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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랑 Dec 04. 2019

[冊]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당신을 위한 冊 @ 살아가는 날들 속에, 살아있는 하루

# 하늘, 그날의 하늘은 짖은 회색이었다. 가을이었지만 청명하지 않았다. 초겨울의 어느 날처럼 을씨년스러웠다. 회색 하늘이 밀어내는 무게감 속을 걸었다. 좁은 골목을 한참 걷다가 막다른 곳에서 갇혔다. 하늘에 갇히고 길 안에 갇혔다. 막히면 돌아가면 되지만, 갇히면 움직일 수가 없다. 한참을 그곳에 갇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넋 놓고 그곳에 서서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흘려보냈다.


바람, 스산한 바람이 달려오다 함께 갇혔다. 겨울도 아닌데 바람은 몹시 차가웠다. 그제야 하늘을 향했던 눈이 땅으로 돌아왔다. 넋 놓고 떠돌던 생각이 머리를 지나 마음으로 돌아왔다. 바람이 막힌 담을 돌아, 왔던 길로 돌아 나갔다. 그제야 갇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칙칙한 담벼락을 등지고 터벅터벅 왔던 길을 거슬러 돌아갈 길을 찾았다.



별, 한 개가 보였다. 늦은 오후 시작된 발걸음의 방황이, 이미 어둠을 몰고 온 밤 속에 있었다. 한때는 별과 좀 가까워져 보고 싶었었다. 이 별 저 별로 몸으로는 갈 수 없으니, 머리로 가까워지기로 했었다. 천문학책을 서너 권 읽었었다. 별을 알고 싶어 읽었던 책은, 생각 속에 느낌표 대신 물음표만 잔뜩 찍어 놓고 말았다. 물음표가 가득한 지식으로는, 그 한 개의 별이 무엇인지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시, 한편이 물음표로 가득한 생각을 비집고 올라온다. 김상용의 향수. [인적 끊긴 산속 / 돌을 베고 하늘을 보오 / 구름이 가고 / 있지도 않은 고향이 그립소] 별 하나 떠 있는 골목의 어둠이, 인적 끊긴 산속 같아서 그랬던 것인지. 고향이 있어도 별로 그리워해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지만, 뜬금없이 ‘향수’에 잠겼다. 수백 개의 시를 머릿속에 담아 놓고 살던 때, 오직 오기로 청춘을 버텼던 그때가 그리워졌다.
 

#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던 것처럼, 골목에서 이리저리 맴돌았다. 회색보다 더 강한 어둠이 하늘을 가렸다. 동요하지 않는 마음과 다르게, 발걸음은 초조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큰길로 나왔다. 가로등을 따라 걸었다. 가로수 사이에  가로등이 있었고, 가로등 사이로 가로수가 있었다. 지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끔 개들이 짖어댔다.

몇 분쯤 걸었을까. 하나둘 셔터를 내린 상점들 사이로, 간판 불빛 하나가 빛났다. 헌책방. 이름을 잃어버리고 성만 간직한 사람 같았다. 간판에는 헌책방이라고 손으로 쓴 글씨만 적혀 있었다. 모자처럼 백열전구를 이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고, 아니 화려할 수가 없었다. 그냥 지나쳤다. 십 미터쯤 갔을까. 무엇에 홀린 듯 되돌아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냄새. 책 냄새다. 오래된 책 냄새. 새 책에서 나는 잉크와 종이의 냄새가 아니라. 세월에 찌들고 먼지에 시달린 책들이 내는 나이의 냄새. 싫지 않은 냄새가 작은 책방 안에 가득했다. 동굴 같았다. 좁은 입구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동굴의 크기는 커졌다. 빼곡하게 들어선 낡은 책장 앞뒤로, 아무렇게나 던져진 책들이 서로를 짓누르며 쌓여 있었다.


책 제목이 쉽게 눈에 들어 올리가 없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책방 안을, 동굴 탐사하듯이 이리저리 돌아본다. 손이 닿는 대로 뒤집어도 보고 꺼내 보며 나아간다. 나이 지긋한 주인은 인기척을 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그 침묵이 좋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무심함이 편했다. 그렇게 어슬렁거리며 동굴 끝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연 같은 운명처럼, 운명 같은 우연으로, 마침내 책 한권을 발견했다.


# 1948년 1월 10일 초판, 1976년 11월 15일 중판 발행. 값은 1,000원. 인지에 찍힌 빨간 도장이 선명했다. 지은이, 윤동주. 펴낸 데, 정음사.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그렇게 만났다. 48년 초판을 구해보려 헌책방을 갈 때마다 기웃거렸었다. 언젠가는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었다. 48년 초판과 만남을 꿈꾸는 것은, 기실 그것은 꿈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90년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종이에 남겨진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그렇게 만난 것이. 76년에 나왔으니 나이는 스무살. 책보다 내 나이가 많았다. 나는 마음이 상하고, 몸은 싱싱했었다. 책은 그 반대였다. 윤동주의 마음은 그대로 간직했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20년이라는 세월을 탓하기에는 상태가 과했다. 분명 주인을 잘못 만났던 것이 틀림없다.



주머니에 1,000원 있었다. 책값은 500원이라 했다. 돈 없다고 하면 거저 라도 줄 것 같은 눈빛이었다. 헌책방을 지키는 말 없는 주인은 소유하는 자가 아니라 지키는 자 같았다. 1,000원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그때 내 마음에 심장을 뛰게 하던 것은 세 가지였다. 산, 시집 그리고 사랑. 그중에 하나 시집 하나를 얻었으니 심장이 가만 있을 리가 없다. 더구나 몇 년을 찾아보기 하던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 곰팡이로 색을 잃었다. 세네카(책등)는 떨어져 너덜너덜했다. 그것을 소유했던 주인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해, 어쩌면 스스로 상처를 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책방 문을 나서고, 바로 버스를 탔다. 더는 걸을 필요도 시간도 없었다. 집으로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명예로운 책들만 꽂히는 책장의 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찢어진 곳을 수선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다. 그래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조심해야 한다.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책장을 넘길 때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사람이.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습관이다. 행여나 손가락에 땀이라도 묻었을까 싶어, 손가락 끝을 닦아내고 책장을 넘긴다.


한편의 詩는 마음속에서 자라지만, 한권의 시집(詩集)은 시간 속에서 머문다. 자라는 것은 변하는 것이고, 머무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詩는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다. 쓰여지기는 쉽지만 탄생하기는 어렵다. 수 십번 어쩌면 수백 수천번 고쳐지고 다듬어져야 한편의 詩가 된다. 시집은 그런 詩가 사는 집이다. 시집을 보지 않고 詩만 보는 것은, 집을 보지 않고 기둥만 보는 것과 같다. 그 시집 속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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