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이 한 일을 온 세상이 알게 하라]

by 운옥

‘오른손이 한 일을 온 세상이 알게 하라’는 약 1, 2년 전부터 우리 집에 자리 잡은 집안 규칙이다.


몇 년 전에 집안일을 도맡아 해 오시던 어머니께서 많은 나이로 인해 일선에서 물러나시게 되었다.

어머니께는 잘하셨다고 이제는 집안일은 자식들한테 맡기고 쉬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실상은 집안일을 누가 얼마큼 한 것인가에 대해 치열한 물 밑 눈치 싸움을 벌여야 했다.

어머니의 자식들은 회사에서 일주일 내내 굴려지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지쳐 떨어지는 저질 체력의 몹쓸 인간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화장실 청소를, 세탁기 돌리기를, 설거지를 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일들을 할 것인가?

바로 못 견디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화장실 청소는 세면대의 물때를 못 견디는 사람이, 세탁기 돌리기는 세탁기에 옷이 쌓여 있는 것을 못 보는 사람이, 그리고 설거지는 싱크대에 그대로 있는 그릇을 도저히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당첨되는 것이다.


내가 못 견뎌서 청소를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청소가 마냥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청소를 하면서도 속에서는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청소를 하고 나서 다른 가족들에게 청소 좀 하라고 했을 때, 다음에 자신이 하겠다고 하면 그나마 마음이 좀 풀리는데, ‘그냥, 네가 좀 해’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때는 속에 있던 짜증이 폭발하고 언성이 높아진다.


이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니 청소 후 대화의 패턴이 <패턴 1>에서 <패턴 4>로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패턴 1>

A: 청소했다. 다음에 네가 해

B: 네가 좀 해

싸움으로 번짐


<패턴 2>

A: 청소했다.

B: 생색내냐?

A: 아니, 내가 청소했으니까 또 하지 말라고.


<패턴 3>

A: 청소했다.

B: 생색내냐?

A: 그래, 생색낸다.

B: 아, 고맙다.


<패턴 4>

A: 청소했다. 빨리 칭찬해라.

B: 어, 고마워. 역시 너밖에 없다. A가 청소했대. 빨리 칭찬해 줘


처음에는 청소를 하고 나면 짜증만 났다.

이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상태라 상대에게 청소 안 한다고 짜증 내고 언성 높이는 것도 한심해 보여서, 성숙한 대응을 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미성숙한 나를 인정하고, 가족들로부터 나의 노동을 인정받고 칭찬이라도 챙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청소를 하고 나면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내가 뭘 했는지 세세하게 말해준다.

그러면 칭찬의 시간이 시작된다.

‘역시, 우리 A야.’, ‘자, 박수쳐줄게~’, ‘빨리 A한테 감사해’


안타깝게도 우리 가족들 중에는 집안일에 우호적인 인간이 없다.

다들 집안일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며, 나 같은 경우는 휴머노이드의 출시를 몇 년 전부터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암묵적으로 서로 알고 있다.

‘저 인간도 되게 하기 싫은 일을 참으며 하고 있구나.’

‘제가 안 했으면 내가 했어야 했다. 제 덕분에 오늘 내가 안 해도 됐다.’

이 부분이 바로 집안일 후 우리의 대화 패턴이 달라지게 한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우리의 이러한 이해와 인정, 그리고 칭찬 패턴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집안일 뿐만 아니라 장기간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던 반찬을 먹어 처리한 사람, 마트에서 장보고 카드 결제해 주는 사람에게도 감사와 칭찬의 시간을 갖고 있다.


“네가 안 하면 내가 해야 한다.

고로 넌 감사와 칭찬을 받아 마땅한 좋은 사람이다.

너의 오른손이 한 일은 온 세상이 다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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