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의 음악> 너드커넥션 서영주 인터뷰
너드커넥션의 시작에서 연세대학교 록 밴드 동아리 ‘메두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서영주를 비롯해 기타리스트 최승원, 베이시스트 박재현이 동아리에서 만났다.
대학에 입학하고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어요. 비슷한 시기에 한 학번 선배인 승원이 형이 신입으로 들어왔죠. 그때 처음 한 팀이 됐어요. 음악에 푹 빠져 살았던 거 같아요.
서영주는 동아리에서 주로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등의 거친 음악들을 노래했다. 서영주와 최승원, 두 사람이 군 생활을 마치고 동아리에 돌아올 때쯤 베이시스트 박재현이 새로 들어와 활동했다. 너드커넥션 멤버 가운데 세 사람이 ‘메두사’에서 만난 것이다.
사실 음악은 취미에 가까웠어요. 한창 취직을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미래에 대해 말하는데 이렇게 살다가는 우울한 삶이 될 것 같았어요. 한번은 제대로 해보고 싶었죠. 그냥 끝내기엔 아까웠으니까요.
우리 제대로 해보는 거 어때?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는 거예요. 음악을 전공한 사람도 없었죠. 우리 노래가 없으니 제대로 된 공연을 할 수도 없었고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누군가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함께 살을 붙이고 가사를 적었죠. 첫 곡은 석 달이 걸렸어요. 그게 첫 번째 싱글 「Hymn of the Birds」예요.
세 사람은 첫 번째 곡으로 부천전국대학가요제에 지원했다. 그때 드러머 신연태가 합류했다. 아직 밴드 이름도 정해지지 않았을 때였다. 이름을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했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너드커넥션의 ‘너드’를 “뭔가에 푹 빠져서 외로운 길을 혼자 가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설명했다.
밴드 이름을 지어주는 사이트가 있는데 키워드를 몇 개 입력하면 열 개 정도의 이름을 추천해주더라고요. 그중 하나가 너드커넥션이었어요. 다들 그 이름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무엇보다 가요제에 나가려면 얼른 이름을 정해야 했고요. 나중에 바꾸더라도 일단 너드커넥션으로 가요제에 나가기로 했어요.
☑ 밴드 멤버 모두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는 말이 인상 깊어요. 모르는 상태로 해냈다는 게 대단하기도 하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닌 거 같아요. 오히려 음악 산업에 관해 잘 알았다면 창작 활동에만 힘을 쏟지는 못했을 거예요. 돌아보면 정말 무모한 날이었죠. 오히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었어요. 기준이 될 만한 음악적 지식이 없었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기준과 평가에 기댈 수밖에 없었어요.
메두사 때는 부담이 덜했어요. 우리 곡이 아니었으니까요. 우리가 만든 곡이 아니라서 그런지 평가받는 느낌은 아니었어요. 취미로 음악을 한다는 사실이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고요. 너드커넥션으로 활동하면서부터 평가에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무대에서 부를 수 있는 우리 곡이 늘어나고 공연할 기회가 많아지면서요. 그때 나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던 게 각종 대회에서 거둔 성과예요.
☑ 2018년에 열린 에머겐자 세계밴드대회 한국 결선에서 우승하셨죠? 이런 성과가 팀을 유지하는 동력이 되었나요?
당연한 얘기지만 밴드 이름을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회들을 알아봤고요. 에머겐자 세계밴드대회도 그 가운데 하나였어요. 초창기 만든 노래 가사는 대부분 영어로 썼어요. 우리가 지향하는 음악의 뿌리가 영미 쪽에 있었거든요.
그 경연 무대가 사실상 너드커넥션의 첫 무대였어요. 다섯 번 정도 예선을 치렀고 한국 결선 무대에 올랐죠. 부모님을 공연에 초대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에요.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 우승을 한 셈이죠. 한국 대회 우승은 음악을 계속할 좋은 명분이 됐어요.
에머겐자 세계밴드대회 결승전은 독일에서 열렸어요. 각 나라에서 우승한 밴드가 페스티벌 무대에서 공연을 했죠. 자유로운 분위기였어요. 심사위원들도 풀밭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무대를 지켜봤죠. 음악을 즐긴다는 말이 고스란히 와닿았어요. 그 무대에 선 것 자체가 특별하고 좋은 경험이 되었죠. 자부심도 느꼈고요.
☑ 우승 이후 멤버 모두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많은 것이 변했어요. 어떻게 보면 빠르게 얻은 성과이기도 했죠. 아무런 기반이 없는 사람들이 1년 만에 거둔 결과니까요. 대회를 치르면서 오래 음악을 한 밴드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끝나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죠. 다른 나라에서 온 음악가들과 음악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어요. 결승 대회에서 저희는 9위를 했어요. 전 세계에서 모인 몇십 개의 밴드 가운데 9위라는 건 엄청난 일이었죠. 그때 생각했어요.
우리 이제 당당해져도 되겠다.
그 대회가 아니었다면 ‘너드커넥션의 미래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을 해요. 처음부터 모두가 평생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고 달려든 건 아니었으니까요. 대회 특전이 아니었다면 음원 발매도 더뎌졌을 거예요. 멤버 모두 성격이 조심스럽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서요. 그때의 특전이 음원 발매를 더는 미룰 수 없게 했죠
독일에서의 공연은 너드커넥션에게 새로운 숙제를 안겼다. 밴드에게 모자란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것과 음원을 제작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너드커넥션은 한국 대회 우승 특전으로 음원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서영주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지정된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을 해야 했어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죠. 일단 필요한 장비부터 샀어요. 연습도 열심히 했고요. 라이브 때는 각자가 맡은 연주를 잘 해내는 것이 우선이지만, 음원을 제작하는 일에는 그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요구되니까요. 첫 번째 싱글 「Hymn of the Birds」에는 저희의 첫 번째 녹음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그때의 너드커넥션이 기억나곤 합니다.
언젠가 멤버들과 이 곡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지금의 너드커넥션 색깔을 더 살려서 새롭게 녹음해보자는 거였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대로 두기로 했어요. 그때만 낼 수 있는 사운드가 담겨 있으니까요. 그 시절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음악이자 지금은 흉내 낼 수 없는 음악이에요. 이 곡에는 우리가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요. 어린 새가 날아오르고 떨어지기를 거듭할 때 곁에 있는 새들이 괜찮다고 노래하는 내용이거든요. 우리는 그때를 온전히 남겨두기로 했어요.
너드커넥션은 “어지러운 세상, 따듯한 음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웅장한 출정곡과 함께 날개를 펼쳤다.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증명’이라는 과제에 봉착한다.
☑ 두 번째 싱글 「대나무숲」은 한글 가사로 된 곡이에요.
예능 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 출연하고 한글 가사를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까지의 작업물들이 대부분이 공동 창작물이었던 것과는 달리, 두 번째 싱글 「대나무숲」은 제가 혼자 작사, 작곡을 했어요. 노래를 부르고 가사를 읊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좋은 곡을 쓸 능력이 없으면 음악을 오래 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음원을 내는 게 부담스러운 시대인 것 같아요. 여러 통로로 유통되다 보니 음악가의 행보가 고스란히 남곤 해요. 그럼에도 우리는 꾸준히 음원을 발표했어요.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거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대나무숲」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른 느낌으로 완성됐어요. 믹싱 과정에서 우리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했어요. 음원 자체가 아쉬운 것은 아니에요. 처음에 의도하고 지향했던 것들과 조금 달라진 부분이 있는 거죠.
너드커넥션의 음악은 20세기말 영미 밴드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너드커넥션이 좋아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멜로디마다 잘 어울리는 언어가 있다”고 영어 가사가 많은 것도 비슷한 이유라고 했다. 서영주는 “작사의 측면에서 본다면 「좋은 밤 좋은 꿈」이 너드커넥션 음악의 분기점이 됐다”며 “명확하게 가닿는 메시지의 힘이 생각보다 컸다”고 말했다.
☑ 「좋은 밤 좋은 꿈」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은 곡이에요.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공존하는 법이잖아요. 사랑받은 만큼 새로운 고민이 생겼을 거 같아요.
이 곡을 통해서 저희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어요. 너드커넥션 음악에 포크 감성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저희는 더 다양한 음악을 해왔고 앞으로도 하고 싶어요. 언젠가 멤버들과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좋은 밤 좋은 꿈」을 듣고 공연장에 찾은 관객분들이 놀랄 수도 있을 거라고요. 우리가 하는 다른 느낌의 음악을 듣고서요. 처음에는 그 경계에서 갈팡질팡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정리됐어요. 「좋은 밤 좋은 꿈」도 결국 우리 안에서 나온 거니까요.
「좋은 밤 좋은 꿈」을 작업하며 자칫 우리만의 색깔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어요. 무난하기만 한 곡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편곡할 때 기타 솔로를 활용하거나 창법 같은 음악적 요소 등에서 우리 색을 살릴 수 있는 방향들을 오래 고민했어요.
음악가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것만큼 듣는 이에게 다가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죠. 그런 의미에서 「좋은 밤 좋은 꿈」은 우리에게 실험적인 곡이었어요.
☑ 「좋은 밤 좋은 꿈」 다음에 발표한 「Back in Time」은 20세기 영미 밴드의 음악적인 색채가 짙은 곡이에요. 사운드의 질감도 그렇고요.
이 곡의 핵심은 사운드의 질감이었어요. 믹싱을 네 번이나 갈아엎을 정도로요. 까끌까끌한 질감을 원했거든요. 일부러 보컬 보정도 하지 않았어요. 악기 연주도 자유롭게 녹음했고요. 기타 부분을 녹음할 때는 여러 대의 기타를 다뤄보기도 했어요. 드럼은 원테이크로 작업했죠.
싱글은 음악적인 흐름에서 자유로워요. 앨범 단위의 작업이었다면 「좋은 밤 좋은 꿈」과 「Back in Time」은 어느 정도 비슷한 결의 곡이 되었을지도 몰라요. 「Back in Time」을 작업할 때 너드커넥션의 음악적 흐름을 너무 깊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어요. 오히려 밴드 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과정이라고 여겼어요.
하나의 장르로 너드커넥션의 정체성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록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여러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어요. 발라드에 가까운 것들도 있으니까요. 어떤 장르로 음악을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하는 밴드인가에 더 집중해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요.
☑ 장르가 표현의 수단 가운데 하나라는 말에 동의해요. 그것이 음악이 시대를 담아내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예술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에 담기는 건 아닐까요?
장르 음악을 담아낼 수 있는 음악 시장이 좁아지고 있어요. 외국에는 장르적 특색이 뚜렷한 클럽들이 많이 있죠. 국내에서는 그런 클럽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겨우 몇몇 작은 클럽만 남아 있는 현실이에요. 장르 음악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인 거죠. 작은 클럽을 기반으로 다음 단계로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사다리가 사라진 꼴이니까요.
누구 한 명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들도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고요. 음악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도 달라질 필요가 있어요.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피해를 입은 작은 공연장이 많아요. 공연장에서 음식을 판다는 이유로 공연 자체를 할 수 없게 됐어요. 음악가들이 꾸준히 공연을 해왔던 공연장이라고 해도 소용없었어요.
소규모 음악 시장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생기곤 하죠. 이를테면 같은 무대에 올라도 아티스트마다 다른 공연비를 지급하는 등의 문제예요.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어요. 시장이 워낙 좁으니까요. 복합적인 문제예요. 중요한 것은 음악가가 무대에 설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에요.
「Back in Time」은 너드커넥션이 사랑한 음악과 그 시대를 꿰뚫고 있는 곡이다. 그들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너드커넥션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즉흥과 우연에서 출발”하는 그들의 음악은 듣는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너드커넥션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넘나들며 자기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 「두려울 뿐야」는 그전에 발표한 곡들과 다른 분위기예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 곡이 우리 음악 세계 속에서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말 그대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곡이죠. 「두려울 뿐야」는 여름에 발표한 곡이에요. 계절에 어울리는 곡을 쓰고 싶었어요. 처음 가사를 썼을 때 감성적인 음악이 될 거 같단 생각을 했어요. 작업 과정에서 감성적인 가사를 감성적인 멜로디로 풀어내는 게 별로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프록(Surf Rock)을 접목했죠.
‘만족’이라는 단어 하나로 몇 날 며칠을 얘기할 수 있을 거예요. 눈에 보이는 부분도 분명 있어요. 음악을 업으로 정한 이상 일단 경제적으로 삶이 풍족해지면 기분이 좋아요. 이 기쁨을 부정하고 싶진 않아요. 또 하나는 평론이에요. 저희 음악을 좋게 평하는 글만을 뜻하는 건 아니에요. 우리 음악에 여러 의견이 오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좋다, 나쁘다 하는 평가를 넘어 음악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어요. 뜨겁게 논쟁하는 걸 볼 때 음악적인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아요. 사실 안 좋은 평보다 더 무서운 건 무관심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음원을 낼 때마다 팬분들이 좋아해주면 정말 기분이 좋죠.
☑ 「진눈깨비」는 감정적으로 더 내밀한 느낌을 받았어요. 예술 작품에는 예술가가 창작할 때의 당시 상황이 녹아 있기도 하잖아요. 이 곡을 들으며 너드커넥션의 변곡점이 어렴풋이 느껴졌어요. 이 곡의 영어 제목이 「Time Falling」이더라고요.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공간과 사라지는 시간이 대비를 이루는 것 같았어요.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출연하기 직전에 음악적으로 정체돼 있다고 느꼈어요. 너드커넥션이 나아갈 방향에 관해 고민이 깊었던 시기였죠. 그해 3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심각해져서 공연도 할 수 없었고요. 반쪽짜리 음악가가 된 기분이었어요. 다행히 방송을 통해 우리 음악에 관심 가져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어요.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어떤 공간을 노래로 표현했어요. 하나의 풍경을 지나는 여러 개의 시간축을 그리고 싶었죠. 흐르는 시간이 있다면 사라지는 시간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진눈깨비에 빗대어 표현하고 싶었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언가는 사라지는데, 동시에 눈의 형태로 무언가 앞에 쌓이는 모습이 역설적이라고 생각했죠.
승원이 형이 사운드에 공을 많이 들인 곡이에요. 일부러 기타 오버 레코딩을 하지 않았어요. 일렉기타 한두 대 정도만 녹음했는데, 두 번째 트랙의 기타는 특정하고 확실한 역할만을 수행해요. 슬라이드 바(slide bar)로 연주하고요. 공간계 이펙터도 많이 사용했어요. 2절에서 베이스 라인이 연주하는 리듬은 무언가 쌓이는 풍경을 표현한 거예요. 드럼은 앞단으로 나오지 않고 뒤쪽에서 풍경을 감싸줘요. 공간감을 극대화하려고 했죠. 한 곡에 멤버 저마다의 해석을 담아냈어요.
☑ 「걸어갈래요」에는 “지켜내야 할 꿈이 오늘 더 커지네”라는 가사가 있어요. 남다른 다짐이 담긴 곡처럼 들렸어요. 책임감과 무게감이 느껴지기도 했고요.
「싱어게인」이 끝나고, 그 이후부터가 진짜 시작이었어요.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작업한 기억이 나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위로하는 곡이 됐으면 했어요.
밴드 음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어요. 신나는 음악이나 희망적인 노래가 떠오르죠. 많은 사람이 밴드 음악에 기대하는 바이고요. 밴드 음악이 걸어온 길이 있으니까요. 과연 우리가 밴드 음악의 음악적 이미지를 대변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어요. 결정적으로 그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거든요. 「걸어갈래요」에는 우리의 색깔을 지키며 앞으로 걸어가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어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더 커지더라고요. 여러 계기를 통해 생각이 변하기도 하고요. 이 곡을 작업하며 우리가 어떤 음악적 지향점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했어요. 어떤 음악이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규정하면 쉽게 깨져버릴 거 같았죠.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단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는 거죠. 그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멋진 일이기도 해요.
앞으로도 우리의 색깔을 계속 지켜나갈 거예요. 분명한 것은 팬분들의 마음을 배제하고 음악을 할 수 없다는 거예요.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하는 건 값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팬분들의 사랑을 온전히 받는 대신 허투루 쓰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음악 외에도 평소 행동이나 마음가짐에도 책임감이 생겼죠. 인간적으로 더 나은 사람이 돼야 한다고요.
인간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건
누군가의 사랑인 것 같아요.
2019년 12월에 발매한 EP 앨범 「TOO FAST」는 주제와 서사가 탄탄한 앨범이다. 서영주는 이 앨범을 일컬어 “너드커넥션의 출사표”라고 했다. “창작자의 욕망이 가득 담겼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앨범은 마치 영화를 보듯 듣는 이가 주인공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집중했어요. 작업할 때 팔리는 음악은 아닐 거라고 멤버들과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죠. 앨범 단위의 음악은 마케팅 효율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커다란 세계관에서 정성 들여 만든 곡들이 서로 연결돼 하나의 축제가 되는 순간이 저는 너무 좋아요. 주제와 서사가 있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순서대로 들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는 앨범이요. 구상한 내용을 세세하게 설명하진 않았어요. 듣는 이가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고 싶었거든요.
☑ 「Waterfall」에 관해 “우울에 허우적대는 모습을 온전히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곡”이라고 앨범 작업기에 적었어요. 어떤 상황을 새로운 소리로 표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 같아요. 음악가의 세계가 듣는 이와 맞닿을 때란 참 경이로운 순간이죠.
「Waterfall」은 한창 힘들던 초창기 시절에 쓰인 곡이에요. 이 곡의 주인공은 우울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예요. 사실 우리 이야기였어요. 전업 음악가의 길로 나아갈지 아니면 멈춰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였죠. 그래서인지 우울한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렵지 않더라고요.
초반부에 기타를 아르페지오(arpeggio)*로 연주해요. 쏟아진 폭포가 방 안에 차오르는 장면이에요. 통기타 스트로크 솔로가 흐르고 분위기가 전환돼요. 페달 톤도 몇 개 추가해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했죠. 파란색 물이 점점 짙어지다가 까맣게 돼 가는 거예요. 그 장면을 사운드로 표현하고 싶었죠.
멤버들과 악기를 이리저리 만지다 발견한 괜찮은 소리를 음악에 넣어보곤 해요. 록 음악이라고 해서 록 사운드만 쓰고 싶진 않아요. 특히 이 곡에서는 마이너한 사운드를 구현하려고 했어요. 곡이 전하는 서사에 집중하려고요.
저희는 겉잡아 말하면 사파인 셈이에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까요. 대학교 때 음악 기초 이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당시에는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애매했어요. 아마추어도 아니고 프로도 아닌 그런 상태요. 그래서 EP 앨범에서는 감각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어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했죠.
*화음의 각 음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차례로 연주하는 주법.
☑ 두 번째 트랙 「Marion」은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쓴 곡이라고 들었어요.
주인공 이름이 메리언인 어느 영화가 있어요. 한 사람이 타락하는 과정을 그린 어두운 작품이에요. 영화에선 상황을 극단적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정도가 다를 뿐이지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면 변해버린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감정들을 음악으로 풀어내고 싶었어요. 감정에 집중한 곡이에요.
☑ 「V」는 듣기 전에는 어떤 곡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어요. 유독 제목이 눈에 들어왔고요. 곡의 분위기도 시니컬해요.
이 곡은 재현이가 작사한 곡이에요. 그리 친절한 노래는 아니죠. 제목부터 모호하잖아요. 제임스 맥티그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검열과 통제에 관한 얘기죠. 이 곡의 주인공은 계속 말해요. 어떤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무언가 보이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죠. 이런 상황을 통해 검열과 통제에 관해 말하고 싶었어요. 검열은 양날의 검 같아요. 답답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창작자에게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니까요.
☑ 「Interlude」는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간주곡이에요. 공연에서는 「Castel」의 전주로 연주하더라고요. 두 곡은 묘하게 어울리면서 또 어긋나요. 전주인 「Interlude」는 장엄하고, 후주인 「Castel」는 쓸쓸하죠.
「Interlude」은 원래 「Castel」의 마지막 후렴 부분에 넣으려던 거예요. 여러 개의 화음을 더 쌓아서 곡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려고 했죠. 막상 만들어 보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앨범 전체에 흐르는 서사를 방해하는 것 같았죠. 그래서 따로 떼어낸 거예요.
「Interlude」는 앨범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해요. 자칫 앨범의 서사가 지루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구성한 장치예요. 첫 번째 트랙부터 세 번째 트랙까지 빠른 템포로 흘러요. 그러다 갑자기 느린 곡이 나오면 뜬금없다고 느낄 수도 있잖아요. 멤버들과 논의 끝에 「Interlude」를 네 번째에 두기로 했어요. 한 곡 한 곡에 담긴 의미와 앨범 전체가 전하고자 하는 서사를 모두 빛낼 수 있는 방향으로요. 앨범에 담긴 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게 하는 건 음악가에게 도전과도 같아요.
☑ 말하자면 「Interlude」가 「Castel」의 입구인 셈이네요. 「Castel」은 예술가의 아픈 부분을 쿡쿡 찌르는 곡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예술가라는 존재는 좁은 성에 갇힌 몽상가에 불과할지도 몰라요.
‘Castel’은 불어로 작은 성을 뜻해요. 이 곡에는 자기비판이 담겨 있어요. 예술가라는 직업은 거창한 의미로 포장되기 쉬워요. 그 모습이 마치 중세시대의 어느 작고 초라한 성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죠. 우리 모습이 꼭 그 성 같았어요.
「Castel」을 작업하며 생각했어요.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거대한 세계를 담으려고 해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작고 오래된 합주실에 옹기종기 모여 작업을 하는 우리는 거창함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죠. 많은 예술가가 비슷비슷할 거 같아요. 좁은 작업실 안에서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더 많으니까요.
「Interlude」가 거창해 보이는 성으로 초대하는 곡이라면 「Castel」은 좁고 어두운 성의 지난한 시간을 그린 곡이에요. 곡 중간에 들어간 악기의 솔로 파트가 유독 긴 편이에요. 여덟 마디씩 세 파트로 나눠서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았죠. 막바지에 이르면 마이너한 코드가 나오면서 보컬이 가늘고 길게 늘어지며 끝이 나요. 예술이라는 행위를 둘러싼 여러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 삶은 작업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로 구별되는 거 같아요. 작업에 몰두해 있을 때는 삶과 예술을 분리하기 어려워요. 가사를 쓸 때면 곡의 분위기에 심취해 종일 주인공을 상상하거든요. 어떤 배우는 극 중 인물이 되려고 다양한 삶을 경험하곤 하잖아요. 곡을 쓸 때 그런 상태와 비슷해요. 생각에 생각을 꾸준히 쌓아서 한 곡을 완성하기 때문에 작업할 때는 일상이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죠. 삶과 예술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려면 더 많은 경험과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요.
네가 알던 모든 것은 이제 이곳에서
깨어진 뒤 다시 맞춰지지
각자의 편안함에 낯선 것을 끼워 넣는
작은 성에 온 걸 환영해
☑ 「Where are we」는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에요. 차가운 느낌의 앞선 곡들과 달리 듣는 이를 따듯하게 감싸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의 리듬이 점점 빨라지는 거 같아요. 그만큼 빠르게 반응해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우니까요.
멤버 모두 「Where are we」를 EP 앨범에 수록하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어요. 정규 앨범만큼 많은 곡을 수록하는 게 아니어서 자칫 앨범의 마무리가 어색하게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정규 앨범이었다면 다른 곡들이 중간에 서사를 이어주겠지만 이 앨범에서는 「Castel」에서 곧바로 「Where are we」로 넘어가면서 끝나니까요.
막상 믹싱을 하고 나니 우려했던 것보다 잘 어울리더라고요. 이 곡을 마지막에 넣은 이유는 앨범의 서사를 완성하고 싶기 때문이었어요. 「Waterfall」에서 우울감이 주인공을 점점 잠식하고, 「Marion」에서 어두운 시간이 극에 달하죠. 「V」에 이르러 극단적인 감정으로 치달아요. 그러다 「Castel」에 와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그리고 마지막에 묻는 거예요.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지?
「Where are we」은 EP 앨범의 갈무리인 동시에 너드커넥션의 다음을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다. 좁은 성에서 나와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노래하고 싶다는 욕망이 담겨 있다. 서영주는 이 앨범을 준비하며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음악적 색깔이 명확할수록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걱정이었다.
「TOO FAST」를 작업할 때는 우리가 앞으로 해나갈 음악을 선보이는 것에 의미를 두었어요. 가능성을 열어놓고 퇴장하고 싶었죠. 주제성이 짙은 앨범 단위의 작업들이 이 시대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밴드를 시작하면서부터 했던 고민이에요. 한 시대를 풍미한 장르의 음악을 계속한다는 게 괜찮은 일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요. 우리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우리의 색깔을 최대한 보여주기로 한 거죠.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너드커넥션은 2021년 10월 정규 1집 「New Century Masterpiece Cinema」을 발표했다. 서영주는 인터뷰 내내 20세기 음악에 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20세기말에 태어난 이들이 그 시절을 경험하지 않고도 동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앨범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왜 20세기 문화를 동경하고 있는 걸까?
너드커넥션은 모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늘진 것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었다.”
세상은 양면적인 것 같아요. 아름다운 것도 많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추악한 것도 많죠. 두 개의 세계를 모두 담고 싶었어요. 물론 중간지대에 있는 것들도 많죠. 이 세계가 모두 극단적이지는 않으니까요. 단지 이 앨범에서 두 개의 세계가 대비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는 방식은 다양하다. 너드커넥션의 시선은 분명 듣는 이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세상의 단면을 신랄하게 고발하는 것도 위로”가 될 수 있다고 한 서영주의 말은 “추악한 것들 사이 빛나는 아름다움”을 향해 있다.
이 앨범은 듣는 이를 오래된 극장으로 초대한다. 이 극장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영화가 상영된다.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 이유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극장은 다양한 삶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 「21st Century Kingdom」는 앨범을 여는 곡이에요. 마치 어떤 성의 거대한 문이 열리는 느낌이었어요.
첫 곡의 인상이 중요한 때예요. 듣는 이를 빠르게 사로잡아야 하니까요. 아름다운 이야기보다는 어두운 이야기로 앨범을 열고 싶었어요. 이 곡은 한 왕국에 군림하고 있는 어떤 절대자의 신념과 가치관을 그리고 있어요. 앨범을 거칠게 시작하고 싶었어요. 잔잔하게 시작해서 서서히 고조되는 느낌을 원하지 않았거든요. 우리 삶에서 모든 일이 순서대로 벌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베이스 라인이 수려하게 연주돼요. 연주로만 주제를 표현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추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죠. 베이스 연주가 곡의 주제를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베이스 볼륨을 높였죠. 마지막 작업 때도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고요.
저는 음악을 할 때 크든 작든 하나의 세계관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이 듣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하나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서사들이에요. 기회가 되면 시각예술 같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협업하고 싶어요.
☑ 「Hollywood Movie Star」는 EP 앨범에 수록된 「Castel」과 비슷한 주제를 노래하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달라요. 속도감이 있는 리듬에 거칠게 감정을 내지르는 것 같았죠.
예술가로 산다는 게 별로 근사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창작을 하며 근사한 것과 근사한 척하는 것에 관해 많이 생각했어요. 음악 활동을 하다 보면 좋은 포장지로 꾸며지는 순간들이 보여요.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곡의 주제성을 고민하던 초반 단계에선 포장지만 남은 예술에 관해 신랄하게 얘기하고 싶었는데, 작업 막바지에 돌아보니 결국 저희도 다를 바 없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이런 질문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묻지 않으면 말하기 어려우니까요.
이 곡은 메탈과 록의 경계에 있어요. 연태 형이 앨범에 조금 더 속도감 있는 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리듬을 담당하는 드러머 입장에서 앨범 구성이 다양했으면 하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신시사이저 소리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어요. 우리가 연주하는 악기로 사운드가 채워진 셈이죠. 소프트한 록에 비해 메탈 사운드에 가깝죠. 그렇다고 명확하게 메탈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부분도 있어요.
1980년대 할리우드 스타들을 상상하며 만든 곡이에요. 스크린에서는 멋진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과격한 삶을 살았던 스타들이요. 가죽 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사람들 앞에 서는 순간 가식이라는 옷을 입는 거죠.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지 않아요.
☑ 세 번째 트랙 「29」에서 앨범의 분위기가 극적으로 환기되는 거 같아요.
이 곡의 주인공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전환점에 있었던 사람들이에요. 그 시절의 경험과 태도가 많이 담긴 곡이죠. 한 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세기를 마주하는 인물의 시점에서 곡이 전개돼요. 처음 이 곡을 가져온 재현이는 무도회장을 상상하며 만들었다고 했어요. 근사한 파티에 간 주인공이 설 자리는 없죠. 새로운 세기의 파티니까요. 그는 그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무도회장을 박차고 나와요. 그리고는 어두운 길을 무작정 걸어가죠.
사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음악에 관한 것이기도 해요. 우리가 사랑한 시대의 음악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죠. 이런 감정이 마치 이제 스물아홉 살이 된 한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십 대라고 하기엔 삶이 조금 무거워졌고, 삼십 대는 아직 아닌 애매한 나이잖아요. 끝과 시작의 경계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두려움을 노래하고 싶었어요.
☑ 「Behind the Trees」는 듣는 이를 숲으로 이끌어요. 무도회장을 박차고 나온 주인공이 어두운 길을 지나 숲에 이른 것 같기도 하고요. 너드커넥션의 음악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아요. 흥미로운 점은 슬픔이 곧장 절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오래전에 작업한 미발표곡이에요. 캄캄한 숲이라는 공간적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 곡이죠. 어두운 숲을 걷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사사삭하는 소리가 나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인 거죠. 이런 이미지를 통해 인간관계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앞에서는 선의를 베푸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서는 호시탐탐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어두운 숲속에 숨어 있는 누군가에 빗대어 표현했어요. 나무 뒤에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인 거죠.
살면서 여러 가지 모양의 불안을 경험했어요. 그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게 인간관계예요.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잖아요. 온라인에 올라온 글 하나가 큰 파장을 일으키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순식간에 퍼지곤 해요. 어지러운 세상에서 음악을 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거 같아요. 「Behind the Trees」에서 주인공은 어두운 현실을 마주하며 앞으로 나아가죠.
☑ 「SUPERNOVA!」에는 낯선 것과 낯익은 것이 혼재돼 있는 느낌이 들어요. 우주라는 낯선 공간에서 부르는 노래에서 낯익은 이름과 문장들을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이 앨범은 하나의 극장이고 트랙 하나하나가 독립된 영화예요. 하나의 주제가 여러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 형식의 앨범이라고 할 수 있어요. 「SUPERNOVA!」는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요. 첫 번째 파트에서는 오마주했던 아티스트나 작품들의 이름을 넣었죠. 이를테면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Black Hole Sun」, 콜드플레이의 「A Sky Full Of Stars」 등이 숨어 있어요. 제목에서는 오아시스의 「Champagne Supernova」를 연상할 수 있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암시하는 곡이에요. 전반부가 폭발적으로 마무리되는 이유죠. 우주로 떠나는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우주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요.
“You’ve got to know that
I’m the black hole
sun and the sky full of stars
Did you know I’m in nirvana”
☑ 「항성통신」과 「SUPERNOVA!」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앨범에서 두 곡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야기가 확장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타이틀곡 위주로 소비되는 음악 시장은 필연적으로 아쉬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앨범 속 음원이 저마다 충실히 역할을 해내지만 모두 주목받을 순 없으니까요.
두 곡 모두 우주를 테마로 하고 있어요. 「항성통신」의 후반부에는 우주에서 신호를 주고받는 소리를 넣기도 했죠. 곡 중간에 분위기가 반전돼요. 웜홀과 같은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마주할 때 보내는 신호를 표현했죠. 벌스와 코러스에는 주고받은 신호들의 의미가 담겨 있어요. 브릿지 부분의 드럼 비트가 사운드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통신이 끊겼다 다시 잡히는 것을 표현한 거예요.
앨범에 실린 모든 곡이 타이틀곡 후보였어요. 사실 타이틀곡으로 많이 이야기되던 곡은 「항성통신」이었어요. 최종적으로 「Hollywood Movie Star」와 「우린 노래가 될까」가 타이틀곡이 됐죠. 이 앨범에 두 개의 질감이 공존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 「우린 노래가 될까」는 마치 하나의 서사가 마무리되는 느낌이에요. 이 곡을 작업할 때 최신 유행 사운드를 고려하다가 결국 예전 사운드로 돌아오는 과정을 거쳤다고 들었어요.
이 곡은 말하자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에요. 전자 음악 사운드를 넣어보려고 했어요. 몇 번 시도하기도 했고요. 편곡 시간이 가장 길었던 곡이에요. 예전 것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어요. 유행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고요. 어떻게 보면 작업이 복잡해진 거예요. 여러 시대의 음악 사이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사운드를 찾아야 했으니까요. 그 작업이 지난했죠. 어떤 경우엔 새로운 곡을 창작하는 것만큼이나 편곡 과정이 어렵기도 한 것 같아요.
☑ 「Snowman in a Bathtub」은 아주 짧은 곡이에요. EP 앨범의 「Interlude」가 연상됐어요. 앨범의 한 페이지가 끝나고 잠시 숨을 고르는 느낌이죠. 왠지 모르게 공허한 감정이 들었어요.
처음엔 3분짜리 곡이었어요. 이 곡을 기점으로 하나의 흐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흐름으로 넘어갔으면 했죠. 그런 역할을 하기에 짧은 곡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트랙까지는 회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SUPERNOVA!」가 그 정점이죠. 우주에서 바라본 세상은 아름답지 않고 바이러스가 우글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니까요. 「항성통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찾는 내용이에요. 「우린 노래가 될까」에서 그 아름다운 장면들도 언젠가 사라질 텐데 노래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해요.
이러한 감정들이 「Snowman in a Bathtub」에서 교차돼요. 봄이 오고 창밖에는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꽃이 피고 있어요. 하지만 눈사람은 점점 녹고 있죠. 누군가의 봄은 누군가의 죽음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길이는 짧지만 이 앨범에서 하는 역할은 막중해요. 연극으로 치면 1막을 마무리하는 거예요.
명작이라고 해서 모든 시대에 사랑받을 수는 없어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더라도 언젠가 올라올 힘이 있다면 그것이 명작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이 찾는 것만이 명작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소수의 사람이 오랫동안 사랑한다면 그것 또한 명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 「Green Fields」는 2막을 여는 곡이에요. 주인공이 한층 성장한 느낌도 들어요.
이전 트랙들이 방황하는 주인공을 그렸다면 아홉 번째와 열 번째 트랙에서는 한층 성장한 주인공이 등장하죠.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부연설명을 하자면 우리 시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있잖아요. 경제 수준이나 사회적 위치가 한 사람을 대변하죠. 그래서인지 그런 가치들을 강요되고 주입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Green Fields」에서는 그런 힘겨루기가 하나의 초원 위에서 펼쳐져요. 그 위에서 수많은 가치가 뒤엉키고 충돌하는 모습을 그린 곡이에요.
☑ 「Odds」를 재생했을 때 본격적인 사운드가 나오기까지 공백이 꽤 길다고 느꼈어요. 「Green Fields」에서 수많은 가치가 충돌하잖아요. 그래서 이 곡의 공백에 많은 의미가 담겼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볼륨을 크게 키우면 약간의 노이즈가 들려요. 마치 파도소리처럼요. 이 시대의 잡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멜로디로 감춰두었지만 노이즈는 사라지지 않아요. 시대라는 게 꼭 그런 거 같더라고요. 시대가 변화하고 의식이 전환되더라도 잡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게 이 곡의 주제죠. 가사에 ‘Against all odds’라는 표현이 있어요.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이죠.
☑ 「Life Dancing」은 마치 엔딩 곡처럼 들려요. 앨범의 주제를 잘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에서요. 말씀하신 것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춤”이라고 노래하는 듯해요.
이 곡을 마지막에 배치하지 않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선 이 앨범을 하나의 주제로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고, 다른 이유는 풍성한 사운드로 앨범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어요. 마지막 트랙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는 보너스 트랙으로 넣을까 하고 고민했어요. 서사 바깥에 두려고 했는데 주제와 사운드가 모두 마지막 트랙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의 사운드는 극적이지 않아요. 코드도 크게 변화하지 않죠. 그런 점이 좋았어요.
두 곡 모두 앨범의 엔딩인 셈이에요. 「Life Dancing」처럼 춤추며 사라질 수도 있고,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처럼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어요. 다만 말하고자 하는 건 같아요.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거죠.
너드커넥션의 음악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에서 시작한다. 서영주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벌써 그리운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동경했던 음악처럼 그들의 음악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의 말처럼 “무언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너드커넥션은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우리 음악은 사라지는 것보다 먼저 온 그리움이죠.
「New Century Masterpiece Cinema」에는 너드커넥션의 지난 시간이 담겨 있다. 서영주는 “앨범 이후 분명 음악가로서 성장했음”을 느꼈지만 동시에 “미궁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한 앨범이 마무리됐다고 해서 삶 전체가 갈무리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예술가는 한 작품에 많은 것을 쏟아붓는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을 두고 다음을 향해 나아간다.
미궁에 빠졌다는 말이 꼭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에요. 달리 말하면 즐거운 방황 같은 거죠. 저는 지금의 고민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정규 앨범을 통해 성장을 체감했으니까요. 이전보다 선택지가 많아져서 고민하는 거 같아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이죠.
너드커넥션은 그들이 사랑한 시절과 오늘을 넘나들며 음악을 하고 있다. 오랜 대화 끝에 너드커넥션이 어떤 밴드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그들의 사라짐을 염두한 게 아니라 어떤 가능성을 꿈꾸고 있는지 엿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리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해왔어요. 음악이라는 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내린 결론은 하나예요. 우리는 여러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날카롭게 만들려고 해요. 우리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이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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