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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Nov 18. 2024

운이 좋은 한 주

오늘은 운이 꽤 좋았던 11월 초, 새내기 기장의 일주일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 캐나다 항공사에서는 찾기 힘든 한국인 부기장과 신나게 수다를 떨며 비행을 하던 도중, 회사에서 이메일이 왔다. 원래 스케줄 되어있던 비행에서 나를 빼고, 다른 크루와 조인해 토론토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집에 오는 일정으로.

이 비행에 기장이 없어 회사가 하루종일 기장을 찾는다는 이메일을 이미 본 터라 놀랍지는 않았지만, 내가 잡혀 가다니. 원래 일정보다 집에 하루 늦게 돌아가게 되어서 잔뜩 심통이 난 상태였다.

데드헤딩으로 토론토 공항에 복귀해 다른 크루들과 조인하니, 친근한 부기장이 날 반긴다. 다행히 비행이 딜레이가 되기 전에 북쪽 마을로 향했다.


얕은 구름이 여기저기 옅게 흐트러져 있고, 바람이 잔잔한 밤. 비행기는 부드럽게 하강을 시작하고, 공항이 서서히 가까워져 오는 순간 - 앞에 뿌옇게 구름처럼 보이던 형체가 서서히 색과 모양을 바꾸기 시작하자 깨달았다. 아, 구름이 아니라 오로라구나!


나는 비행을 하고 있어서, 옆에서 함께 신난 부기장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밤이라 뿌옇게 나온 사진뿐이지만 그래도 형태가 조금 잘 보이는 사진을 하나 첨부한다.


오로라를 본 적은 있지만 비행을 하면서 본 적은 처음인데, 이렇게 버킷리스트에 한 줄을 그을 수 있게 되었다.

집에 못 가서 심통이 나 있던 나와, 내 불만을 살갑게 들어주던 부기장은 이 오로라 덕분에 나머지 비행을 즐겁게 하고 퇴근했다는 이야기.






2. 오로라를 보고 며칠이 지난날. 꽤 시니어인 무뚝뚝한 부기장과 이틀짜리 비행을 나가게 되었다.

출근 전부터 날씨가 우중충하니, 집콕하며 딱 낮잠 자기 좋은 날이라 출근하기가 영 싫었는데. 그래도 무거운 발을 끌며 출근을 했다. 


비행기는 만석이고, 날씨는 영 좋지 않다. 공항은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바람도 세다. 출발지고 도착지고 터뷸런스가 강해 승무원들이 혹시라도 다칠까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비행기는 Cruise Altitude (순항고도)에 도달하고, 터뷸런스는 여전히 비행기를 살살 흔든다.

저 멀리 번개가 치는 비 구름이 보이고, 우리는 꽤 멀리 있다고 생각한 찰나. St. Elmo's Fire가 나타났다.


구글에서 찾아온 사진

나무위키에서 찾은 세인트 엘모의 불 설명; 기상 현상의 하나. 뇌우(雷雨)가 일어날 때 교회의 탑이나 선박의 돛대와 같은 지상의 뾰족한 물체 끝 부분에 대기 전기가 방전되면서 나타나는 불꽃


주변에 번개가 치는 비구름이 많으면 종종 보이는 자연현상 중 하나인데, 여름에 종종 보인다. 이걸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조종사도 있다. 

그래도 난 코앞에서 펼쳐지는 이 정전기 쇼를 꽤 좋아한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플라스마 볼이 생각나 유리창을 만지고 싶어지게 하는, 조종사만이 볼 수 있는 자연의 신비로운 현상중 하나라.






3. 세인트 엘모의 불을 보며 비행을 한 다음날. 뉴욕에서 토론토로 돌아오는 밤이었다.

아직 11월밖에 안 됐지만, 요샌 해가 정말 일찍 진다. 약 6-7시 정도면 마치 한밤중인 것처럼 깜깜해진다.


별이 빽빽하게 찬 칠흑 같은 가을밤, 나와 부기장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서로의 얕은 지식으로 별자리를 찾고 있었고, 비행기는 Rochester와 버팔로 중간 즈음. 한적한 동네를 지나고 있었다.

바쁘지 않은 조용한 밤. 라디오에서 컨트롤러가 근처의 기상상황을 업데이트해 준다. 알겠다는 라디오 교신을 하는 찰나 -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진다.


처음에는 별똥별인 줄 알았는데, 이 꼬리가 끊기지 않고 쭉 내려간다. 정-말 크고, 밝고, 긴 별똥별이 초록색 빛을 강하게 내며 타들어갔다. 운석이구나!

구글에서 찾은 비슷한 사진

라디오 교신이 끝나자 이 운석의 불도 사라졌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운석이 눈앞에서 떨어지다니.

무뚝뚝한 부기장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운석의 색은 함량 성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내가 본건 초록색에 가까운 색이었으므로, 마그네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신기하게도 이날, 운석이 떨어지는 걸 봤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속속들이 인터넷에서 보였다.


토론토에서도 보았다는 소식이 들렸고, 좀 더 떨어진 디트로이트에서도 같은 걸 보았다는 사람들의 인터넷 포스트를 보았다. 다들 근처의 도시들이므로 같은 운석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https://www.reddit.com/r/Detroit/comments/1gp97xb/anybody_else_see_that_comet_around_745/?share_id=ha5SzVhw29Eq84TTDXflZ&utm_content=1&utm_medium=ios_app&utm_name=ioscss&utm_source=share&utm_term=1


이렇게 주변 여러 도시에서까지 보인 큰 운석을, 조종석에서 1열 관람을 하다니.






이렇게 새내기 기장의 바쁜 일주일이 끝이 났다. 

하나만 보기도 힘든데, 운이 좋게도 신기한 자연의 선물을 세 번이나 관측하게 되다니.

운수 좋은 한 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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