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불된 돈이 당신의 가치입니다]

by 운옥

돈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의식주나 의료비로 사용되기도 하고, 사회적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품위유지비로 지불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먹는 데 큰 흥미가 없고, 기본적으로 쇼핑을 즐기지 않으며, 사회적 활동을 귀찮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평소 사용하는 금액이 그리 크지도 않고 돈을 쓸 때도 그리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나도 돈을 사용할 때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내가 지출해야 하는 돈이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경우이다.

여기서 다른 사람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그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경우가 아니다.

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해야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 집 우수관(雨水管)은 몇 년 전부터 말썽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수관에 금이 생겼는지 비나 눈이 많이 온 뒤에는 관에서 물이 새서 뚝뚝 떨어졌다.

사실 여름에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겨울에는 바닥에 떨어진 물이 그대로 얼어버리는 경우가 있어 가족들이 다칠 위험이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아는 업체가 없어 고민을 하다가 지인이 소개해준 업체를 통해 우수관 교체를 진행하게 되었다.

문제는 우수관 관련해서 전체 교체를 진행하겠다고 얘기했던 업체에서 기존에 사용하고 있던 물홈통 물받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체 교체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냐고 하니, 업체에서는 물홈통 물받이를 제외한 관 부분만 자기들의 영역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데, 분명 업체에서 우리 집에 사용할 새 물받이 부품을 찾아봤는데 못 찾아서 기존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말을 먼저 했기 때문이다.

만약 진짜 자신들이 다루는 영역이 관으로 한정된 것이면, 굳이 물받이 부품을 찾아봤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분명 난 이 부분에 대해서 업체와 끝까지 이야기할 수 있었다.

당신들의 말이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는지 아느냐고, 왜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시냐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난 내가 이렇게 업체와 언성을 높이게 될 경우 업체를 연결해 준 지인이 중간에서 곤란해질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만 했다.

난 지인과 계속 인연을 이어갈 예정이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나서서 업체를 알아봐 주고 힘써준 수고를 알고 있다.


그래서 결론은?

난 물홈통 물받이를 새것으로 교체하기 위해 12만 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이 12만 원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지인의 입장을 배려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으로 환산된 그 사람의 가치이다.

만약 업체가 50만 원을 추가 비용으로 불렀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난 얼굴을 붉히면 업체와 각을 세우고 지인에게는 뭐 이런 업체가 다 있냐고 컴플레인을 걸었을 것이다.

나에게 그 지인의 가치는 12만 원은 되지만 50만 원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난 시시때때로 다른 사람이 엮인 소비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갖는 의미를 음미한다.

그 사람은 나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그래서 난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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