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음악> 숨비 인터뷰
‘유재하음악경연대회’는 1989년 시작하여 삼십여 년 동안 수많은 음악가를 발굴해 온 역사 깊은 대회다. 유희열, 방시혁 등 한국 대중음악계를 이끄는 음악가들이 이 무대를 거쳤다. 싱어송라이터 숨비는 제3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본선 무대에 올라 「아빠」를 노래했다. 이 곡은 그가 아버지의 생일을 기념하여 만든 곡이다. 숨비는 이 곡으로 제3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했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은
아빠가 유일하게 기타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이에요.
「아빠」의 전주는 그 곡을 오마주한 거죠.
숨비라는 이름에는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숨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담겼다. 그는 언니의 손에 이끌려 올라간 첫 무대에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무대에서 ‘나’를 완성해 나가는 경험과 믿음이 계속해서 그를 무대로 이끌었다.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플라멩코, 판소리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접한 그는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고 있다.
2021년 4월과 7월에 차례로 발표한 「부동」과 「Lucky Star」는 그의 음악 활동에 전환점이 됐다.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한 곡이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이번 인터뷰의 사진 촬영은 인천 강화군 고려산에서 진행됐다. 마지막 촬영지는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였다. 담쟁이덩굴이 벽을 휘감고 있었다. 언제 사람이 살았는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작은 창문으로 마당을 살피던 누군가의 마음과 부엌에서 밥을 지으며 흥얼거리던 노래 같은 것이 떠올랐다. 이제는 잊히고 사라진 마음과 노래. 자라난 풀이 울타리가 되어 그곳을 감싸고 있었다. 그가 깨진 창문 앞에 서서 「부동」을 노래했다.
난 배고픈 잔디예요.
그의 목소리가 빈집을 맴돌며 공명했다.
바람이 불었다.
대안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단순한 이유였어요. 공부를 안 해도 된다고 했거든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공교육을 받았는데 성적이 낮으면 혼나기도 했죠. 부모님도 일찌감치 제가 학교 공부에 흥미가 없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아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대안학교에 다녔어요.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삼각산재미난학교’에는 ‘집살림’ ‘밥살림’이라는 두 가지 수업이 있었는데 집살림에서는 주로 목공을 배우고 밥살림에서는 요리를 배웠어요. 목공을 하며 집 짓는 방법을 배우고 그네도 만들었어요. 대안학교에서는 놀이가 수업이었죠.
중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니 고민이 됐어요. 공교육을 하는 학교에 가면 정해진 공부를 해야 하지만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고 교복도 입을 수 있잖아요. 중학생 때에는 ‘아름다운학교’에서 공부했어요. 그때 철학과 인문학을 접했고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사회적 이슈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청소년기의 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당차고 솔직했어요. 용감하고 발칙했죠.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제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죠. 어른들이 보기에 좀 맹랑하고 당돌한 아이였을지도 몰라요.
아름다운학교에서는 배우고 싶은 수업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저는 인권 수업과 타악 수업, 음악 수업이 특히 재밌었어요. 공교육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별로 안 했죠.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아직 치르지 않았어요. 음악을 하는데 ‘졸업 증명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세상이 말하는 자격과 조건보다
저는 나만의 것으로 나를 증명하며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학교에 다니며 일 년에 한 번씩 밴드 공연을 했어요. 그때는 재미로 음악을 했죠. 어린 시절의 제 꿈은 배우였어요. 음악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배우가 되려고 오디션을 보러 다닌 이후였죠. 어머니는 연극을 하셨고 아버지는 뮤지컬을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공연을 보며 연기에 대한 동경을 품었죠. 무대에 선 엄마 아빠의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였거든요.
하루는 소극장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갔어요. 무대에서 입을 떼려는데 연출 감독이 “그만!” 하고 소리쳤어요. 어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죠. 집에 가서 엉엉 울었어요. 그날 이후 배우는 관두고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지금도 무대에 설 기회가 있다면 도전하고 싶어요. 배우는 제 마음 한쪽에 간직하고 있는 두 번째 꿈이거든요.
언젠가 연극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어요. 연극 무대는 막이 오르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게 매력적이에요. 제게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서 있던 친밀한 공간이기도 해요. 소극장 무대에 소파를 하나 두고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무대를 제 방처럼 꾸며놓고, 세션은 베이스와 카혼 한 대로 단출하게 꾸려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어요. 관객들이 친구 집에 놀러 온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관객들과 소통하며 노래하는 시간은 즐겁고 의미 있어요.
무대에 있는 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죠.
떨어지는 별을 보며 친구와 속삭였던 대화가 모티브가 된 「Lucky Star」는 “재밌는 일을 잘하고 싶은” 숨비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곡이다.
이 곡에 작사로 참여한 오휘라는 친구와 학교에서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그날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많았어요. 바닥에 박스를 깔고 누워 별을 보고 있는데 친구가 별똥별을 봤다는 거예요.
“수명을 다한 별은 별똥별이 되어 떨어진대.”
“그럼 저 별은 우리한테 마지막 인사를 한 거네?”
「Lucky Star」의 1절은 별을 바라보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2절은 별의 이야기예요. ‘수명을 다한 별의 마지막 인사일 수도 있겠다.’ 하고 상상하면 별똥별과 마주하는 순간은 별에게도, 우리에게도 행운 같은 게 아닐까요? 이런 생각으로 제목을 「Lucky Star」라고 붙였어요.
나의 마지막 헤엄을 보았나요
나의 마지막 인사를 느꼈나요
처음엔 친구랑 재미 삼아 만든 거예요. 가사 중에 “당신의 눈 위로 나는 미끄러질 수 있었나요”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 부분을 부를 땐 음도 같이 낮아져요. 장난감 다루듯 이것저것 음악적 시도를 해봤죠.
그는 음악으로 건넨 이야기가 리스너의 일상에 닿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의 음악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무언가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거라고 했다. 가끔 음악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멈추지 않는 이유는 “누군가의 일상에서 ‘제 역할’을 할 거라는 믿음과 기대”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담긴 음악이
누군가에게 어느 순간
꼭 필요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인 것처럼요.
음악을 하며 좋은 동료를 많이 만나서 참 다행이라며 그들이 대화하고 서로를 위하는 태도에서 진실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 학창 시절에 만든 곡들을 한참 뒤에 음원으로 발표한 이유가 있나요?
「부동」과 「Lucky Star」를 작업하면서 특히 부담이 많았어요. 동료들 덕분에 작업이 수월하게 됐지만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으니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혼자 음악을 만들 때는 사실 좀 막막했어요. 그전까지는 기타 한 대로 연주하고 핸드폰으로 녹음해서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했거든요. 방법을 모르니까 ‘음원은 내 종목이 아닌가 보다.’ 하고 말았죠.
솔직히 말하면 제가 음원을 내지 않은 건 핑계에 가까웠어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였죠. 어떻게 해야 음원을 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게 부끄러웠던 거 같아요.
☑ 「부동」은 처음으로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하며 가상 악기를 활용한 곡입니다. 혼자 기타로 음악을 만들 때와 달라진 점이 있나요?
로직(DAW, Digital Audio Workstation)을 다룰 줄 알게 되면서 작업 방식이 조금 달라졌어요. 음원 준비를 하며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도 달라졌고요. 프로그램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레퍼런스를 폭넓게 찾았고, 정리한 것들을 바탕으로 프로듀서와 의견을 나눴죠. 레퍼런스 가운데 스페인 플라멩코 음악도 있었어요. 그 음악을 듣고 아이디어가 떠올라 반복되는 기타 코드 위에 스페니시 기타 느낌의 솔로 연주를 삽입하게 되었죠. 이런 식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곡에 실험해 보며 작업했어요. 제 첫 싱글 「부동」의 프로듀서는 희원(싱어송라이터 조희원) 오빠예요. 오빠는 제가 하고자 하는 방향을 잘 파악해 줬고 서로 편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만들 수 있었어요.
☑ 무대에서 공연하며 곡이 조금씩 수정되고 완성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공연 영상을 다시 보는 것이나 관객들의 피드백이 음악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해요.
무대에서 똑같이 연주하는 것보다는 그때그때마다 다르게 바꿔보고 싶었어요. 스스로 제 노래에 싫증 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음악적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계속 조금씩 수정하게 된 것 같아요.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할 때 받는 에너지가 참 좋아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고 할까요? 좋은 에너지를 선물 받았으니 다음에 또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기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원에 달린 댓글을 보며 위로받을 때가 있어요. 일상에서 제 노래를 자주 찾아 듣게 된다는 분도 계셨고 제 음악을 들으며 위로받았다는 분도 계셨어요. 그런 댓글들을 볼 때면 힘들더라도 계속 음악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해요.
평소에 많이 듣는 음악을 친한 동료에게 들려준 적이 있어요. “넌 음악을 정말 폭넓게 듣는구나.” 하고 말해줬는데, 저는 사실 내가 취향이 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나는 왜 이런 음악도 좋고 저런 음악도 좋지?’ 하며 내 취향에 대한 확신이 없었죠. 그런데 그걸 ‘폭넓게 듣는다.’라고 표현하니까 확신이 생기고, 음악을 듣는 스펙트럼도 더 넓어지게 됐어요.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절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잔잔한 멜로디와 쉬운 기사로 리스너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익숙한 부분을 살짝 비틀어 낯선 구성의 노래로 만든다. 그는 “마음 가는 대로 작업할 때 가장 작업이 잘된다.”라며 “최대한 머릿속을 비우려고 노력한다.” 하고 말했다.
「늦은 시간 그대에게」는 아름다운학교 교장 선생님이 주인공이에요. 학창 시절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많이 의지하고 좋아하는 어른이죠. 신곡이 나오면 가장 먼저 연락을 드리는 분이기도 해요. 열일곱 살 때 교장 선생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선생님, 요즘 제가 거짓된 사람처럼 느껴져요. 억지로 웃고 있는 거 같아요.”
선생님은 모든 사람에게 재밌는 사람, 좋은 사람으로 보일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도 주변 사람들이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면서요. 이후에 학교 전체 회의가 있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울기만 했어요.
그렇구나.
내가 느끼는 대로
감정을 표현해도 되는구나.
그래, 나 지금 울고 싶어.
온종일 울고 나서 며칠 뒤 친구가 “너 운 날 있잖아. 그날 분위기가 묘했는데 참 좋았어.” 하고 말해줬어요. 그 말을 듣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보호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울어도 아무도 나를 떠나지 않는구나.’
☑ 「어떤 이는 사랑하고 어떤 이는 삼켰네」를 들으면 영혼을 기리는 제의 같은 느낌이 들어요. “몸 안에 있는 영혼들을 보내주려 하네” 하는 부분도 그렇고요.
2017년쯤에 ‘왜 인간은 개와 고양이는 사랑하고 소, 돼지, 닭 등은 먹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채식을 시작했죠. 「어떤 이는 사랑하고 어떤 이는 삼켰네」는 지난날의 나를 반성하며 쓰게 된 곡이에요. 저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반려견 향단이와 홍삼이처럼 소, 돼지, 닭 들도 똑같이 사랑받고 싶을 거예요. 누군가 해치려고 하면 두려워하고요. 그런 존재들을 제가 아무런 생각 없이 먹었다고 생각하면 채식을 하는 지금도 제 몸에 그들의 영혼이 남아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영혼을 기리는 듯한 분위기가 풍긴 거 같아요.
☑ 「어떤 이는 사랑하고 어떤 이는 삼켰네」 「동물해방」 같은 곡에는 비건 지향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몇몇은 숨비를 ‘비건 뮤지션’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음악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것에 대한 고민도 많을 것 같아요.
어떤 행사에 가면 가끔 저를 ‘비건 뮤지션’이라고 소개해 줘요. 제가 비건을 지향하고 있지만 저는 그저 음악에 제 이야기를 담는 사람이에요. 하나의 주제가 저를 대표하는 타이틀이 되어버리는 건 조금 꺼려지는 것 같아요. 사실 동물권이나 환경에 관한 노래는 두세 곡 정도예요. 제 이야기가 담긴 음악이 훨씬 더 많죠. 스물두 곡 정도 있어요. 앞으로 제가 어떤 음악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타이틀이 붙어야 한다면 ‘비건 뮤지션’보다는 ‘록스타’라는 수식이 붙었으면 좋겠어요. ‘록스타 숨비’요.
그의 음악에는 그가 겪은 일이 담겨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부분과 맞닿을 수밖에 없다. 메시지를 전하고자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고 밝힌 그는 최근에 작업을 하며 고민이 깊어졌다고 했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뮤지션’이라는 틀에 갇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숨비는 그저 음악가라고 불리길 바란다.
가끔 제가 만든 음악이 저를 압박하기도 해요. 너무 완벽하게 나를 통제하려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때가 있어요. 「어떤 이는 사랑하고 어떤 이는 삼켰네」에는 “어떤 이는 입었네” 하는 부분이 있어요. 옷장에 어머니가 입던 오래된 가죽 재킷이 있는데 그 옷을 무대에서 입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 옷을 입은 날에는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 나를 보았죠.
겁이 좀 많아진 거 같아요. 예전엔 다른 사람이 저를 싫어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많은 사람이 나를 좋아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겁이 나는 거 같아요. 그 마음 때문에 종종 나를 감추기도 하죠.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솔직하게 마음을 내보였을 때 상처를 줬을까 봐 후회하고 걱정한 적이 많았거든요.
☑ 「어떤 이는 사랑하고 어떤 이는 삼켰네」는 리듬과 창법이 인상 깊어요. 창(唱) 같은 느낌도 들고요. 어떤 장르의 음악과 음악가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이 곡은 플라멩코 리듬을 바탕으로 해요. 열여덟 살 때부터 삼 년 정도 플라멩코를 배웠어요. 어머니가 “음악을 할 때 도움이 될 거야.”라며 동료 배우들과 함께하는 플라멩코 팀에 데리고 갔죠. 그때의 경험이 녹아들었어요.
어머니 덕분에 판소리를 배우기도 했어요. 열일곱 살부터 삼사 년 정도 배웠죠. 전라북도 전주시에 있는 국악 학원에서 열흘 동안 합숙을 한 적도 있어요. 이번에도 음악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어머니가 권하셨죠. 선생님이 제 목소리가 “너무 꾀꼬리 같다.”라고 해서 힘들었어요. 판소리에서는 맑은 목소리가 좋은 건 아니거든요. 탁성을 좋은 소리라고 여기니까요. 창을 할 때는 온몸을 쥐어짜듯 소리를 내요. 그때 온몸을 쓰는 희열이 느껴지죠.
이 곡에는 소리할 때 배운 발성을 활용했어요. 판소리의 창이 이 곡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인지 제 음악이 ‘한국적이다.’라는 평을 종종 듣곤 해요. 제가 배운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음악에 많이 담고 싶어요.
그는 예술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했다. 연극과 뮤지컬, 판소리, 플라멩코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속에서 자랐다. 그가 꿈꾸는 미래의 무대는 그 모양이 다양하다. “레이디 가가나 아마도이자람밴드처럼 강렬한 음악도 해보고 싶다.”라고 그는 말했다.
악기를 내려놓고 춤추며 노래하는 거죠.
마이클 잭슨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상상만 해도 즐거워요.
저는 사랑을 할 때 영감을 많이 얻어요. 사랑이라는 게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고 큰일이잖아요. 감정의 변화도 많고요. 「열여덟의 겨울」도 연애할 때 쓴 곡이에요.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가는 과정을 음악에 담았어요.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는데 마음이 겨울처럼 차갑게 변해버린 상황에 대한 이야기죠.
「Rainbow Rollcake」는 연애할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러주려고 만든 곡이에요. 이 곡을 작업할 무렵 애인이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잔잔한 음악을 찾아 들었어요. 저는 사운드클라우드에 어울리는 곡을 하나 만들고 싶어서 이 곡을 작업하게 됐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예쁘고 달콤한 것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죠.
너의 색은 다양하고도
어느 색 하나 부족함이 없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어렸을 땐 가방에 소금을 넣고 다닐 정도였죠. 소금이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하잖아요. 사주를 보니 물이 없어서 몸이 약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부족한 음양오행을 음악으로 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Water」라는 곡을 만들었어요. 이 곡은 제 건강을 기원하는 곡이기도 해요. 마이너 코드로 진행되는데, 마이너 코드를 들으면 특유의 음울함이 느껴져요. 이 곡을 작업할 때 카우보이 텍사스 음악을 자주 들었어요. 숀 제임스(Shawn James) 같은 음악가들의 곡이요.
☑ 「Rainbow Rollcake」가 음원으로 발표된다면 어떤 음악이 될지 궁금해요. 어떤 식으로 편곡하고 싶나요? 이 곡을 공연 때 들은 적이 있어요. 마지막에 감정이 고조되면서 점점 페이드아웃이 되듯 입에서 마이크를 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곡은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것처럼 몽환적인 사운드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사랑에 빠져서 꿈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살려서요.
마이크에서 입을 서서히 떼면 아주 자연스럽게 페이드아웃이 잘되더라고요. 처음에는 한번 재미로 해봤는데 관객분들도 좋아해주시고 곡에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계속하게 됐어요.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주고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저도 아낌없이 주고 싶어요.
☑ 도전하고 싶은 음악이나 장르가 있는지 궁금해요.
요새 작업하고 있는 곡은 블루스 록 느낌이에요. 밴드 셋(Band Set)으로 구상하고 있어요. 「Water」와 「어떤 이는 사랑하고 어떤 이는 삼켰네」를 들은 동료 뮤지션이 “록스타네!” 하고 말했어요. ‘록스타’는 저와 맞지 않는 수식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제 음악을 듣고 록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했죠. 그래서 록 음악을 구상하게 됐어요.
혼자 활동하다 보니 외롭기도 했고 음악의 외연을 넓히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밴드에 대한 갈증도 있었죠. 밴드로 활동하는 동료들이 서로 의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거든요.
☑ 무대에서 참 행복해 보여요. 하지만 가끔은 무대에서 무섭기도, 긴장이 되기도 할 거 같아요.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을 테고요.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나요?
동료들 공연에 게스트로 섰을 때 가장 떨려요. 동료들이 공연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 때문인 것 같아요. 떨고 있다는 걸 느낄 때 가장 먼저 숨을 어떻게 쉬고 있는지 살펴요. 그리고 ‘이 무대는 내 방이야. 나는 혼자 방에서 연습하고 있는 거야.’ 하고 계속 생각하죠.
그는 영국 밴드 블러의 메인 보컬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에 대해 말하며 “하고 싶은 음악을 다 해보고 싶다.”라고 했다. 데이먼 알반은 만화가 제이미 휴렛(Jamie Hewlett)과 협업하여 가상의 4인조 밴드 고릴라즈(Gorillaz)를 만들었다. 데이먼 알반은 고릴라즈를 통해 자기가 구현하고자 하는 음악과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펼친다. 음악가 숨비와 하고 싶은 것을 밀어붙이는 알반의 모습은 닮아 있다.
우울하거나 힘들 때 그 기분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아요. 우울한 날에 우울한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고 감정이 풀리는 경험을 하죠. 제 음악도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성 음악가로 활동하면서 남성 음악가에 비해 부딪히는 부분도 분명 있어요. 이를테면 작업을 도와준다며 자기 집으로 불러내는 사람도 있었고요. 되돌아보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하는 경험도 몇 번 있었죠. 제가 어리다는 이유로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우울한 정서로 음악에 스며든 것 같아요.
때로는 거대한 사회 속에서 내가 너무 작게 느껴져요. 누구도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딘가에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는 게 화가 나고 슬퍼요. 그런 감정들이 마이너 코드로 표현되고 제 음악의 정서가 되는 거 같아요. 저는 마음이 유독 힘든 날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음악을 들어요. 제 음악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어요.
혼자라고 느끼는 사람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야.”
하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그 방법이 꼭 유명해지고 차트에서 높은 순위에 올라야 하는 건 아니에요. 나만의 것으로 내 음악을 꾸준히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제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즐거움이에요.
음악을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점점 어려워지고 있죠. 제가 생각하는 ‘잘한다’라는 기준은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거예요. 음악가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이요. 머릿속으로 구상한 것이 음악으로 구현됐을 때 내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음악도 물론 좋은 음악이죠. 나만의 색을 지키며 음악을 하는 동료들을 보며 “나도 내가 좋다고 느끼는 걸 하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해요. 내가 만족하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면 언젠가 사람들 마음에 닿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예술은 하려고 하면 하기 싫고
안 하면 자꾸 생각나요.
일로 해야 하는 작업은 내키지 않을 때도 있어요. 공연이 많을 땐 지치다가도 공연이 없을 땐 무대에 서고 싶어져요. 예술은 제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저 재밌기 때문이죠. 음원 작업 과정에서 가끔 스트레스도 받지만 완성하고 나면 성취감이 엄청나요. 음원을 발표한다는 건 나만의 예술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이잖아요. 나를 표현하고 기록하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멋있는 사람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오거나 처음 겪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에요.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평정심을 잃지 않고 나만의 것을 지켜내는 사람이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세상의 모든 사람은 어딘가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음악도 마찬가지죠.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사람인 것처럼요. 제 음악에 담긴 이야기가 개인적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자기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필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에요.
숨비의 음악은 리스너에게 “당신과 같은 사람이 여기 있다.” 하고 말한다. 그의 음악에는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음악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과거의 숨비가 지금과 다르더라도, 지금의 숨비가 미래의 숨비와 다르더라도 괜찮다.
“좋은 음악을 오래 하기 위해 체력을 기르고 싶다.”라고 한 그는 불타오르기보다는 지치지 않고 음악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음악은 연대기 같다. 한 사람의 삶이 음악이 되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내게 날개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
네가 날 찾을 때마다 날아가서 위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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