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너스 코리아 픽처스』스물여섯 번째 장면
<6.10 만세운동, 퍼블릭 도메인>
1926년 6월 10일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7년 전 3.1 운동의 여파로 실력양성, 무장투쟁 등의 다양한 독립운동의 촉발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등의 굵직굵직한 성과들이 점점 바래져 갔을 때 즈음으로 6.10 만세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6.10 만세 운동 또한 고종 황제의 인산일(장례일, 1919년 3월 3일이었다.)에 맞춰서 진행하려고 했던 3.1 운동처럼 돌아가신 순종 황제 인산일에 하기로 결정되었다. (장례일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모인다는 점을 감안하고 계획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제국은 과거 3.1 운동의 규모와 그로 인하여 파생된 수많은 국제적 비난을 당했던 것을 바탕으로 철저히 순종 황제 인산일 (1926년 6월 10일)에는 그만한 시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7,000여 명의 경찰을 서울에 배치하였다. (6.10 만세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실제로 1926년 10월 26일 오전 8시 30분이 되자 중앙고보생 300여 명이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격문을 뿌렸다고 한다. 당시 순종 황제 인산일에는 2만 4,0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후 오전 8시 45분에는 연희전문학생 50명과 학생들이 서울 각 지역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이어갔다. (6.10 만세운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26년 경성 전경, 퍼블릭 도메인>
독립 만세 운동이 시작하기까지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이 미리 깔아놓은 군대 조직과 7,000여 명의 경찰들을 배치한 여파로 조기에 시위는 저지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6.10 만세 운동으로 사회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이 힘을 합쳐 독립운동을 벌여야겠다는 합의를 이르는 데는 충분했다. 여기에 사회주의 단체 정우회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연대하자는 정우회 선언을 함으로 인하여 양 세력이 힘을 합치는 실질적인 단체가 만들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니 이것이 바로 신간회다.
(참고로 민족주의는 타협적 민족주의자와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로 구분된다. 타협적 민족주의자는 자치론을 주장하는 세력인데, 자치론이란 일본 제국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것을 인정하되 한국인들이 한국땅을 독자적으로 의회를 설치하자는 세력이다.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는 이와 반대로 일본 제국과는 어떠한 타협도 용납할 수 없다는 세력이다.)
<AI 채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