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고도 잔인한 인생 상환의 법칙.
나는 지독한 회피형 인간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에서는 웅크려 날아오는 책무를 피했고, 견뎌야 풀리는 일에서는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
물론 모든 면에서 그러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랬다.
두렵고, 무섭고, 걱정되고, 귀찮고, 번거롭다는 게 대부분의 이유였다.
하지만 대외적인 나의 이미지는 젠틀하고 진취적이며 적극적이고 냉철한 사고로 깔끔하게 일처리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의 겉껍데기에서 아주 얇은 한 막만 들춰내면 매 순간 낭떠러지에서 물구나무서기 하는 어설픈 광대 같은 진짜 자아가 있었다.
언제부터 나는 이리 도망만 치며 살았는지를 반추해 보다가 9살의 기억까지 내려갔다.
비참한 동심의 나날들이었다.
몰입하고 파고들면 쟁취할지도 모르는 여러 인생의 선택지 앞에서, 결국은 자신 없고 두려워 열지 못하는 주제에 비범한 척 연기하며 '이건 내가 하는 선택'이라며 누가 봐도 질 떨어지는, 후회할 것이 분명한 문을 열곤 했다.
그렇게 도망친 대가가 이토록 클 줄 몰랐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멸시와 차가운 대우를 받았을 때 이유를 묻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열심히 성실한 직장인 코스프레를 했다. 밥벌이가 끊기는 것은 그 모든 상황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기 때문에.
오랜 연인이 나 몰래 만나온 여자가 연락해 옴으로써 밝혀진 삼류스럽다 못해 정말 너저분하기 짝이 없는 배신을 했을 때, 끊어내지 못했다. 밥은 먹었는지 물어주고 내가 아플 때 걱정해 주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소시오패스가 너무나 분명한 상사의 비위를 헤어지는 날까지 맞춰주었다. 좁은 세상에서 끝까지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오판 때문이었다.
나름 꽤 긴 연애를 거쳐 함께 인생을 살아가기로 결정을 하면 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무시했다.
둘만 좋아 살면 되는 것인데 굳이 불필요한 지출을 허례허식에 쓰고 싶지 않다는 경제적 논리와 진보적 가치관을 내세운 것이었지만 사실은 두려워서였다.
내 머릿속에 저장된 삶의 영상들을 수없이 돌려보아도 '가정'이라는 것은 내게 행복이 아닌 불안 그 자체였다.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부모님의 결혼생활, 지금이었으면 뉴스에 나올지도 모를 학대와 방임적 육아의 시간들을 돌이켜볼 때 누군가와 가정을 이뤄 '화목'이라는 가치를 만듦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그것이란 내가 누릴 수 없는 것, 내 인생에서는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했다.
더불어 가정을 만들고 가족을 형성해 나가며 생겨나는 여러 관계들에 답답했다.
내게 가족이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이며 관계였다.
그렇게 나는 해야 하는 일, 마주하고 견뎌야 하는 일들에서 회피하고 도망쳤고, 논리만 정연한 핑계를 수없이 댔었다.
그땐 그렇게 편리와 편의를 요령 있게 부리며 순간의 안락함에 안도했다.
그렇게 누린 그 짧은 편안함에 대한 대가들은 참혹했다.
내가 그렇게 피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날이 있는 수표와 같았다. 지급은 의무이며 기한은 죽는 날까지.
부도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 그게 인생의 법칙이었다.
너 그때 이거 안 갚았지? 자 이자까지 쳐서 갚아내라.
운명의 호통은 가차 없었고 결코 피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때 두려움과 불편함을 감내하며 해내고, 마주하고 견뎠다면 어떻게든 지나갔을 그것들이 이제 깎이고 꺾여 제대로 변제할 용기, 깡, 자신도 많이 상실한 때에 빨간딱지가 되어 삶에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그때 했어야 할 일을 안 한 대가. 마주할 것을 피한 대가. 견뎌야 함을 알면서도 도망친 대가.
그 모든 대가를 노동교화하듯 온몸으로 상환하는 중이다.
그 참혹함을 온몸으로 매 맞으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그때 그렇게 도망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