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연월 2019,01,11)
늦은 밤 혼자 작업실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내 주변의 찌든 냄새가 느껴져 몰입이 방해될 때가 있습니다.
(특히 담배 냄새와 퀴퀴한 잡냄새...)
조명도 좋고, 분위기에 맞은 음악에 흥얼거리며 점점 일에 빠져들 찰나,
이런 이유로 몰입단계를 방해받으면, 일에 몰입하기 위해 나름 “수 시간” 공을 들인
에이징(내면의 숙성시간) 타임이 그대로 달아납니다.
그러면 바로 습관적으로 담배 한 대 물게 되고, 연이은 달달한 커피 한 잔에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명분이 생겨 흐지부지 밤 시간을 보냅니다.
벌써 “두 개째” 고장 난, 아로마전용 전자식 디퓨저를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근본적으로 해결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내가 잘하는 “제품개발기법” 중 하나인 “기능적 고착” 격파에 바로 착수.)
기능적 고착(Functional Fixedness)
물건이나 개념을 ‘원래 쓰던 용도’로만 생각해서,
다른 가능성을 못 보는 상태.
-해결방안-
예시1)
해결 전 : “라 면” 냄비에 끓여 조리를 해야 한다. (번거롭다.)
해결 후 : “사발면” 끓는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다. (간편하다.)
예시2)
해결 전: "철사옷걸이" 빨래나 마른 옷 보관용으로 사용한다. (고착된 생각)
해결 후: "구부려서 누워서 보는 휴대폰 거치대"로 사용한다. (새로운 용도)
제품. 공간 디자이너인 내게 2003년부터 마르고 닳도록 필독서인
[“블록 버스터” 게리 린 · 리처드 라일리 지음]
이 책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반드시 정리해야 하는
“프로젝트 기둥 4가지”를 내 방식대로 정의하여 실행에 옮깁니다.
1 계기 : 전자 기화식 디퓨져는 고장이 잘 난다. (이젠 안 써.)
2 목적 : 전기가 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야외서도 OK.)
3 특징 : 예뻐야 한다. 그리고 안전해야 한다. (난 제품디자이너이다.)
4 결론 : 생활용품을 이용해 5,000원 내에서 완성한다. (가장 어려운 미션.)
운전하면서 생각을 거듭합니다.
아로마는 항상 물 위에 떠 있어야 한다.
그럼 기화방식을 어떻게 해결하지...?
순간...!
예전 “이천도자엑스포”에서 커피나 차가 식지 않도록 머그잔 밑에 작은 초를 켜 놓고
온도가 떨어지지 않게 데우는 방식이 생각나서 그걸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만만한 다이소로 직행했습니다.
생일 케이크용 촛불.
(너무 약하다, 그리고 높다.)
불교용 “소원성취” 막대 초.
(너무 크다 납작하게 자르는 것도 일이다.)
납작하게 자른다.
납작하게 자른다..
납작하게 자른다...
오...!
그럼 애초에 납작하게 생긴 초를 찾으면 되겠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뭔가 떠오를 것 같은데..
생활용품 코너. 바로 눈에 들어온다. (티-라이트 캔들)
맞아.
예전 싱가포르 스파에서,
그리고 태국 로컬시장에서 본 적 있어.
그럼 이제 티-라이트 캔들을 물 위에 올리면 되니까
우선 아로마 오일과 물은, 잘 안 쓰는 간장종지에 담으면 될 거 같고,
대부분의 재료가 원형이니, 작은 사각수반(접시)이면 좋을 것 같고,
나머지 그걸 받칠 수 있는 어떤 장치가 필요하겠는데.
아무리 납작한 초라도 불은 불이잖아, 넘어져도 불이 나면 안 돼...!
뭘로 하지.
뭘로 하지..
뭘로 하지...
생각하다가 전체 형상을 그려봤습니다.
그때 떠오르는,
공기가 잘 통하고
물 컵 정도 크기의 어떤 형태.
공기가 통하려면
구멍이 뚫려 있어야 하는데...
그게 뭐지.
그게 뭐지..
그게 뭐지...
순간,
주방용품 코너에 들어서자 눈앞에 클로즈업되는 반짝반짝 광이 나는 물체가 있었으니.
바로 스테인리스 하수구 거름망.
이거네...ㅋㅋ
그럼 마지막은 일반 성냥이나 라이터로는 어려우니, 고기 집에서 쓰는 가스 불판전용 긴 막대 라이터로 해결.
이로서 모든 조합을 마쳤습니다.
가장 비싼 티-라이트 캔들 3,000원
스테인리스 하수구 거름망 800원
긴 막대 라이터 1,300원
예상 금액에서 100원은 오버됐지만, 티-라이트 캔들이 좀 더 작은 소포장으로 팔았을 경우, 훨씬 저렴하게 준비를 마칠 수 있었을 거라는 위안을 삼으며, 목표치에 최대한 근접하게 재료를 구하고 손쉽게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는, 나름의 자부심에 들뜬 마음으로 작업실로 들어와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몇 분 만에~~
원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기능적 완성도와 조형미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눈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줍니다.
그리고
따뜻하면서도 은은하게 퍼지는
유칼립투스 향기에 취해~~
뭔가를 이루어냈다는 뿌듯함이,
마치 큰돈을 벌었을 때의 행복감과
견줄 정도의 충만함을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맞아.
개발을 하려면 목표가 명확해야 해...!
난 5000원 이하가 목표였어...!
만약.
금액에 상관없이 또는 전기를 배제하지 않았다면.
가전코너를 뒤지고 있었을지도 몰라.
형태는 기능을 말한다는 이론을 살짝 적용하면 (Form Follows Function)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그잔으로 형태를 유추했고.
난 거기에 딱 필요한 기능만 추가했어.
저는 늘 이런 게 생활화 돼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근데 이거 진짜 5000원이면 팔릴라나...ㅎㅎ
추신) 이 기록은 2019년 01월 11일에 만든 물건에 대한 이야기이고
2025년 12월 15일에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