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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정하 Nov 30. 2023

광고글 도배하며, 제안서쓰며 마케터가 되어가다

현타와 이상 사이

이름 들어본 회사의 신입사원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름 들어본 회사를 고객사로 하는 대행사에서, 나처럼 비슷하게 대기업 입사에서 밀려난 비슷비슷한 스펙의 올망졸망 신입사원들이 가득한 대행사에서 마케터의 삶이 시작됐다.


가슴 뛰기에는 이미 여러 번의 해고로 열정은 접힌 지 오래, 자부심을 느끼기에는 100만 원 남짓의 급여에서 차 떼고 포 떼니 20만 원이 남았기에 그때의 나를 관찰예능처럼 뒤따라가 본다면 아마 빈곤으로 희번덕이는 눈빛, 날은 섰지만 제대로 뭐 할 줄 없는 맑은 눈 광인에 가까웠을지 모른다.


마케터가 된 첫 입무는 모 대기업 브랜드 블로그 중 하나를 전담하고 해당 브랜드와 관련된 주요 키워드들을 당시의 양대 포털인 네이버와 다음에서 검색할 때 긍정적 컨텐트가 최대한 노출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이었다.


포털에 가장 이상적인 컨텐트들이 나오게 하는 작업을 '포털 최적화'라 불렀고  부정적 컨텐트가 올라오면 반박하는 댓글을 다는 소위 말하는 물타기를 '중화' 작업이라 불렀다.


내가 생각했던 마케팅은 이런 것은 아니었다.


STP와 SWOT에 근거하여 브랜드를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소비자가 이 브랜드로 행복과 만족을 느낄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마케터가 되어보니 내가 인터넷에서 볼 때마다 질색하던 광고 도배글 쓰기에 가까운 일이 주 업무였다.


매주 월요일마다 고객사에 보내는 보고서에는 핵심 키워드들의 보고서 전 주 금요일 검색 결과 상태를 보고하기 때문에 매주 금요일이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객사의 컨텐트가 최상단에 노출되기를 바라며 업무를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고객사가 아닌 경쟁사 키워드 컨텐트가 상단에 보일 때면 '밀어내기' 작업으로 수없이 영혼 없는 글들을 온라인 게시판에 도배시키며 최상의 검색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일단 금요일의 검색 결과이기만 하면 되는데 금요일 몇 시의 데이터로 보고해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상위노출이 될 때까지 도배글을 써가며 수시로 검색창에 핵심 키워드를 입력하고 수없이 F5, 새로고침하는 단순노동, 노가다를 해야 했다.


운이 좋으면 퇴근 전에 최상의 포털 최적화가 되기도 하고 때때로 밤 10시가 넘어서 상위노출이 될 때도 있었다. 금요일의 낭만 따위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을社의 마케터 현실이었다.


보고서에 올라가는 검색 결과 화면 캡처에 포함되는 섹션은 지식인, 블로그, 카페, 웹문서 모두였기 때문에 모든 섹션에서 수없이 영혼 없는 글을 써야 했다.


전혀 궁금하지 않은 질문에 답을 쓰기도 하고, 아이디와 아이피를 바꿔가며 정말 고객사의 브랜드에 미친 사람이 되어 누가 볼리 없는, 오로지 보고서에 들어갈 단 한 장의 스크린샷 이미지를 위해 무의미한 생산을 해냈다. 우주의 쓰레기 같은 일이었다.


지금이었다면 마케팅계의 십알단, 댓글작업과 여론조작으로 철컹철컹이 되었을까?


상위노출이 잘되는 카페나 블로그에 광고의 느낌이 나지 않는 양질의 글쓰기는 내 전문이었다. 학창 시절 학교 대표로 여러 차례 글쓰기 대화에 나가고 상을 타며 문학인을 꿈꾸며 언젠가 글쓰기로 밥을 먹고살고 싶었지만, 이런 식으로 밥 먹게 될지는 몰랐다.


빵 터지는 유머컨텐트에 슬쩍 고객사 제품을 집어넣기도 하고, 광고인지 진짜 순수컨텐트인지 갸웃거리게 만드는 이미지, 영상, 글을 생산하며 그렇게 마케터의 일차가 쌓여 월차가 되고 연차가 되어갔다.


지금 인스타그램에 알고리즘으로 뜨는 웃긴 컨텐트들을 보면 마지막 장에는 광고인 경우가 많은데 내가 바로 그 시조새다.


지식인, 블로그, 카페를 넘나들면서 오직 포털 노출 최적화 작업에 몰두해야 하는 이게 과연 마케터가 맞는지에 대한 현타는 매일 만났다.


그러다 일 년에 한 일주일 정도 꿈꾸던 마케터와 비슷한 일을 하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그때는 제안서 쓰기.

고객사들은 단발로 3개월만 업무 대행을 계약하기도 하고 일 년씩 계약을 하기도 했는데 대행사 입장에서는 연간 계약이 가장 알토란 같은, 밥줄이었다.


만약 계약을 따오지 못하면 말 그대로 나는야 잉여인력.


제안을 따오는 것은 결국 밥줄의 문제였기 때문에 제안서를 쓰는 시기면 주말 내내 출근하여 회의실에 갇혀 아이디어를 짜냈다. 당연히 추가 노동에 대한 보상은 없었다.


제안서의 내용은 뻔했다. 네이버에 고객사의 브랜드를 검색하면 최상단에 뜨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관련 있는 키워드 검색 시 온통 고객사의 브랜드 관련 내용으로 도배되게 해 주겠다. 그것도 아주 싼 가격에.


소비자와 마주하는 온라인 첫인상 관리, 포털 검색 최적화 노출을 위해 브랜드 친밀도와 로열티를 높이는 컨텐트로 진성의 팬을 만들어 브랜드 선호도를 높이는데 기여를 한다는 번드르르한 말로 손바닥을 비벼댔지만,  고만고만한 대행사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바로 그것.


싼 가격과 열심히 바짝 엎드리겠다는 을의 자세에 더해진 성의.


이 제안서 쓰는 기간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대행사를 다시 쳐다보지 않게 됐을지도. 하지만 진짜 대행사를 떠나온 계기는 따로 있다만.


만약 제안서가 간택되지 않으면 그날로부터 계약을 딸 때까지 수없이 무수히 많은 제안서를 써야 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 회사의 가장 큰 물주인 연간계약을 잡아야 했다.


제안서만 통과되면 일단 1년은 안정적 일자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필사적이다. 첫 제안서를 쓰던 시기 더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제안서 쓰는 시기가 바로 나의 3개월 수습기간 중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수없이 해고를 경험했고,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거지였기 때문에 절실했다.


광고글이나 도배하고 있는 내가 과연 마케터인가 헷갈리는 나날이었지만, 이 업무 대행 계약 연장에 내가 기여한다면 무난히 정규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제안서를 쓰며 함께 일하던 팀원은 병원에 실려갔고 팀장은 20대 중반의 나이가 놀라울 정도로 온갖 세파의 때가 묻은 굉장히 정치적이고 무능한 사람이었다. 실질적인 일은 내가 다 해야 하는 독박노동 상황에서 운 좋게 제안서는 채택되었고 연간 계약이 이루어졌다.


사실 그 제안서는 이미 그 회사에서 다른 고객사를 붙잡아 맨 제안서를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 한 틀에 약간의 아이디어를 MSG 삼아 벤치마킹한 것에 불과했지만 아마도 가장 싼 견적, 그리고 이미 업무를 다 파악하고 있는 합맞춰본 대행사이니 구관이 명관이라는 마음으로 된 간택임을 모를 리 없었건만 어쨌든 감사한 일 아닌가.


그렇게 수습 기간 중 연간 계약이 이루어진 제안서를 쓰고 드디어 내 포트폴리오의 첫 줄이 될 제대로 된 고객사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 더이상의 부당해고는 없는, 안정적인 따박따박 월급의 세계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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