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 실패, 증발, 재기
어릴 때부터 나는 다른 나라들의 사회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좋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내 관심을 끄는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의 정치문제, 교육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면, 그 시간이 몇 시든 상관없이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정말 열심히 봤다.
조금 커서는 일본에서 일어난 일은 10년 정도 지나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난다라는 말을 듣고, 일본 관련된 콘텐츠를 더 관심을 가지고 봤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닮은 듯 다른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도, ‘왕따’나 ‘은둔형 외톨이’ 같이 정말 일본에서 문제라고 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 우리나라에서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을 보는 것도, 나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이런 나에게 있어 약 10여 년 전 신간목록에서 발견한 『인간증발: 사라진 일본인을 찾아서』라는 책은 너무나 구미가 당기는 책이었다.
책은 실패에 엄격한 일본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야반도주를 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책에서는 실패자가 주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밤에 몰래 새로운 곳으로 이주를 하는데, 이를 전문적으로 도와주는 업체도 있다고 소개했다.
처음에 책을 펼칠 때는 ‘일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10년 후 우리나라를 살짝 엿볼 수 있을까?’ 같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무섭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한 번 궤도를 이탈한 자들에게 무자비한 일본 사회 속에서, 증발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철저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 시작하자, 그 공포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이 책의 결말은 어떻게 됐을까?
‘손에 잡은 책은 다 읽는다’는 당시 신조에 따라 책은 끝까지 다 읽었다.
그리고 책은 책장 어딘가 눈에 잘 띄지 않은 곳에 뒀다가, 몇 년 뒤 그냥 버려버렸다.
나에게 있어 이 책은 이토 준지의 공포 만화를 봤을 때와 같이 뒷맛이 씁쓸한 그런 책이었다.
그렇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렇게 버려버린 책에 대해 내가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 걸까 싶을 것이다.
사실 지난달에 정희선 님의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2025』라는 책을 발견하고, Z세대를 주제로 한 부분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해당 파트에서 선택을 주저하는 Z세대의 특징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사례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Z세대는 선택의 결과가 실패할 경우를 두려워해 선택 자체를 망설인다는 설명을 함께 하고 있었다.
해당 내용을 보면서 몇 억씩 하는 집을 구매하는 것도 아니고, 향수나 여행지 정도의 선택도 이럴 수 있나 싶어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내 생각은 달라졌다.
도대체 이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중압감은 얼마나 크길래 이 정도 선택에도 멈춰서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간증발: 사라진 일본인을 찾아서』라는 책이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책 속, 증발한 인간들이 살던 사회보다 지금은 그 실패의 무게가 더 커졌나 보다’, ‘사람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 그 실패자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더 커졌나 보다’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이어졌다.
그래서 난 책을 다시 찾아보고, 여전한 씁쓸한 맛을 되새기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삶을 살면서 우리에게 실패는 없을 수 없다.
인생길 곳곳에서 우린 도전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맞이하고 때로는 성공을, 때로는 실패를 이어가며 삶을 채워간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우리내 인생에서 실패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른다면 우리는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파치노가 연기한 주인공은 탱고를 추다가 실수할까 봐 무서워하는 여성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탱고에는 인생과 다르게 실수가 없고, 실수를 한다고 해도 꼬인 스텝이 더 탱고스럽게 만든다고.
이야기를 들은 여성은 주인공과 함께 무대로 나가 탱고를 추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은 탱고는 인생과 다르다고 하지만, 난 인생도 탱고와 같았으면 한다.
인생을 살 던 중에도 실수는 실수가 아니고, 그 실수가 인생을 더 인생답게 만들기를 바란다.
선택하고 실패하고, 다시 선택하고 성공하고, 때로는 내 선택이 연달아 꽝인 경우라도 웃으면서 다시 선택의 자리에 설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참고도서
레나 모제, 스테판 르멜, 『인간증발: 사라진 일본인을 찾아서』, 책세상, 2017
정희선, 『인간증발: 사라진 일본인을 찾아서』, 원앤원북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