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간 지 두 달 만에 자퇴했었어요. 자퇴의 이유를 물어보면 시원스레 대답할 순 없었지만, ‘야구빠따’ 구타가 빈번했던 당시 학교의 엄혹하고 폭력적인 분위기가 저를 위축시켰던 건 분명해요.
참 우습게도 그 위축됐던 마음은 자퇴 후 입당한 진보 정당에서 달랠 수 있었어요. 탈학교 청소년 당원에게도 우호적이고 평등했던 ‘진보 정당’이라는 그 공동체 안에서 안전함을 느꼈고, 전 그 덕분에 둘도 없는 소중한 청소년기를 크게 탈 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고, 성인이 된 지금도 생각해요.
저는 여전히 “누구나 이미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고서는 자유를 누릴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할” 거라는 칸트의 말에 동의합니다. 자유인이 되어야만 자유인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거잖아요. 노예로서 자유인의 성숙에 이를 순 없겠지요. 청소년의 권리 역시 그에 상응하는 청소년들의 성숙에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 11년이 되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들의 권리를 신장하고, 청소년들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에 놓여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학생인권조례를 흔들기 위해 부단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은 조례 폐지 시도를 단호히 반대하며, 조례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깊은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보다 더 나은 공동체를 꿈꿨던 저의 청소년기를 떠올리며 오늘의 논평을 썼습니다.
오늘 1월 26일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지 11년째 되는 날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지정된 ‘학생 인권의 날’도 올해로 8년 차에 접어듭니다. 축하의 인사를 보냅니다. 또한 ‘행복하고 민주적인 학교 공동체’로 가기 위한 서울시교육청을 비롯 여러 단체 및 개인들의 노력에도 응원을 보냅니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우리 학교의 풍경을 많은 부분 바꾸어 냈습니다. 두발·복장 규제와 아직도 미디어에서 심심치 않게 묘사되는 학생 체벌 같은 학교의 예전 ‘관행’들은 점점 과거의 모습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비록 완전하진 않더라도,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울 학생 인권에 제동이 걸리고 있습니다. 조례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가 서울시민 6만 4천 명의 서명이 담긴 명부를 서울시의회에 제출했고, 현재 청구 심의 중입니다. 시민연대가 폐지를 추진하는 주된 논리는 조례가 동성애·성전환을 옹호 조장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 정체성은 찬반의 문제일 수 없고, 학생뿐 아니라 어떤 시민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차별받아서는 안 됩니다.
학생인권조례의 당위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도 입증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이미 학생의 성적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혐오표현을 금지하는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는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조례에 합헌 결정 내린 바 있습니다. 또한 학생인권조례 무효화 행정소송도 기각되었습니다. 이는 학생인권조례의 당위는 물론 모든 시민들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의 정당성도 보여줍니다.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하여 당사자인 학생 주체들의 의사 반영 없는 정쟁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또한 학생 인권이 꽃피는 미래를 향한 발걸음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학생인권 의제가 공론화된 지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6개 지역에서의 학교인권조례 제정, 가정 내 체벌을 금지하는 민법 개정, ‘만 18세 선거권 연령 하향’, ‘만 16세 정당 가입 연령 하향’과 같은 청소년 참정권 등 많은 부분에서 학생 인권의 진일보가 있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이러한 인권 의식 함양에 찬물을 끼얹는 역사적 퇴행에 불과합니다.
정의당은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기 위한 시도를 단호히 반대하며, 조례를 지키기 위한 시도에 깊은 연대를 보냅니다. 또한 학생뿐 아닌 모든 시민들의 인권이 함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