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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월과 팔월 Jul 29. 2019

부조리에 관한 생각 2-전교 부회장 출마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사회의 부조리를 배우게 돼있다. 아이들을 무시 말라

좋은 생각만 떠올리려고 노력하지만 이따금씩 1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 때문에 화가 나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때는 어느덧 17년 전 고등학교 1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위 리더 놀이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국민 아니 초등학교 시절부터 반장선거엔 꼭 출마했다.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고,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딴에는 샘이 많은 아이였다고 생각하지만 재수 없는 아이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여하튼.


고등학교 1학년에도 어김없이 나는 반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결국엔 부반장이 되었다. 반장이건 부반장이건 무슨 상관 이리. 당시 우리 반의 반장은 입학시험 1등(요즘에도 이런 것을 하는지 모르겠다.)으로 입학식 때 무려 선서를 했던 분이므로 내가 부반장이 되었던 것만으로도 꽤 만족했던 기억이 난다. 


때는 10월, 다가오는 달에 전교 부회장 선거가 있는데 전교 부회장 출마 의사가 있는 학생은 교무실로 찾아오라는 공고가 붙었다. 평소에 리더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나는 그날 곧장 부회장 출마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8시(우리 때는 야간 자율학습 이란 것이 있어서 저녁 식사 후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담임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철수야. 전교 부회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신청서를 냈더구나. 오늘 영수(우리 반의 반장이자 전교 1등)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영수도 전교 부회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더라. 네가 전교 부회장 출마 신청한 것을 내가 없던 것으로 하겠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당연히 나는 되물었다. 


" 선생님. 저도 출마하겠습니다. 제 신청서를 없던 것으로 하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 왈,


"네가 선거에 출마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안다. 그렇지만 교칙상 성적이 좋은 학생이 나오면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이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일단 알겠다고 했는데, 자리를 일어서면서 보니 마침 그날 학생부장 선생님이 같이 저녁 야간 자율학습 당직을 서고 계셨다. 그리고 선생님께 물었다. 


" 선생님, 학생 부회장 선거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우선적으로 후보가 된다는 교칙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교 회장은 전교 30등 정도인데 어떻게 후보가 되었죠? 교칙에 그런 법이 있나요?"


이렇게 물었다.(비슷하게). 당연히 당황한 기색으로. 


" 어디 보자. 잠시만 기다려봐라."


5분쯤 뒤.


"그런 글을 없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나는 다시 자리를 일어나 담임에게 갔다.


"학생 부장 선생님이 그러는데 그런 교칙이 없다네요. 다행입니다. 저도 출마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담임의 말.


" 철수야. 이리 와 보렴. 네가 지금 부반장이잖니. 너도 알겠지만 우리 학교는 부반장이 되면 한 학기에 100만 원을 학교 기금으로 기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그런데 네가 아버지 직업으로 쓴 란을 보니 기계 관련직종이라고 적었더구나. 회장이 되면 그런 규칙이 더 엄하단다. 부모님의 가정형편을 생각해서 나가지 않는 게 어떻겠냐?"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 아... 내가 아버지 직업을 기계 관련 직종이라고 적었었지.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는 OO전자에서 일을 하시니까.'


사실 내가 OO전자 전무이사라고 아버지 직업을 적지 않은 것은 나의 중학교 시절 경험에서 왔다. 나는 초등학교를 소위 동네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대학교보다 비싼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1학년에 2반 그리고 학년당 40명이 안 되는 학교를 졸업했었다. 중학교는 일반계 중학교로 갔는데 일단 고학년 형들이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협박을 많이 듣기도 했고 ("너 OO초등학교 다녔다며? 너 아침마다 스쿨버스 타고 학교 가는 것 봤다. 네가 받는 용돈 반만 내게 줘라. 형이 배가 고프다.") 선생님들이 부모님 가 식사를 하고 싶다고 정말 많이 물어봤기 때문에 그런 여러 부분들을 고등학교에까지 가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직업을 기계 관련 직종이라고 적었다. 


첫 번째 충격은 왜 내가 부반장인데 부모님이 학교에 발전 기금으로 100만 원을 내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 두 번째 생각은 부모님 직업으로 괜히 걸고넘어지는 게 너무 기분이 나쁜데 이것을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 솔직히 말해서 중학교 시절의 일을 다시 겪고 싶지도 않았지만 또 회장 선거에도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했다. 


" 부회장이 되면 얼마의 돈을 기부해야 되나요?" 


그렇게 물어봤더니 선생님 왈.


"금액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네가 그런 돈 적인 것까지 관심이 있다니 의외다. 그것은 부모님과 학교가 하는 이야기지 학생이 학교에게 요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슨 개소리인가. 어찌됐건 나는 일단 걸리고 나서 돈을 내는 것이니까 그것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을 했고, 선거에 나가겠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 철수야. 선생님이 화내지 않고 말할게. 한 반에서 두 명의 부회장이 나오라는 법이 어딨냐. 누가 봐도 집안 망신이다. 선생님 생각엔 영수가 회장에 더 적합하다. 영수가 회장에 나가는 것이 맞고, 담임의 재량으로 너는 부회장 선거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 


참 나. 말이 되는 개소리를 해야지. 그때 정말 나는 꾹 참았고, 이 이야기를 아버지께 했다. 아버지는 이것은 말이 안 된다 내가 선생님과 만나서 이야기하겠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셨던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부반장이 학교 기금으로 100만 원을 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고(아버지는 모르셨던 것 같다) 각 반에 반장과 부반장 이렇게 2명이서 200만 원을 냈다면 총 2천만 원을 기금으로 걷었을 텐데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일단 그것부터 말을 하고 그것이 정당한 것이면 부회장이 되어도 돈을 내주시겠다는 말씀이 요지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성격을 알고 또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발 아버지에게 가만있어달라고 말씀을 드리고 나는 다음날 아침 부회장 선거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너무 힘들었으니 제발 이번엔 가만히 계셔달라고 당부의 말씀을 드렸고 아버지는 약속대로 전화를 하지 않으셨다. 


결국 요지는 가난한 전파상의 아들이 전교 1등을 학생회장으로 만들려는 담임에게 패배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아무래도 늦게나마 고등학교 시절 사회의 부조리를 처음 배운 게 아닌가 싶다. 오히려 내가 아닌 정말 힘든 가정형 편의 친구들은 얼마나 더 어린 나이에 세상의 부조리를 배웠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 담임은 내가 2학년, 3학년이 되어서도 담임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우리 학년의 영어선생으로 있었고, 틈날 때마다 내가 그에게 대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를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또 나를 무시했다. 정말 선생이라는 인간이 내가 질문을 던져도 무시를 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정말 그 담임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아니면 내가 얼마나 미친놈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모든 선생들이 나를 무시했다. 


내가 2학년 때 당시 소꿉친구가 있었는데, 부산시 장학사의 외손녀이자 동네 종합병원 병원장의 친손녀였는데, 1학년 당시 옆반이었던 수학선생과 국어선생(별명이 각 피바다와 골초였다.)은 나를 저녁 야자시간에 불러내어 벽에 어깨를 밀치면서 어깨를 툭툭 치면서 영희와 같이 다닌다는 소문이 있던데 한번 더 그 소리 들리면 너는 피바다의 맛을 볼 것이다. 이런 소리를 해댔다. 


때는 3학년. 3학년이 되니 학생부장이 수능 특별반이라고 학생에게 신청을 받아서 50명 규모로 6 시 이후에 더 큰 책상과 사물함이 있는(컨벤션 룸이라고 불려져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학교의 하나의 방을 특별반 야자 학습실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나도 참 비뚤어진 놈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내가 신청서를 내면 받아주지도 않을 거다. 전교에 10반이 있으니 한 반에 세네 명인데 내가 이쁨을 받을 리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땐 정말 내가 비뚤어지고 또 너무 심하게 당한 탓에 자격지심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연히 신청은 거부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것 인지 나의 이런 이야기가 학교에 있는 다른 친구의 입을 통해서 그 친구의 어머니의 귀에 들어갔고( 내가 사실 1학년 때부터 담임이 내게 회장 선거를 못 나가게 할 때 그리고 많은 선생들이 나를 벽에 밀어붙여서 폭력을 가할 때 그것을 꼭 모든 친구들에게 말했다.) 결국 우리 아버지가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 같다.


고3의 어느 늦봄. 특별반이 아닌 일반 교실에서 야자를 하고 있는데, 술 취한 학생부장 선생이 내게 다가와서 다짜고짜 "너는 쓰레기야."라고 하면서 내 빰을 때리려고 하고 멱살을 잡고 내 책상을 부수려고 했다. 그 선생의 이름은 김진 X인데, 정말 자주 야간 자율학습 당직 때 술을 많이 마셔서 악명이 자자했다. 나는 왜 이 선생이 나에게 이러는지 도저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 집에 가니 대경실색한 어머니 그리고 편안하게 앉아있는 아버지가 계셨는데, 아버지가 그다음 날 3학년 담임선생들을 불러 고깃집에서 저녁을 쐈다고 한다. (내가 학교에서 무시받고 있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정확히는 저녁과 술 그리고 2차였는데, 2차에서 학생부장과 내 예전 담임이 아버지에게 사업 조언을 해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사실 그 사람들에게 사업 조언을 들을 필요가 없는데, 계속 사업부를 이렇게 저렇게 고쳐야 한다느니 그런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정중한 목소리로 "선생님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인데 조언만 잘 듣겠다. 그렇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자."라고 말을 하셨다고 한다.(물론 이 이야기도 꽤 편파적일 수 있다.) 


그런데 선생의 왈 "어디서 감히 학부모가 선생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데 선생이 말하는데 끼어들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대사는 당시 고3 담임이 내게 해주었다. 왜냐하면 그 소주를 먹고 지난날 나를 죽이려 했던 선생이 다음날 아침 내 등굣길에 나를 찾아와 무릎 꿇고 한 번만 봐달라고 빌었기에 나는 대체 영문을 모르니 담임에게 찾아갔었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 사이에 언성이 오갔고 아버지에게 술을 던졌다고 들었다. 아버지도 열 받아서 지금 당장 자리를 뜨지 않으면 죽어 벼리겠다고 하셨다고 한다.(나참...) 그래서 그때 도망쳐서 분풀이를 하러 온 것이 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잘못한 게 있으니 내게 아침에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말려달라고 빌었던 것..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당시 나와 비슷한 분노를 느끼고 있던 다른 친구가 있었는데, 반장. 부반장, 전교회장, 부회장이 되면 학교에서 강제로 돈을 걷었고 그것이 학교 기금이 아니라 선생님들의 소풍 목욕비 항목으로 지출되었다는 것을 찾아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이것을 교육청에 고발했고, 선생들은 그 돈을 다시 궤어내어 갑자기 학교 앞에 엄청난 크기의 장미정원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생각도 못한 고급 장미정원이 생긴 것은 팩트인데, 그 친구에 따르면 그 돈을 궤어내어 그렇게 썼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정말 있었다. 요즘의 학교는 어떨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었고 또 많은 내 또래의 사람들은 이런 일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할 거라 생각을 한다. 


어린학생들이라고 사회의 부조리를 모를까. 다 안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우리가 어릴적엔 한 녀석이 부잣집의 자식이건 뭐 지방 의사나 교수의 자식이건 할 것 없이 뭐 쟤가 잘 사는 집안의 애구나 정도는 알고 지냈지만 그 자체로 크게 위화감을 많이 느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물론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것이다.) 친구로서 같이 잘 지내고 또 점심시간에 축구도 같이 하고 주말에 PC방은 다 같이 다녔다. 


요즘 학교는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인스타그램이니 하는 것도 있고 또 워낙 좋은 브랜드가 더 많이 소개되다보니 어릴시적부터 이런 것이 더 티가 많이 나고 아이들이 더 이른 나이에 집안의 격차 그리고 (혹시 아직도 선생님들이 부모의 직업이나 재력에 따라 아이들을 차별한다면) 아이들도 그런 부조리를 점점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간에 문득 우리 사회가 참 별로다 라는 생각을 한 시기가 언제였는지 오늘 문득 떠올리다 10년도 더 지난 그 떄의 일들이 생각나서 분노의 감정을 배출하고 또 지금 생각을 마구잡이로 적어놓게 된다. 요즘엔 좀 더 나아졌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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