너 독립군을 토벌한다는 월강추격대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간도 지역의 독립군을 토벌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김좌진, 나중소, 이범석의 북로군정서군과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전투를 치른 청산리 대첩은 하루 동안 이루어진 전투가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청산리 일대의 지역에서 전투를 벌인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다음은 청산리 대첩의 자세한 설명이다.
"일본은 1920년 10월 혼춘사건을 구실로 간도에 대병력을 파견했고, 독립군은 화룡현 이도구·삼도구 일대로 이동했다. 북로군정서는 안도현으로 옮겨 서로군정서와 합류 후 백두산 기지 건설을 추진했으며, 청산리에서 홍범도 부대와 대책을 논의했다. 10월 19일 피전론이 채택됐지만 추격을 떨치기 어려워 김좌진은 21일 백운평 일대에 매복해 일본군 추격대를 격파, 큰 피해를 입혔다. 이어 완루구·천수동·어랑촌 등지에서 홍범도 부대와 연합해 일본군을 연속 격퇴하고 23~25일 고동하로 이동하며 산발전을 벌인 뒤, 일본군 급습을 역습으로 막아내고 안도현 방면으로 철수했다." (청산리대첩 <요약 및 정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전)
"청산리대첩은 1920년 10월 21~26일 새벽까지 10여 차례 전투로 전개됐고, 독립군은 일본군 연대장을 포함해 약 1,200여 명을 사살했으며 독립군 전사자는 100여 명으로 서술된다. 이는 간도 출병 이후 독립군이 일본군과 벌인 전투 중 최대 규모이자 최대 전과를 거둔 대표적 승리로 평가된다. 주력인 북로군정서군은 약 1,600명(사관연성소 졸업자 298명 포함)으로 소총 1,300정·권총 150정·기관총 7문을 갖췄고, 김좌진·이범석 등 간부가 지휘했다. 홍범도부대는 여러 독립군 단체가 연합한 약 1,400명 규모였다." (청산리대첩 <요약 및 정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전)
<홍범도 장군, 퍼블릭 도메인>
<AI 채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