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불곰과 곰돌이 푸

남성성의 변화

by 까마귀소년

어느 날은 즐겨보는 유튜버가 이렇게 말했다. 요새 남자들, 하드웨어는 테토에 소프트웨어는 에겐이어야 한다, 라고. 사회가 남자들에게 요구하는 남성상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양면성이 뚜렷한 남자가 각광 받는가 싶나 생각해보면 과연 그렇다. 남자, 하면 곧장 떠오르는 키워드가 어릴 적 90년대의 <걸어서 하늘까지>에서 출발해서 2000년대의 <그놈은 멋있었다>를 연상시킨다. 2010년대를 회상하더라도 턱이며 팔뚝 같이 테두리를 두른 선의 두께가 조금씩 얇아진다는 느낌은 있었어도, 좌우간 신체 능력이 뛰어나야 하고 성정 면에서는 거칠고 투박하며 제멋대로인 경향이 강했다.


시간이 흘러 2026년은 어떠한가? 하얀 피부에 턱선은 완연히 섬세하고 유려하고 주위 사람들의 감정에 무척이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남자들이 전면에 나선 느낌을 받는다. <폭싹 속았수다>(아직 본 적 없음)의 관식이, <그해 우리는>(아직 본 적 없음)의 최웅, 너드남, 에겐남을 찾는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도 크고 또렷하게 들려온다. 이것이 반드시 대중 문화 속 캐릭터나 여자들이 바라는 남성상에만 국한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 남자들의 폭력성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거리나 학교 직장 어디에서도 물리적인 충돌을 찾아보기 어렵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남자들의 폭력성은 다수가 모인 어느 집단에서건 빈번히 발현되지 않았었나.


우리 사회도 조금씩 문명의 발전을 거듭하여, 남성성의 폭력성이 제거된, 그러면서도 심지가 굳고 책임감이 강하며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장점만 남은 남자를 우대해주는 분위기가 된 것 같다. 나는 워낙에 마음이 유약하게 태어난 남성이어서 폭력성이 제거된 남성의 시대를 누구보다도 환영하는 입장이다. 어렸을 적 체격은 비만했으나 속내는 누구보다 연약했기에 그 모순을 스스로 견뎌내기에 무척 힘들었다. 덩치도 큰 게 왜 울어! 넌 제대로 힘도 못 쓰고 그것도 남자냐, 그럴거면 고추 떼라, 같은 힐난은 소년의 정체성을 통째로 부정하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에겐남으로서 또는 F 성향으로서의 성정을 더 이상 거친 남자로서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아무쪽록 감성적인 남자가 긍정되는 사회의 트렌드가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한편으로 내 오래된 염원은, 외피가 곰 같이 두툼한 아저씨가 되는 것이다. 푸처럼 푸근한 곰 말고, 알래스카 불곰처럼 터프한 곰이어야 한다. 예시로 들 만한 유명인이라면 영국 배우 톰 하디, 야구 선수 나성범, <범죄도시> 촬영 당시의 손석구. 완전 마초의 화신처럼 보일 만한 외양을 어릴 적부터 동경해 왔다.

요컨대 2026년은, 나의 오래된 워너비와 시대의 흐름이 맞물리는 시기다. 그리하여 5년쯤 지속된 나의 웨이트 트레이닝은 올해 들어 한창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작년까지 체육관 출석 일수가 일주일에 3회를 근근이, 그것도 귀찮으면 2회나 1회로 줄여 나가던 것이 요새는 4회, 5회까지도 늘었다. 인바디 근골격량도 완만히 우상향 중이다.


얼마 전에 AI에게 자문을 구해보았다. '곰' 체격의 구체적인 조건으로서 키 181cm, 몸무게 80kg대에 근골격량 40kg 내외, 체지방률 15~17%를 달성하려면 얼마나 걸리겠냐고. AI는 항상 사용자에게 우호적으로 답변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인지 소프트웨어에 따라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을 보았다. 단, 주 3회 이상 유산소성 운동을 실시하고 현재 식단에서 탄수화물 2~300kcal를 적게 섭취하는 조건을 준수해야 그 기간을 앞당기기 쉬울 것이라고 하였다.

방문에 늘씬하고 야한 차림의 핀업걸 대신 wwe 스타, 야구 선수, 배우들의 사진을 걸어놓는 심정으로 핀터레스트에 접속한다. 그리고 잔뜩 벌크업된 그들의 사진을 캡쳐하여 저장해두고는, 체육관에 나가기 싫은 날마다 꺼내보며, 자꾸 늘어지려는 자신을 독려한다. 일단 방문 밖으로 나가자. 알래스카 불곰처럼 널찍한 등과 팔 다리를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