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와 통계에 집착하는 그 어딘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처음엔 브런치에 내부 심사에 통과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는데, 특별하고 신선하게 풀어낼 썰의 신규 생성이 없다 보니, 자연적으로 글을 풀어낼 게 없어졌다. 이런 점에서 꾸준하게 글을 쓰시는 분들을 존경한다.
숫자와 통계에 집착하지 않으려 하지만, 알람이 울릴 때마다 힐끗힐끗 숫자를 확인한다. 아무 생각 없이 써내려 간 글의 조회수가 작성 의도가 분명했던 글보다 라이킷이 많은 건 왠지 모르게 서운해진다. 얼마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이 가고 싶고, 코로나에게 빼앗긴 이전의 삶이 그리워서 끄적인 글 하나, 기존에 썼던 모든 글보다도 많이 읽혀서, 기분이 묘했다. 그냥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들을 써 내려갈 능력도 없지만, 브런치 사내 심사를 통과한 내 재료가 나를 만나 멋진 글로 탄생하지 못한 거 같아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고, 대충 낚시글이라도 써서 방문객이나 늘릴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나는 왜 브런치 글을 하나라도 더 쓸려고 할까.
1. 회사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내 삶의 다른 이야기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삶을 가장 비주체적으로 살아내지만, 내 인생에서 나라는 캐릭터가 가장 약한 곳인 회사, 그 밖의 삶을 살아내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노트북을 켜고 숫자를 두들기고, 고객들이나 동료들과 통화하면 자료를 만드는 직장인 외의 진짜 내 모습.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그 진짜 나를 만나려고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으니,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리고 회사 사람들이 모르는 나라라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 결론은 관종이라는 얘기 )
2. 삶의 기록의 연장선
페이스북은 좀 더 사적인 용도로 사용을 하고, 인스타그램은 그냥 관람차 탑승 기록용이며, 블로그는 아이돌 덕질용으로 대충 쓰다가 말았다. 브런치에는 오늘 꾹꾹 눌러뒀던 나와 나의 하루를 기록하고 싶었다. 매일매일 치이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모습인 직장인, 바다를 사랑하는 다이버, 운동하느라 고생하는 저녁의 크린이, 관람차 타러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기를 좋아하는 역마살 가득한 사람, 합쳐 놓고 나면 괴상하지만 그게 나 자신이라서, 그걸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다. 눈 뜨고 씻고 옷 입고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만 해서 다이어리 회사의 일정 외에 아무것도 쓸 일 없는 재미없는 인생 말고. 회사 일정 외의 삶이 다들 소중해져서 최근에 다꾸가 유행이 아닐까?라고 잠시 생각한 적도 있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는 항상 죽음 떠올린다. 죽고 싶다던가 늘 죽음과 함께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고, 내가 죽을 때 오늘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는지라고 생각을 하면, 답이 늘 빨리 나온다. 덕분에 결정장애가 별로 없는 편이기는 하다. 기본적으로 잘 죽고 싶고, 인생을 되돌려봤을 때 죽어가면서도 실실 웃고 싶다. 실실 웃는 방향으로 내 인생을 뚜벅뚜벅 걸어가기 위해서 하루하루 성장하고자 하며, 남들보다 너어어어어어어무 느리지만, ( 성장보다는 노화가 빠를 나이지만 ) 만족한다. 그러한 성장 기록을 남기고 싶어 글을 쓰게 된다.
3. 내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
처음에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는 브런치 1회 도전 실패 후 재 도전을 할 생각을 못해서, 원고지에 글을 쓸까 하고 ( 다이어리도 있고 수첩도 있는데 참 앤틱하다 ) 원고지를 실제 구입해서 쓰다가 띄어쓰기 벽에 막혀 포기했다. 자서전을 쓰기에는 너무나 비루한 인생이지만, 그래도 내 책이라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돈 주고 산 책들이 돈 값을 못했을 때 자주 발생하는데, 내가 내 책을 만들어도 돈 값을 못할 게 뻔해서, 자비출판 후 주변에 강제로 돌릴 계획이다. 가뜩이나 없는 친구를 더 잃게 되겠지만.
숫자에 집착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으면서도 내 글이 많이많이 읽혔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사람들을 많이 끌기 위한 목적의 글은 싫다. ( 어차피 사람들을 끌 재능 같은 것도 없는 게 사실이다. ) 브런치
글 쓰기도 뭐 인생의 성장기 기록 같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