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순한 친절과의 작별 : 불친절한 나의 시작

by 도정하

무엇을 흘렸는지 입고 있는 빨간색 멜빵바지가 흠뻑 젖어있고, 어쩔 줄 몰라 소리 내어 우는 나를 쥐어박는 엄마.


그것이 나와 엄마의 최초 기억이다.


오랫동안 가슴이 아파 떠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여전히 맨발로 겁에 질려 우는 3살 아이가 내 안에 있다. 아직도 멜빵바지는 젖어있고 나는 도망갈 줄도 피할 줄도 몰라 그저 앙앙 소리치고 있을 뿐이다.


내 안의 3살 아이가 조금도 크지 못했음을 마주했을 때, 내가 왜 그토록 친절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남겨질까 봐, 혼날까 봐 두려웠고 도망가는 법 조차 몰라 할 수 있는 것은 친절함을 베풀어 누군가를 붙드는 것뿐이었다.


학교 생활에서도, 직장생활에서도 거절을 못했다. 남이 안 하면 내가 하고,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하려고 늘 종종거리고 고군분투했다. 누군가 내 노고를 알아보고 내 곁에 머물기를 바라며.


삶을 구성하는 거의 대부분의 인간관계에서 을이었고 낮은 자세였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처절한 친절이었지만, 얻어지지 않았다.


친구는 나를 만만히 여겼고, 사랑은 배반했으며, 일에서는 호구가 되어있었다. 가족 안에서 조차도 주변인이었고, 그저 소비돼야 하는 존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탄탄한 직장, 꽤 높은 연봉, 자신감 넘치는 커리어 우먼이었지만 실상은 매일이 절박하고 불안했다. 언제든 내쳐질 수 있다는 두려움과 긴장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 낸, 얄팍하기 그지없는 껍데기 속에서 떨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받은 첫 연봉의 10배 이상을 벌게 되었을 때, 뭔가 해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생활이 멈췄다.


마음의 감기인 줄 알았는데, 마음을 넘어 몸이 잠식당하고 숨을 내쉬며 눈물만 흐르는 시간이 지속되었다. 수면과 각성의 경계가 없었다.


직장생활 내내 월급의 3배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빨리 폐기해야 할 짐덩이가 되어 있었다. 처음은 눈물이 안 멈췄고, 곧이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회사를 나가니 잘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글을 읽기 어려워졌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거쳐 한 달간의 휴직이 시작되었고, 한 달을 넘어 이미 수년이 지난 지금에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했다.


그렇게 나의 자발적 저소득자 생활이 시작되었다.


인생 전체를 걸쳐 내가 베풀었던 친절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어 내가 업무에 끼친 민폐를 사과했을 때, 상사는 카톡을 하고 있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나를 피했다.


목적 있던 나의 친절은 손절로 돌아왔다. 나의 친절에는 의도가 있었다. 알아주기를, 되돌려주기를 바라던, 상대는 생각도 않던 혼자만의 거래였다.


혼자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에게 불친절한 대가를 처절히 겪고 나서야 친절을 멈췄다. 아무도 찾지 않는 한동안의 시간을 실제로 마주해 보니 그것은 머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보잘것없었다. 그렇게 별것도 아닌 것에 벌벌 떨며 일생을 엎드려 살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친절하지 않기로 했다. 마음에도 없는 호의로 호기 부리지 않기로 했다. 없는데도 나누고, 싫은데도 참는 것을 하지 않기로 했다.


가장 외롭고 어두컴컴하던 곳에서 혼자라는 공포와 뒤엉켜 버틴 시간은 불순한 의도로 친절했던 나를 떠내 보내던 긴 장례였다.


그렇게 나의 30대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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