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인간의 삶에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도 제조되고 사용되다가 그 내구성이 다하면 폐기된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계기로 관계가 시작되고, 그 관계가 이어지고 계속되다가, 관계에 끝이 찾아온다.
사람 간의 관계가 시작되고 나면 그것을 유지하는 것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관계를 잘 끝내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관계의 끝은 서서히 거리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관계에서 이런 끝맺음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명확하게 끝을 선언해야 할 때도 있다.
끝을 선언해야 하는 관계는 그 끝을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마무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특히 상대방과 나 사이에 관계의 끝을 바라보는 시점이 다를 때, 즉, 누군가는 관계의 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아직이라고 이야기할 때,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예전에는 관계의 마지막 순간이 항상 아름다울 수는 없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관계의 무책임한 끝을 맺는 것에 있어서 너도 그럴 수 있고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관계를 맺고 끝내고를 반복하다 보니 몇 가지 이유로 적어도 내가 무책임한 끝을 맺는 주체는 되지 말자라고 결심했다.
첫째, 세상은 좁다.
언제 어디서 상대를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정말 민망한 순간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면 마주쳤을 때 서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수준으로는 관계를 끝내야 한다.
둘째, 상처는 오래간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래가고 그 흔적을 남긴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 상처의 경중에 상관없이 그것이 치유되고 극복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하고, 그 흔적을 볼 때면 씁쓸할 수밖에 없다.
굳이 삶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상대에게 상처를 준다고 해서 내 삶이 조금 더 좋아지는 것도 없고 때때로 뒤돌아보면 내 몫의 부끄러움만 남게 되니, 상대를 위해서든 나를 위해서든 가해자는 되지 말자.
셋째, 사람은 무섭다.
살다 보니 깨달은 것 중에 하나가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누군가를 잘 되게 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못 되게 할 수는 있어.”
이 말은 듣자마자 반박은커녕 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말이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알겠지만 평판 조사를 위해 연락이 올 때가 있다.
이때를 보면 실상은 어떻든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끝맺음을 잘해야 하다는 것을 원하지 않아도 배우게 된다.
사실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평판 조사로 인해 ‘셋째, 사람은 무섭다’를 몸소 체험하며,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다’
관계의 시작도 그 유지도 중요하지만 어찌 보면 끝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의 처음과 그 과정이 고생스러워도 끝이 좋으면 그 고생스러움도 무용담이 되고 아름답게 미화되는 면이 있으니 말이다.
난 오늘도 어떤 사람과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가고, 그리고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어떻게 하면 그 사람과 웃으면서 헤어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에 우리가 만났을 때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고마워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