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디자인의 세계 : 예쁜 디자인 그 이상의 무언가

정보 디자이너, 감각을 넘어 사유를 설계하는 사람들

by Unspoken

타이틀 이미지 : W.E.B Du Bois 팀의 파리 만국박람회 전시 작품 ❘ Courtesy of Library of Congress



여러분은 '디자인'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제가 느끼기에 한국 사회에서 '디자이너'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략 이런 사람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남다른 취향을 갖고 있고, 센스 있으며, 약간은 예민하고, 옷을 잘 입고, 감각적인 물건들을 즐겨 쓰는 사람. 뭐랄까, 늘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둘러싸여 있을 것 같은 이미지죠. 비슷한 맥락에서 보통 사람들이 '디자인'이라는 말을 쓸 때 그 의미는 대개 '예쁘지 않은 무언가를 예쁘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 무언가를 보기 좋게 바꾸고 싶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디자이너'를 찾곤 하죠.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종종 '디자인'이라는 말이 사회에서 협소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느껴요. 제가 이해하는 디자인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를 가능한 한 아름다운 방식으로 해결하는 과정'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꼭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나 방법론을 통해 구현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디자인을 넓은 의미로 바라볼 때 디자이너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도 훨씬 다양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글에서는 사람들의 감각을 넘어 생각과 관점을 건드리는 디자인, '정보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정보 디자인을 만나기까지, "지금 하는 일, 대체 이름이 뭐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 제가 정보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저는 '사람 중심의 공간 기획'을 배우고 싶어서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막연하게 '디자이너가 아닌 사용자가 주인공인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입사를 했죠. 그런데 그걸 위해 서베이나 인터뷰, 데이터 분석 같은 일을 깊이 있게 해야 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 결과를 콘텐츠나 리포트로 제작하는 것이 주요 업무가 될 거라는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요.

처음엔 일이 주어지니까 그냥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데이터를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더 매력적으로, 더 직관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을지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했죠. 다양한 데이터 시각화 레퍼런스들을 찾아보면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배치를 수도 없이 조정하고, 그래프의 모양을 계속 바꾸곤 했습니다. 화면에 담긴 메시지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순간까지 일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뭔가 열심히 하고 있고, 지금 하는 일의 영역이 콘텐츠를 만드는 데 있어서 꽤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지?' 글을 썼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 텍스트를 담당했구나' 할 테고, 디자인을 했다고 하면 '아, 그래픽 작업을 했구나'라고 이해할 텐데, 제가 한 일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습니다. 실적 리뷰나 면담을 할 때도 제가 어떤 방식으로 적성을 발휘하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웠죠.

'정보 디자인'에 대해 잘 몰랐던 시기, 회사 업무를 위해 수집했던 레퍼런스들


그러다 정보 디자인(Information Design)이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계기로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제가 한 역할을 언어화하고 싶어서 데이터 시각화(Data Visualization), 인포그래픽 디자인(Infographic Design), UI 디자인(User Interface Design), UX 디자인(User Experience Design), 편집 디자인(Editorial Design) 등의 여러 분야에 대해 찾아보다가 자연스럽게 접했던 것 같아요.

다른 분야들도 모두 흥미로웠지만, 제가 하던 일을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조금씩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데이터 시각화나 인포그래픽 디자인은 특정 그래픽 요소를 가리키는 말처럼 들려서, 콘텐츠의 전체 흐름과 맥락을 설계하는 일이 담기지 않는 것 같았어요. UI/UX디자인과 편집 디자인은 시각 요소부터 전체 맥락까지 꽤 넓은 영역을 포함했지만, 각각 디지털 매체와 인쇄 매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아 특정 매체와 관련된 분야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그에 비해 정보 디자인은 개념이 적당히 포괄적이었습니다. 정보에 적절한 형식과 형태를 부여하는 일뿐만 아니라, 정보가 전달되는 시간적 흐름과 경험을 설계하는 일까지 아우르는 개념이었죠. 디자인하는 대상이 특정 매체에 국한되지도 않는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아직 흔히 보이는 전공은 아니지만 별도의 전문 분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게 흥미롭게 다가왔고, 앞으로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고로, 일본의 미술 대학 중에서 최초로 정보디자인학과를 신설한 타마미술대학은 정보 디자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형태가 없는 ‘정보’를 바탕으로 예술과 문화를 창조하고, 풍부한 사회적·인간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을 우리는 정보 디자인(Information Design)이라고 부릅니다.

Creating art and culture, and forging rich social and inter-human relationships out of shapeless "information" is what we call Information Design.

출처 | Tama Art University, Department of Information Design 공식 홈페이지



정보 디자이너, 도대체 어떤 직업일까?


사실 정보 디자인은 특별한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강의 노트 정리하기, 보고용 PPT 만들기, 사진첩 정리하기, 영상 편집과 같은 일도 특정한 관점을 바탕으로 여러 정보를 정돈하거나 흐름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정보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각종 인쇄물, 휴대폰 애플리케이션, 길거리의 표지판, 주식 차트까지…. 우리가 하루 동안 접하는 모든 정보들은 어떤 식으로든 디자인되어 있으며, 이를 모두 '정보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 디자인하지는 않습니다.

정보 디자인이 하나의 전문 분야로 고도화되고 있는 건 비교적 최근 일입니다. 이는 아마도 기술 변화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스마트폰이 일상을 물들였던 시기를 지나 생성형 AI까지 상용화된 지금,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들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일하는 시간만 놓고 봐도, 최근 몇 년 새 처리해야 하는 정보량이 급격히 늘면서 일상적인 피로도가 확실히 높아졌죠. 그렇다 보니 많은 정보를 최대한 압축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하는 고도의 정보 디자인 기술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정보 디자이너'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요? 단순히 주어진 정보들을 왜곡 없이, 보기 좋게 정리하는 직무일까요? 제가 회사에서 했던 작업을 돌이켜보면 정보를 디자인하는 일에 있어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자이너의 주관이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때로는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순간이 생기기도 하고요. 어쩌면 디자이너 자신의 관점을 얼마나 깊이 반영하느냐에 따라서 정보 디자이너의 역할을 다양하게 정의해 볼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더 자세히 해볼게요.

※ 앞서 말했듯 정보 디자인은 인포그래픽보다 훨씬 더 넓은 개념이지만, 이 글에서는 설명의 편의를 위해 주로 인포그래픽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정보 디자이너의 첫 번째 역할, 정돈
: 주어진 정보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정돈하기 (디자이너 주관 개입 정도 下)


정보 디자이너가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기술은 보이지 않는 정보에 눈에 보이는 형태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정보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 후, 사람들이 더 쉽고 빠르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표현 방식을 찾는 일이죠. 숫자 데이터를 다룰 경우에는 이를 도형으로 시각화하는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하며, 폰트 · 이미지 · 레이아웃 같은 시각적 요소들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정보 디자이너가 구현하는 아름다움은 단순한 예쁨이라기보다는 각각의 정보가 지닌 의미에 '정확히 들어맞는' 형태가 부여되었을 때 생기는 조화로움에 더 가깝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심미적인 만족감을 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던 이야기를 보이게 해 주죠.

데이터 시각화 분야를 개척한 미국의 통계학자 에드워드 터프티(Edward Tufte)는 도서 『The Visual Display of Quantitive Information』 에서 좋은 정보 디자인이 갖춰야 할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통계 그래픽의 탁월함이란, 복잡한 아이디어를 명확하고 정확하며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픽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져야 한다.

•︎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 보는 사람이 방법론, 그래픽 디자인, 작업 기술 등이 아닌 '내용(substance)' 자체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 데이터가 말하는 바를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 •︎ 작은 공간 안에 많은 수치 정보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 방대한 데이터를 일관성 있게(coherent) 정리해야 한다 •︎ 서로 다른 데이터를 비교할 수 있도록 시선을 유도해야 한다 •︎ 전체적인 개요부터 세부적인 구조까지, 여러 층위의 정보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 명확한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 (설명, 탐색, 정리, 또는 장식) •︎ 데이터셋에 대한 통계적 설명과 언어적 설명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 에드워드 터프티, 『The Visual Display of Quantitative Information』, Graphic Press


표지 이미지 © Graphics Press 『The Visual Display of Quantitative Information』 (Edward R. Tufte, 1983)


저는 이 중에서 일반적인 두 번째 원칙인 "보는 사람이 그래픽 자체가 아닌 내용(substance)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 특히 와닿습니다. 실제로 인포그래픽이 포함된 콘텐츠 디자인을 디자이너에게 맡겼을 때, 내용과 별 관련이 없는 그래픽 요소를 가져와 이를 중심으로 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픽 디자이너의 관점에서는 시각적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지만, 정보 디자인의 기준에서는 좋은 디자인이라 하기 어렵죠.

네 번째, 다섯 번째, 일곱 번째 원칙을 보면 '많은 정보'를 '작은 공간'에 '일관성 있게' 정돈하되, 그 안에 여러 층위의 정보가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실제로 해보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건축가가 최적의 공간 구성을 찾기 위해 수십 장의 평면도를 그리듯, 정보 디자이너 또한 정보를 최적의 형태로 담아내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거쳐야 하죠. 어려운 작업이지만 이 과정을 잘 해내면, 확실히 정보 디자인만의 아름다움이 구현된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에드워드 터프티는 같은 책에서 가장 탁월한 정보 디자인의 사례로, 샤를 조셉 미나르(Charles Joseph Minard)가 그린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그래픽을 꼽습니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로 원정길을 떠난 후 폴란드로 돌아오기까지, 422,000명이었던 대군이 겨우 10,000명으로 줄어드는 참혹한 과정을 보여주는 인포그래픽이죠. 모스크바로 진군한 군대는 황갈색, 되돌아오는 군대는 검은색으로 표현되어 있는데요. 군대가 겪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하나의 화면에 표현되어 있어, 마치 실제 이야기가 눈앞에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 (Charles Minard, 1861) ❘ Courtesy of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미나르의 그래픽은 다변량(3개 이상의 변수를 동시에 분석하는 방식)의 데이터를 통해 풍부하고 일관된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이는 단순히 하나의 변수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해 준다. 이 그래픽에는 여섯 개의 변수가 표현되어 있다. 군대의 규모, 2차원 표면에서의 지리적 위치, 군대의 이동 방향, 그리고 모스크바에서의 퇴각하는 기간 동안의 날짜별 기온이 그것이다. (...) 이는 아마도 지금껏 그려진 통계 그래픽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일 것이다.

Minard’s graphic tells a rich, coherent story with its multivariate data, far more enlightening than just a single number bouncing along over time. Six variables are plotted: the size of the army, its location on a two-dimensional surface, direction of the army’s movement, and temperature on various dates during the retreat from Moscow. (…) It may well be the best statistical graphic ever drawn.

- 에드워드 터프티, 『The Visual Display of Quantitative Information』, Graphic Press




정보 디자이너의 두 번째 역할, 발화
: 의미 있는 정보들을 알기 쉽게 표현해서, 이야기의 장(場) 만들기 (디자이너 주관 개입 정도 中)


정보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일이지만 정보 디자이너의 역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디자인해서 보여줄 정보를 직접 선택한다면 말이죠. 세상에는 중요한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가 있고, 의미 있는 정보와 그렇지 않은 정보가 있습니다. (물론 누가 판단하느냐에 따라 각 정보의 의미와 중요성은 달라질 수 있지만요.) 때때로 정보 디자인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정보의 세계에서 공을 들여 형태를 부여할 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정보를 채택하는 일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탁월한 정보 디자인은 정보에 대한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여줍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적은 에너지로, 복잡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죠. 이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장 한가운데에 이야기를 '발화'하는 행위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은 이를 두고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정보 디자인이 보여주고 있는 현실의 단편을 앞에 두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며 저마다 생각하고 반응하게 됩니다. 새로운 대화의 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렇듯 정보 디자인을 통해 ‘발화’를 하고자 하는 경우, '직관적인 표현력'이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이해하기 쉬워야 일정 규모 이상의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사회적 담론으로 발전될 수 있으니까요. 오스트리아의 사회학자 노이라트 부부(Otto and Marie Neurath)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숫자를 단순한 픽토그램으로 치환해 표현하는 '아이소타입(ISOTYPE)'이라는 시각 언어를 발명했습니다. 이들은 복잡한 통계 자료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바꿈으로써, 평범한 시민들을 사회적 논의에 참여시키고자 했어요.

오토 노이라트는 1923년 비엔나에 일반 시민들이 사회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전시하는 사회경제박물관(Gesellschafts & Wirtschaftsmuseum)을 설립하기도 했는데요. 이 박물관의 캐치프레이즈가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정확한 수치를 잊어버리는 것보다야, 단순화된 그림을 기억하는 편이 낫다"
"To remember simplified pictures is better than to forget accurate figures"

- 오토 노이라트, 『Gesammelte Bildpädagogische Schriften』, Hölder-Pichler-Tempsky


이미지 출처 ©George G. Harrap,『Only an Ocean Between』 (L.Secor Florence, 1943)
이미지 출처 ©George G. Harrap,『Only an Ocean Between』 (L.Secor Florence, 1943)


위 이미지들은 『Only an Ocean Between』에 실린 인포그래픽으로, 노이라트 부부가 Isotype Institute를 설립한 후 진행한 아이소타입 작업입니다. 보시다시피 각종 수치를 숫자나 도형이 아닌, 누구나 알아보기 쉬운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죠.

"The Ocean Shrinks"는 약 100여 년 간 기술의 발달함에 따라 미국과 영국 사이의 이동 시간이 줄어든 역사를 "바다가 줄어들었다"라고 은유해서 표현합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며 그동안 변화해 온 두 나라의 관계를 떠올리거나, 이토록 가까워진 지금 미국과 영국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하며 여러 이야기를 꺼낼 수 있습니다. "United States and Great Britain in the World"는 세계의 인구를 인종과 지역 단위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는데요. 제목에 등장하는 미국과 대영제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겨우 1/4이 조금 넘는 정도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출판되던 당시 미국과 영국이 세계에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 그래픽은 "이 세상은 정말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맞는가? 혹은 그래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보 디자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화제를 던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꽤 자주, 사회 운동의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죠. 미국의 사회운동가 W.E.B 듀보이스(W.E.B. Du Bois)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전시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The Exhibit of Amercan Negroes」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수십 개의 데이터 차트를 통해 미국 흑인들의 역사와 현재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였는데요. 주제의식이 명확할 뿐만 아니라 그래픽의 미학적 완성도 또한 매우 뛰어나서 정보 디자인사에서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W.E.B Du Bois 팀의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전시 사진 ❘ Courtesy of Library of Congress


W.E.B Du Bois 팀의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전시한 인포그래픽 ❘ Courtesy of Library of Congress


W.E.B 듀보이스의 그래픽은 주로 미국 흑인들의 인구 변화, 교육 수준, 직업 분포 같은 통계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작업물을 찬찬히 보다 보면, 일련의 그래픽들이 어떠한 주장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흑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 "그들 또한 고유의 역사를 쓰면서 현실의 삶을 꾸려 온 보통 사람들이다"라는 메시지죠. W.E.B 듀보이스의 작업은 정보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를 의도적으로 더 깊게 반영할 경우, 정보 디자이너의 역할은 '발화'를 넘어, '설득'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정보 디자이너 세 번째 역할 : 설득
: 중요한 정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기 (디자이너 주관 개입 정도 上)


앞서 말했듯 정보 디자인은 변화를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마음속에 반드시 변화시키고 싶은 것이 있고, 이를 위해 어떤 정보를 어떻게 편집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다만 이게 가능하려면 정보 디자이너는 다양한 역량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필요한 데이터를 정확하게 수집하고 해석할 수 있는 전문성, 그리고 이를 그래픽으로 구현하는 디자인 감각까지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비로소 영향력 있는 정보 디자인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모두 다 아는 역사적 인물 중에서 이런 자질을 발휘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영국의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입니다.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로 유명한 나이팅게일은, 놀랍게도 데이터 시각화 분야에서도 선구적인 인물이었다고 해요. 어릴 때부터 수학에 재능이 있었던 나이팅게일은 크림 전쟁 당시 의료 현장에서 일하며 많은 문제를 목도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환자와 병원에 대한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시각화해서 실제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냈던 업적이 있습니다.

영국군 사망 원인 도표 (Florence Nightingale, 1858) | Courtesy of Wikipedia Commons


위 그림은 나이팅게일의 가장 유명한 작업으로, 꽃잎 같은 형상 때문에 '장미 다이어그램(rose diagram)'이라고 불립니다. 나이팅게일이 이 그림을 그린 이유는, '병원의 위생 시스템만 개선해도 수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어요. 월별 사망자 수가 부채꼴의 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요. 이 중 붉은색은 전투 부상, 검은색은 기타 원인, 푸른색은 '예방 가능한'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자입니다. 오른쪽 그림은 위생이 개선되기 전, 왼쪽은 위생이 개선된 후의 데이터인데, 위생 개선 후 푸른색의 면적이 크게 줄었다는 게 한눈에 들어오죠.

나이팅게일이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도 사망 원인에 대한 데이터는 어딘가에 존재했을 것입니다. 적어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경험으로 알았겠죠.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거나, 그 안에 담긴 맥락을 자세히 살펴보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면 나이팅게일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포착한 문제를 지나치지 않고, 세상에 납득시키기 위해 정보 디자인이라는 기술을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성과는 학계에서도 인정을 받아서 영국왕립통계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나이팅게일이 한 일을 디자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녀의 직업적 정체성은 디자이너의 영역을 꽤 많이 넘어서는 것 같긴 합니다. 나이팅게일처럼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은 디자이너보다는 '운동가'나 '개혁가'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녀의 업적을 보며,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정보 디자인이라는 기술이 어떤 의도에서, 무엇을 위해 사용될 수 있을까. 어디까지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를 생각하는 디자이너와 그렇지 않은 디자이너는 아마도 꽤 다른 행보를 걷게 될 것입니다.



정보 디자인의 세계를 짧고 굵게 들여다보았는데요.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는 동안, 정보 디자인의 세상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방대하면서도 독자적인 깊이를 갖고 있어서 정말 놀라웠습니다. 찾으면 찾을수록 한없이 빠져들어서 글의 진도를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현실의 복잡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일관된 시스템을 만든다는 점에서 제 전공인 건축과 닮은 구석이 있어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시각적 결과물이 더 주목받는 한국 디자인 업계에서, 보이지 않는 맥락을 다루는 정보 디자인은 아직 독립적인 전문성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 같아요. 누군가 그 영역의 일을 하고 있어도, 남들 눈에는 하나의 명확한 역할로 읽히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디자이너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할 때, 정보 디자인만큼 유망한 분야가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한한 정보 속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보다 의미 있는 현실의 단면을, 보다 생경한 감각으로 전달하는 일. 이를 통해 사람들이 세상을 좀 더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가치 있는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을 것 같아요. 생각해 보니, 이미 회사에서 저도 모르게 그런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의 인식 차이를 좁히고, 대화를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하는, 제 나름의 정보 디자인을 일상 속에서 조금씩 실천해 봐야겠습니다.



참고 도서 및 링크

도서
안드레아스 슈나이더 外, 『정보 디자인』, 김경균 옮김, 정보공학연구소, 2004

웹사이트

The Work of Edward Tufte And Graphics Press

Gesellschafts und Wirtschaftsmuseums (독일어만 지원되지만 웹사이트가 예쁘니 구경해 보세요!)


아티클

Edward Tufte's 6 Data Visualization Principles (2025)

Exploring Isotype Charts : "Only an Ocean Between" (Lessons of ISOTYPE - Part 1) (2020)

W. E. B. Du Bois’ staggering Data Visualizations are as powerful today as they were in 1900 (Part 1)

W.E.B. Du Bois Created These Infographics In 1900 To Humanize The African-American Experience
Between Data and Truth : W.E.B Du Bois's "Data Portraits"

기타
Wikipedia Commons _ Nightingale-mortality


+ 알아두면 좋은 인물 및 매체

Richard Wurman https://www.wurman.com/
루이스 칸에게 배운 건축적 사고를 바탕으로 정보 아키텍트(Information Architect)라는 개념을 창시하고, 강연 플랫폼 TED를 창립한 정보 디자인계의 거장 중 하나

David McCandless (Information is Beautiful)

https://informationisbeautiful.net/

저널리스트 출신 정보 디자이너로, 현대 데이터 시각화의 미적 기준을 정립하고 대중화하는 일에 크게 기여한 인물.


Nightingale (Journal of the Data Visualization Society)
https://nightingaledvs.com/

데이터 시각화 협회(DVS)가 발행하는 저널, 데이터 시각화의 역사·방법론·사례 등을 다루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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