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게 쉽지 않네요]

by 운옥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기분 나쁜 말을 들었다고 하면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야, 그런 말 신경 쓰지 마. 그런 사람 말은 그냥 흘려보내.”


살다 보니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 말을 해준 만큼이나 나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 말을 위로의 말로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이 말을 들을 때는 그냥 그렇게 사람들과 한바탕 이야기를 나누고 더 이상은 생각나지 않게 마무리를 잘 지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이 말을 들어야 했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나도 모르게 맘 속에서 그때 들었던 그 말이 자동 플레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히 끝을 냈던 것 같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흘려보냈어야 했던 말을 한 글자, 한 글자 내 맘속에 담아놨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는 내게 상처를 줬던 말뿐만이 아니라, 나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줬던 말도 내 맘 속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선 있었던 적이 있다.

분명 A를 선택한다면 현재의 안정적인 기반이 흔들리고 장래가 불확실해지는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내 상황을 알고 있던 사람에게 지나가는 말로 A를 선택하면 난 몇 년 후에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때 내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나를 보더니 딱 한 마디를 했다.

“야, 그게 걱정이냐?

넌 생활고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어. 이제 와서 새로운 듯 이야기하지 마.”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정말 길 한복판에서 박장대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의 말처럼 내가 경제적으로 적당히 안정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그전에는 과연 나는 노후준비를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전전긍긍했었다.

난 내 인생의 대부분에서 생활고를 걱정했었고, 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의 명쾌한 대답 덕분에 난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편하게 A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 뭔가를 선택해야 하지만 두려움에 내가 작아지려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 생활고 에피소드가 슬그머니 떠올라 ‘난 언제나 생활고였고 지금보다 크게 더 나빠질 것도 없으니 새로운 길도 좀 가보자’라고 생각하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모한 선택을 하고 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들이 내게 미치는 영향들을 경험하게 될 때마다 말은 참 무섭고도 요물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공기를 울려 소리를 만들고 그에 의미를 담은 것이 말인데, 그게 그렇게 나에게 의식하지도 못하는 순간 자리를 잡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말에 대해 이렇게 의식을 하고 나니 말을 내뱉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졌다.

‘최대한 말하지 말자’

‘내가 어느 누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몰라’

이렇게 하다 보니 나는 본의 아니게 과묵하고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 되고 있었다.

‘그래, 그러면 좋은 말만 하자’라고 생각을 하니 본의 아니게 내가 하는 말들이 겉치레처럼 취급되어 가벼운 말이 되는 듯했다.

그래서 요즘은 좋은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때에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이러면 굳이 나쁜 말로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을 최대한 방지할 수 있고, 내가 하는 좋은 말들이 가볍게 접대성 말로 치부될 가능성도 줄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이 상태가 최종 버전은 아니다.

나도 상대에게 화가 나고 기분이 상하는 일이 있는데, 이때 말을 제대로 못 하니 속이 답답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아직도 내가 해결책을 찾아야 할 내게 남은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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